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졸업 때까지 여러 관심사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글로 적었습니다.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폭파해버려서 어떤 낙서들을 했는지 지금은 저도 읽어볼 수 없는 상태이고요. 그런데 친구가 그 글들을 채집해두었나 봅니다.  영화계에 대한  짧은 소회를 적은 메모 하나를 어젯밤 메일로 보내주면서 이런 이유를 달았더군요. " 이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을 보노라니 너의 이 글이 생각나서 찾아봤다." 

음? 그의 직관에 의한 해석이니 그 글과 이번 선거판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건지 제가 알 수는 없어요.  그가 제 낙서들을 보관해 둔 것도 홀로 정처없이 너무 멀리 나가 해석 낭인 노릇을 하는 것도 어리둥절합니다만, 청춘기의 제 편린을 대하니 쫌 반갑네요.  글이 모호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지금보다 그 시절의 감각이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에취!) 

- 옛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자료를 열람하느라 반 년만에 '씨네21'에 들어가봤다. 정성일은 박찬욱의 영화에서 아무리 피가 난무하고 고독한 세월이 흘러도, 그가 '삶의 무거움'을 알지 못해 가소롭다는 판정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우스운 감정이지만, 박찬욱을 변호(?)하는 중재의 역할을 해야할 것 같았다.
영화는 현실의 불합리에 부딪고 한계를 넘어서는 몸짓이어야 한다고 정성일은 생각한다. 박찬욱은 다르다. 텍스트는 강렬한 대립소들에 의해 긴장이 조성되지만, 그 대립들은 상쇄되어 제로섬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텍스트 바깥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정성일이 '텍스트 너머'를 지지한다면, 박찬욱은 '텍스트 안에서'의 태도를 지지한다. 정성일에게 스타일은 '각성'의 증거이지만  박찬욱에게는 '망각'의 수단이다. 정성일이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숨김'을 지지한다면, 박찬욱은 '텍스트에 머물기 위한 모호함'을 지지한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박찬욱과 비슷한 사람이겠지만 정성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박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부분이 아닐까 한다.
"자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전락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물들은 어떤 의미에선 올라가는, 구원의 운동을 하고 있다." - 박찬욱

박 감독의 인터뷰들을 읽고 나오다가, 황석영과 임상수가  [오래된 정원]의 영화화를 계기로 나눈 대담을 읽었다.  두 사람의, 행간도 아니고 행 行 자체에서 읽히는 '안하무인'은 최악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씨네 21'에 게재되는 글 특유의 분위기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생산자도 아니면서,  그 분야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도저한 가망 없음’에 쓴웃음이나 날리고 있노라니 나도 참 '어이없는' 존재구나 싶은 자각이 스친다.

덧: 제 관심이 멀어진 탓이겠지만 정성일, 박찬욱 두 분의 이름을 접해본 지 오래네요. 요즘도 활동이 있으신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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