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1 12:18
원래 어제 올렸어야 하는 글인데 하루 지나고 올리게 되네요. 그동안 늘 참여하고 싶었지만 주말마다 놀거나 쉬느라 못나가서 아쉬웠던 촛불시위를 오랜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집회 전체를 참여하는 건 좀 무리같아서 행진만 하고 오고 오는데, 이번에는 시간을 좀 잘못 알아서 행진 시작 뒤에 집회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시위대를 쫓아가서 행진에 간신히 합류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집회를 하면 한 4시쯤에는 현장에 도착해야 행진을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분들의 나이가 제 또래들보다 좀 많아서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괜히 한국인 특유의 "순수일반시민"의 자기검열도 하게 됐달까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이라고 일반 시민인 것은 아닐텐데, 이른바 "꿘"과 자신을 분명히 경계짓고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괜히 탈색시켜보려는 그런 생각말이죠. 한 10분쯤 걸으면서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을 외치다보니까 그런 의식이 금새 사라졌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도 또 생각이 나고 그랬네요.
시위를 하면서 무력감을 좀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신문 기사를 링크하거나 댓글로 대통령 및 여당을 욕하는 것에 정말 회의를 많이 느꼈거든요. 제 블로그에 윤석열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하루에도 몇개씩 올리곤 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온라인에 조잘대는 건 정작 비판의 대상자에게 어떤 부담도 안겨주지 못하겠죠. 조금 더 실질적이고 유물론적인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몸을 직접 이끌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모여서, 육성으로 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공유하는 경험은 꽤나 후련했습니다.
현장을 걸으면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120 bpm]을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이 정치적 시위에 어색하게, 때론 격렬하게 참여하는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새겨준 영화라 그런 것 같아요. 되짚어보니 다 프랑스영화입니다. 격하게 논쟁하고 때론 과격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그런 정신을 제가 좋아해서 그런 거겠죠. 한국의 역사에도 이런 민주시위가 없었던 건 아닌데 한국영화가 그리는 시위들은 어째 수동적이고 피해자의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군부독재정부가 시위를 진압하거나 참여자들을 괴롭히면, 그 폭력에 피투성이 시체가 되거나 피학적인 공감만을 호소한다는 점에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제 한국영화계는 한국의 민주시위 영화를 조금 더 젊고 시민의 시선에서 그릴 필요가 있진 않나 생각해봅니다. 양복입은 중장년 남성들끼리의 느와르 권력 암투나 무협지 스타일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요.
새해에도 조건만 되면 부지런히 촛불시위에 나가야겠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부모님을 따라 시위에 같이 나왔는데 귀여웠습니다.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를 후세대 시민으로 열심히 누려야겠습니다.
2024.01.01 15:20
2024.01.01 16:23
ㅋㅋ 제 촛불집회참여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땡큐베리감사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또 부지런히 다니고 계시겠죠. 저는 일단 제 가족 대표해서 나간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저와 큰 틀에서 정치적 방향성은 같거든요.
어제 교사 친구와도 이야기를 했는데 '운동권 악마화'에 대해서 좀 갑갑해하더군요. 자신은 전교조는 아니지만 전교조의 방향에 거의 동의하고 또 열정넘치는 분들인데 북한 사주 이런 이야기 나오면 정말 어이가 없다고요.
thoma님도 건강하십시오. 계속해서 글의 인풋과 아웃풋을 해주시길!
2024.01.01 15:4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01.01 16:23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이렇게 말하면 싫어하는 분도 있겠지만 Sonny 님 이런 글 올라오면 저 혼자 마음 속으로는 듀게 대표로 다녀오시는구나 생각합니다.
이번 정부의 어이상실 행태가 한두 가지 아니지만 가장 미친 점 중 하나가 운동권을 악마화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 어떤 집단도 부패하고 잘못하는 일은 있으나 이렇게 싸잡아서 조직적으로 극우들 결집에 이용하려고 하는 게 페미니스트를 욕처럼 쓰는 현실과 겹치면서 언어와 역사를 오염시키고 있음입니다.
앞으로도 건강과 건필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