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8 13:11
장진의 [퀴즈왕]에 나오는 퀴즈쇼는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한 달에 한 번만 방영되고 1회부터 17회까지 하는 동안 상금이 계속 누적되어 133억원.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중간광고도 있습니다. 케이블에서는 가능할까요? 아뇨. 그냥 오로지 이 영화를 위해 개발된 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영화는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있냐고요? 사람 하나가 죽은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들어오는데, 하필 죽은 사람의 직업이 그 퀴즈쇼 작가였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USB에는 아무도 도달한 적 없던 마지막 30번 문제가 들어있었던 겁니다. 그러자 그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퀴즈쇼에 참가해 133억원을 따먹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보다 [매드매드 대소동]이 연상되는 설정입니다. 보물찾기 이야기죠. 상황은 [매드매드 대소동]보다 더 말이 안 되지만 말입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영화입니다. 일단 한 번 놀아보자! 정신으로 장진은 엄청나게 많은 배우들을 이 프로젝트에 끌어들였어요. 이러다보니 영화는 의미있는 스토리보다는 이들 캐릭터들을 평등하게 활용하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이들 대부분에게 최소한 하나 정도의 개그가 들어가야 해요. 영화의 구성 자체가 이런 대규모 캐스트를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반부 경찰서 장면은 앙상블 연기에 주력하고, 후반부 퀴즈쇼 장면은 개인기에 집중하는 식이죠.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연극이었다면 더 잘 먹혔을 거예요. 영화적이 되기 위해 동원한 효과들은 대부분 서툴거나 나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이나 개인기 역시 고정된 무대 안에서 카메라의 간섭 없이 터뜨려야 더 효과적이었을 부류고요. 연극이었다면 관객들이 내용의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을 보다 쉽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의 농담은 어떤가. 아마 취향을 상당히 탈 것입니다. 장진식으로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농담들과 감상주의가 마구 섞여 있는 식이니까요. 전 이런 농담의 팬이 아닙니다. 핀트가 어긋나고 감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장진이 사용하는 배합이 저에게 잘 맞지 않아요. [퀴즈왕]에 대해서만 말하라고 한다면, 전 이들의 농담들이 조금 더 스토리 안에 유기적으로 녹아있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완성된 모양은 영화보다는 연말 버라이어티에 삽입되는 콩트의 논리에 더 가까워 보여요. 감상주의가 많은 것도 위험한데, 그것들이 지극히 기성품이란 말이죠.
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있습니다. 성공여부를 떠나 이들 모두가 촬영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게 보여요. 순전히 배우들 때문에 터지는 장면들도 있고, 여기저기 숨어 있는 익숙한 카메오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진짜로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이들 중 반은 쳐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10/09/08)
★★
기타등등
1. 영화에 나오는 무리한 설정들을 모두 트집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 영화의 퀴즈 마스터를 천재라고 부르는 건 좀 심했습니다. 퀴즈 마스터들 중에는 정말 천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식의 방만한 상식 퀴즈로 유명해지진 않았죠.
2.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맞히다'를 '맞추다'라고 하는데, 퀴즈 쇼 소재의 영화에서 이러니까 신경 쓰이더라고요.
감독: 장진, 출연: 김수로, 한재석, 송영창, 류승룡, 장영남, 이지용, 류덕환, 이해영, 김병옥, 이문수, 이상훈, 심은경, 임원희, 김원해, 다른 제목: Quiz King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Quiz_King_-_2010.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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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 팬이 아닌 입장에서 장진은 연극 연출이나 각본가로 활약하고 감독은 더 능숙한 사람에게 맡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