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5 14:53
40대를 앞둔 세 남자들이 제주도로 갑니다. 대학 선배 부친이 죽어서 거기에서 장례식을 한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제주도에
도착한 뒤에도 장례식장에 갈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여자 꼬시고 놀 생각밖에 없어요.
사연이 있냐고요. 어느 정도는요. YTN 아나운서인 은동은 암에 걸렸습니다. 대기업 과장인 중필은 희망퇴직 권고를 받았고요.
수탁은 고시촌에서 13년째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고요. 이 정도면 다들 잠시 현실의 압박에서 떠나 놀고 싶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섬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정상일까? 전 아닌 거 같습니다.
하여간 그들은 섬에서 놀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풀립니다. 꿈꾸던 럭셔리 호텔은 모두 만원이라 게스트하우스로
만족해야 하지요. 여자 꼬시는 일도 엉뚱한 경쟁자 때문에 생각만큼 잘 안 되지요. 하지만 이렇게 덜컹거리는 동안에도
영화는 제주도의 풍광과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목표를 잊지는 않습니다. 채두병의 [올레]는 어떻게 봐도 제주도
관광홍보영화예요. YTN 기업 홍보물이기도 하고 스파크 세제 광고이기도 하죠.
여기에 대해 크게 불평할 생각은 안 들어요. 불평하고 싶은 건 이 영화 속 남자들이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가며 따라가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야 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이해를 강요하는 이유들 때문에 인물이 더 얄팍해진 구석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만족하겠지'하면서 더 이상 발전을 안
시키는 거죠. 이 나이 또래 아저씨들은 관객들이 다 알아서 다 이해해주고 보듬어야 하는 존재인 건가요.
당연히 캐릭터를 따라가는 이야기도 얄팍해집니다. 영화에서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중필에게 사연을 주겠다고 만든 이야기가
대놓고 [건축학개론]의 짝퉁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제주도에 있는 동안 깽판을
치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수탁을 귀엽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나 그랬고 전 얼굴만 나와도
짜증났습니다.
한국에서 남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 때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당연하다고, 그 정도면 관객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고 당연한 건가요? 그 디폴트의
당연함 안에서 안이하게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요?
(16/08/25)
★☆
기타등등
화면비율이 1.85대1입니다.
감독: 채두병, 배우: 신하균, 박희순, 오만석, 유다인, 한예원, 변준석, 정석용, 정신혜, 조승희, 지은성, 장성범, 고은성,
김지안, 주진하, 조은숙, 전배수, 다른 제목: Detour
IMDb http://www.imdb.com/title/tt38456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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