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3 02:22
며칠 전 결혼식을 갔는데, 신랑이 입장하기 전에 프로포즈 동영상을 틀어주더군요. 촛불이 아른거리는 극장 좌석에 혼자 앉은 여자친구를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는 남자. 가만, 이걸 촬영도 했단 말이야? 낭만이라고는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게이머들 게임플레이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버티고 보고 있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오늘은 페이스북 담벼락에 저 아는 사람이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포스팅을 했네요. 어디 좋은 데 데려가서 기타도 쳐주고 반지도 주고 했나봅니다.
따지고 보면 결혼식이라는 것도 그렇고, 어떤 의례가 반드시 유용성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 저로서는 이 프로포즈라는 문화가 너무나 이상해서, 나중에 결혼을 하고 싶어도 프로포즈를 못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 프로포즈의 시기가 이상합니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남녀가 결혼을 합의하고 나서 이런 저런 절차를 거치고 사실상 결혼히 확정된 시기에 하더라구요. 프로포즈라는 게 결혼 하자고 제안하는 거 아닌가요? 이미 결혼하자고 얘기도 끝났고 심지어 같이 웨딩드레스도 같이 맞추러 가고 집도 알아봤으면서 뭘 또 프로포즈라는 걸까요? 또 그럼 애초에 결혼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오간 대화는 뭐가 되는 걸까요? 프로포즈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갑자기 남자친구가, "미안해. 실은 이 웨딩드레스 네가 아니라 너와 체형이 비슷한 영숙이를 위한거야"라고 말할까봐 불안하기라도 한걸까요?
둘째로 여자들이 진짜로 원한다는 그 진심이라는게 이상합니다. 제 친구는 자기 신랑이 프로포즈할 때 특별한 것 없이 조용한 식당에서 진심어린 말과 함께 반지를 주며 프로포즈했다며, 시끌벅적한 프로포즈가 아니고 진심이 느껴지는 프로포즈여서 좋았다고 자랑하더라구요. (이런 프로포즈가 사실 더 난이도가 높은, 진짜 프로들이나 할 수 있는 프로포즈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에 대해서는 차치하겠습니다.) 요란한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상대의 진심이 느껴져 감동적이었다는 사람들이 많지요.
프로포즈 때 하는 말은 당연히 수많은 시간 공들여 고르고 고른 말일테니 당연히 너무나 아름답겠지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수많은 사람들을 좋아해 봤고, 결혼을 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연심을 품지 않겠습니까.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프로포즈를 심각하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너의 공식 진심으로 인정해"라고 해버리고, 그것에 또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흘린다는게 이상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건 '난 언제든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 더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날 감동시켜봐'라고 해놓고, '감동을 받았으니 이건 진심이야'라고 믿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결혼할 때가 되면 예전에는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져서 연애조차 꺼리게 만들었던 날짜 세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려니하고 말게 될까요?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원하는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이 어디 있느냐. 다행히 난 보수적인 사람이라 절대 연인관계의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놈팽이들 보다는 내가 더 나을 것이라는 건 자신할 수 있다'로 일관하다가, 나중에 실연당하고 나서 술먹고 펑펑 울면서 영원한 사랑이니 그딴게 다 뭐라고 그냥 해줬으면 되는 것을, 하고 후회했던 모자란 남자로서, 제 향후의 생각과 행동이 어찌될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2014.04.13 02:47
2014.04.13 02:49
전 여자인데도 프로포즈 문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개인사니까 남들이야 뭔 행동을 하든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제가 애인이 있고,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제발 프로포즈 같은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촛불이나 풍선이 등장한다거나 무슨 영화대사 짜깁기한 것 같은 거창한 프로포즈만 불편한 게 아니고, 우리 결혼할래?가 아닌 나와 결혼해줄래?의 느낌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것도 전 싫습니다.
2014.04.13 03:58
프로포즈 동영상 배경 음악은 왜 또 하나같이 "나랑 결혼해 줄래"일까요 orz
2014.04.13 02:55
2014.04.13 04:01
막상 듣는 입장에서는 열불 터지는 말일 것이라는 걸 또한 자신할 수 있습니다 ㅋㅋ
2014.04.13 03:07
2014.04.13 03:08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짓(먹는다던지 자는다던지)들도 즐겁습니다만 사람을 최고로 즐겁게 하는 것들은 사실 쓸데없고 한심한데다 왜 하는지 모르는 것들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프로포즈 문화가 괴이하다는덴 동의하지만 타고 올라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 둘의 중간 어딘가겠죠. (하는 쪽이 프로포즈를 원하는 주체인 경우도 있으니까 남여 구분은 무의미.) 인간의 유희의 동물이니까요.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것들을 하기 위해 사는거라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라 믿습니다! (믱?)
