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돔 공연의 전체 영상을 보지 못했지만 올라온 영상 중 인상적인 것들은 단연 솔로 공연들이다.




민지는 Vaundy라는 밴드의 무희(오도리코)를 커버했다. 흥미로운 건 민지가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민지는 한림예고를 23년도에 벌써 졸업했다. 해당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딱히 학생을 컨셉으로 하는 내용도 아니다. 원곡과 뮤직비디오와 민지의 착장은 딱히 컨셉이 일치하는 게 아니다.

안그래도 현재 아이돌의 라이브 실력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민지는 보컬로 큰 어필을 하는 가수는 아니다. 민지에게는 다른 나라 가수의 노래를 아주 잘 불러서 감동을 주는 게 아직 난감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기획의 힘이 엿보인다. 가창력으로 확실한 감동을 주기 어렵다면, 무대의 성질을 바꿔버리면 된다. 프로페셔널한 가수의 무대가 아니라 한 여고생의 무대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관객은 교복이라는 의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수보다 한 여고생 민지를 보게 된다.

저 무대 전체는 여고생 민지의 또 다른 세계다. 저 여고생 민지가 뭐가 그렇게 울적하고 왜 저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는 뭔가 우울해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다. 종종 무대위를 뛰기도 하지만 이내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리고 가방을 질질 끈다.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그는 의자에 앉아있다. 이것은 흥미로운 해석을 자극한다. 민지가 스탠딩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처음부터 가방을 내던지기까지 모든 것이 여고생 민지의 상상이고, 사실 민지는 코인노래방에 앉아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인 우리는 코인노래방에서 혼자 우울하게 노래부르는 사람만을 본다. 이 때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크게 관심을 둘 바가 아니다. 그냥 저 여고생이 왜 저렇게 인상을 쓰며 노래에 매진하는지, 그 사연을 더 궁금해할 뿐이다.

민희진은 아이돌을 가수로 규정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이미지를 제시하는, 공연예술가로 본다. 왜 노래를 소름끼치게 잘하고 그래야하는가? 아이돌이 가창력을 뽐내는 사람도 아닌데? 아이돌이 무대위에서 이미지가 어떤 세계를 전달하는지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혜인은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를 불렀다. 이 노래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시티팝을 뽑을 때 다섯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곡이다. 민희진의 뉴진스 프로듀스 기저에 깔려있는 "레트로 감성"을 생각해본다면 뉴진스가 레트로의 본류로 돌아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이 노래는 일본 현지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는 반응이 있다.

혜인은 뉴진스 내에서 확실한 보컬리스트다. 그가 이 노래를 잘 부를 것은 당연한 예측이다. 그리고 전광판의 흑백 화면으로 플라스틱 러브를 부르는 혜인은 훨씬 더 레트로하다. 노래 실력은 기본 전제다. 그 노래실력을 가진 아티스트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사람들은 백예린의 square를 그가 녹색 원피스를 입은 영상으로 기억하고 황소윤을 기타 피크를 문 모습으로 기억한다. 혜인의 커버 무대는 플라스틱 러브 원곡이 가진 이미지의 공백을 흑백화면의 혜인으로 훔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 노래의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혜인은 아직 어리고 때가 덜 묻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고 퇴장하기 전 전광판을 통해 관객을 정면주시하는 혜인의 얼굴에는 이 노래의 이미지를 점령하겠다는 야심이 분명히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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