2018.12.10 07:59
[보희와 녹양]은 [앞구르기]의 감독 안주영의 첫 장편입니다. 제목은 두 주인공 이름이에요. 같은 날,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중학생 아이들.
남자아이인 보희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이고 여자아이인 녹양은 씩씩하고 적극적이지요. 일반적인 선입견을 역전시킨 것인데, 그래도 이런
캐릭터 배치는 청소년 서사물에서 꽤 흔한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고.
[시체들의 아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 여자중학생 캐릭터가 얼마나 안전하고 기능적으로 쓰였는지 이야기했지요. 이 영화의 녹양은
그 스테레오 타이프에서 가볍에 벗어납니다. 보희와 같이 돌아다니며 그 아이의 이야기를 휴대폰으로 찍어 영화를 만드는 녹양은 민지와는
달리 분명 스스로 존재하는 인물이에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욕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을 거고요.
영화의 가장 좋은 부분은 보희와 녹양이라는 두 아이의 화학반응입니다. 둘은 전혀 다르면서도 죽이 잘 맞는 콤비에요. 둘을 붙여놓기만
해도 넷플릭스 시리즈 3시즌 분량이 나오겠어요. 같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아이들입니다.
단지 우리는 영화에서 녹양의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녹양 대신 보희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보고 있으면 왜 그런지 알 수 없어요. 보희도 좋은 캐릭터이며 녹양과의 호흡도 좋지만 아무래도 무게감과 개성, 현실감은 녹양보다
떨어지거든요. 보희는 녹양과 같이 있을 때, 녹양에 의해 해석될 때 가장 좋은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보희가 따로 존재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이 아이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관념적인 '소년' 캐릭터로 떨어집니다.
영화 내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희의 아빠 찾기라는 미션도 도식적입니다. 맥거핀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 맥거핀이 끌어내는 이야기
자체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아요. 이 과정 중 만나는 '배다른 누나'의 남자친구는 괜찮은 캐릭터지만 보희와의 관계는 생각보다 납작해요.
결정적으로 그 아빠라는 인물의 사연과 묘사가 공허하고 진부하지요. 아니, 지금 세상에 남자아이의 아빠 찾기라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자신이 뼛속까지 잘 알고 있고 생생한 인물이 코 앞에 있는데, 인터넷 2차창작물에나 나올 법한 설정에 매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대신 이를 담는 녹양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녹양이 자신과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늦기 전에
깨우치길 바랄 뿐입니다.
(18/12/10)
★★☆
기타등등
1. 감독은 서현우 배우를 [클로저] 연극 공연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는데, 저도 그 공연을 보고 이 배우의 이름을 처음 알았어요.
2. 이보희는 아주 유명한 이름이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동명이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설마 감독이 이 배우의 이름이 낯선
세대인 걸까요. 그럼 슬픈데?
감독: 안주영,
배우: 안지호, 김주아, 서현우, 신동미
다른 제목: A Boy and Sungreen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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