2014.04.13 03:17
해외 야구장 공개 프로포즈에서 여자가 "No"하는 동영상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눈가에 땀이...
사실 저도 원글님의 첫번째 의문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남자쪽은 거절당했을 경우의 충격+여자쪽은 바라지도 않은 로맨틱 프로포즈 거절해야 하는 부담을 고려해서 그렇게 정착되었는지도 모르죠.;
2014.04.13 03:27
2014.04.13 06:41
2014.04.13 07:17
프로포즈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먹으려다보니 결혼산업이라는 것 자체가 기형적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뭐 팔 것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해도 형편이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남들 다 한다고 강박적으로 고가의 명품가방이니 명품시계 주고 받는 것이나 캐럿반지는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둥 신혼여행이면 몰디브 정도는 다들 가니 가줘야한다는 둥... 너도 나도 해서 나도 해야하는 압화편지니 북유럽식 신혼집 인테리어니 이벤트 프로포즈니 하는 것도 우스꽝스럽고 거기에 나아가 요즘 제일 경악하는 건 각종 스튜디오 사진들... 만삭사진이 필수처럼 번지고 스튜디오에서 본인 사진 올리면 뭐라도 준다고 하니(액자 따위) 너도 나도 만삭사진을 올려대는데 초미니에 음부를 살짝만 가리게 만들어진 이상한옷을 입고 배 드러내고 드러누워서 누드에 가깝게 찍은 만삭사진을 남들 다 보라고 올려놓은 것 보고 깜놀했네요. 섹시한 만삭사진이 유행이라고.. 별 게 다 유행이야. 그런건 남편이랑 둘이서 볼 것이지..으 안구테러.
2014.04.13 11:17
2014.04.13 08:11
2014.04.13 08:12
2014.04.13 08:39
'프로포즈'라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괴상한 문화이긴 하지만, 프로포즈라는게 들이는 노력, 정성, 시간, 돈 이런거 대비 리스크가 엄청 크잖아요. 안그래도 사는가 힘든 사회인데... 일반적으로 남자측의 리스크를 없애주고, 여자측의 감정적인 만족 및 sns등에 자랑 및 결혼 홍보거리를 제공하는 나름 한국적으로 상호합의된 문화인거 같아요.
2014.04.13 08:42
2014.04.13 08:55
2014.04.13 10:40
2014.04.13 09:15
프로포즈라는 건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약속된 거짓말일지라도 그 거짓말을 하겠다는 의지가 사랑의 증표가 아닐까요?
영원하 사랑이 없다는 것도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나 혹은 찰나보다는 긴 지난한 감정이 계속될 것이라 믿으면서 가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겠다라는 생각은 어떤 상대에게는 회피할려고만 보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관계는 허상 속의 믿음으로 시작해도 허상이 진실을 뒤덮고 진짜 진실이 되기도 하니까요.
2014.04.13 09:41
제목과 내용은 조금 다르군요. 프로포즈라는 문화가 이상하다 하시더니. 예식장에서 하는 프로포즈는 프로포즈가 아니지요. 그 건 'show' 아닌가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글오글 할 수도 있고, 우와 재미있다 일 수도 있는. 프로포즈라고 이름 지어서 부르는 건 어떤지 모르지만 '너를 사랑해. 너와 함께 평생을 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줄래?' 이런 과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애기간의 대단원 을 넘어서 결혼이라는 사회적 예속을 받아 들인다는 의미에서도.
2014.04.13 10:02
2014.04.13 10:20
저도 여기에 동의. 본문에서 말하는 프로포즈는 쇼일 뿐이죠.
2014.04.13 10:45
2014.04.13 10:45
제가 즐겨찾는 사이트에 가끔 프러포즈 관련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와요
상견례도 하고 식장도 잡고 웨딩드레스도 맞췄는데 아직 프러포즈를 못받아서 고민이라는 그런 글이요
리플에는 프러포즈없이 결혼하는건 최악이라는 의견이 주류구요
프러포즈 없이 결혼했다는 경험자들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아직 프러포즈 안한 남자를 욕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죠
그럼 글쓴이는 상대가 결혼하자는 의사를 내비친적이 한번도 없는데 혼자 상견례하고 예식장을 잡고 웨딩드레스를 맞췄단 말인가요?
프러포즈 얘기가 나오면 어떤 프러포즈를 원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오가는데
인터넷에 화제 동영상으로 올라오는 화려한 프러포즈를 원한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요
둘만 있을때 진심이 전해지면 충분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프러포즈는 최악이라고 말을하죠
진심만 전해지면 충분하다는 사람들이 프러포즈없이 결혼하는건 최악이라고 말하는건 모순아닐까요
결혼식 절차에 들어갔다는건 결혼하자는 프러포즈가 어떤식으로든 진심으로 전달됐기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자기는 프러포즈를 받은적이 없고 진심이 담긴 프러포즈를 받지 않으면 평생 아쉬움으로 남을수 있다니..
2014.04.13 11:15
2014.04.13 10:58
2014.04.13 11:22
2014.04.13 11:04
2014.04.13 11:10
2014.04.13 21:20
딴 건 몰라도 뭔가 남자에게 받은 걸 sns에 올리는 게 해줘서 뿌듯해하는 남자에 대한 예의며 어떤 동참의 행위라는 얘기는 생각도 못해봤고 첨 듣는 얘기네요. 이게 진정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여자들 사이에서 일반화된 풍습(?)인가요?..
2014.04.13 11:15
2014.04.13 11:16
2014.04.13 11:28
2014.04.13 11:39
그러니까 말이죠님 말대로 싫은 음식 삼키듯 눈 딱 감고 해주면 앞으로가 편하겠죠.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따위의 이성적 고민하면 관계 망치는 거고요. 댓글 읽고 있으니 제가 여자랑 연애하고 결혼할 일 없는 사람이란 게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남자들 불쌍하단 생각은 군대말곤 딱히 해본 적 없는데 이건 뭐...
2014.04.13 12:31
2014.04.13 12:38
2014.04.13 13:12
2014.04.13 17:48
2014.04.13 13:35
프로포즈 이벤트. 사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죠. 누군가 프로포즈 이벤트는 '꼭' 해야만 한다라고 이곳에서 주장한다면 저는 반대 의견을 쓸 것 같군요. 마찬가지로 프로포즈 이벤트 그런 쓸데 없는 걸 왜 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 라는 의견들이 나오니 '그게 그렇게 불편하고 이해못할 만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죠. 누군가 자기에게 꼭 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하는 것에 그렇게까지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포즈 이벤트를 하는 사람보다는 안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보는데요.
2014.04.13 15:04
2014.04.13 11:43
저도 여기에 동의. 결혼식도 귀찮아서 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형식적인 의식을 안하면 평생에 미련이나 후회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14.04.13 11:29
2014.04.13 11:32
본문에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저는 애인이 그런 프로포즈해줄 때 자연스럽게 웃고 있을 자신이 없네요. 완전 오글거릴듯.
연애할 때부터 '난 그런 프로포즈 싫더라' 이렇게 흘리고, 자연스럽게 가고 싶어요 전. 결혼 의사를 전달하는 게 프로포즈지, 날짜 다 잡아놓고 행사 따로 하는 거 싫어요.
근데 애인이 없다능.-_-
2014.04.13 11:39
근데 태그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14.04.13 13:41
아는 동생(신랑) 이 자기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던 일이 있습니다. 양가 어르신들 및 일가 친척들이 모두 황당해하셨는데 그 동생놈은 주구장창 우겨서 기어코 그 이벤트를 성사했는데 --- 알고보니 프러포즈였어요. 우겔겔.
2014.04.13 13:50
2014.04.13 13:58
2014.04.13 14:06
저도 프로포즈 문화가 이해가 잘 안되는 사람이지만 그런 문제로 결혼을 취소한다면 결혼을 취소할 이유는 수백까지쯤 되겠군요. 집 장만, 혼수, 예단 , 결혼식장 선택, 꾸밈비 돌려주는 액수, 부모님 용돈, 아이가 생기면 양가 부모님 중 누구에게 맡길지.. 등등의 문제에 비하면 프로포즈 이벤트는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겠네요.
2014.04.13 14:17
2014.04.13 14:17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로 깨지는 결혼이 뭐 한 둘이 아니죠. 프로포즈 문제 정도로 깨질 결혼이라면 애당초 안하는 게 백 번 낫습니다. 결혼하면 서로 이해 못할 일이 생각 이상으로 더 많죠.
2014.04.13 16:10
2014.04.13 16:26
2014.04.13 16:46
2014.04.13 16:53
2014.04.13 15:20
2014.04.13 15:42
2014.04.13 19:06
자기들은 하면서 좋았겠죠. 굳이 불편해할 필요 없이, 님은 안하시면 되는거잖아요.
2014.04.13 22:52
2014.04.14 09:54
평소에 남녀에 대해 한치 오차 없는 평등을 주장하시는 분이
이런 부분에서는 눈 딱 한번 감고 해주면 된다?
참 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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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게 외부에 자랑하고싶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거죠. 저도 요즘은 연애나 사랑이라는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티비나 연애를 하는 사람들 보면, 엔터테인먼트랑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쉽게쉽게 즐기는 것 말이죠.
전 그냥. 눈과 귀를 닫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겠다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