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잘 싸웠다. 솔직히 경기력이 저하되어 빌빌 끌려다닌 - 그 옛날 네덜란드 오대떡처럼 - 경기는, 적어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없었다. 4대1로 안드로메다 갔다온 경기는 뭐냐? 라고 할지 모르시겠지만, 이봐요 그거 아르헨이야 아르헨(....) 그리고 경기 결과는 스코어로만 남지만 적어도 1986년부터 그 모든 장면을 보아 왔던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얘네들이 잘했네 못했네 정도의 기억은 남아 있을 터이다.

2. 하지만 우루과이전은, 뭐랄까 상대가 상상 이상으로 잘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싶다. 그 골이 왜 골대를 맞고 들어가고, 그 슛이 왜 골대를 맞고 안 들어갔는지. 이건 정말 천운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3. 게다가 그들은 경기력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전술적 측면에서는 우리를 어쩌면 갖고 논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선다. 점유율을 7:3으로 우리가 갖고 갈 때에는 사실 우리가 잘 했고 그들은 패스가 끊겼다. 우리는 치명적일 수 있는 찬스를 몇 번 만들었고 결국 그걸 성공시켰으니까. 시쳇말로, 우리는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던 우루과이의 골문을 파과(破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들은 역습 정도가 아닌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3-1. 대체 어디에서부터 저런 체력이 쏟아져나왔단 말인가. '남미 팀'이, 그것도 '수중전'에서. 이것은 그들이 철저히 잠그며 그 동안 쉬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골을 넣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교체선수로 보강해 주고 다 튀어나와 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불운하게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전술의 패배다. 선수들은 정말 잘 했고, 허정무 감독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했다. 이번 경기에서는 그다지 전술적 실패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저들이 한 수 위였던 것이다.

4.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는 얻은 것도 많다. 우선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점(솔직히 나는 허정무가 이번 월드컵을 포기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경기력 저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곧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 마치 북한이 하는 것마냥 - 정신력으로 버프 걸었다가 나중에 무너지는 무기력한 팀이 아니다. 네덜란드식 축구에 한국 특유의 색깔을 가미한 아시아의 강호라는 것을 이미 입증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만 자학할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다.

5. 이동국,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차두리... 이들을 다음 월드컵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영표마저 사라지면 수비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박지성은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영표는 현실적으로 정말 불가능할 것 같다. 그나마 이동국... 그는 어째서, 황선홍의 후계자의 이름대로, 황선홍이 걸었던 그 가시밭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이동국이 계속해서 리그의 레전드로 남아 주면서, 멘탈에 문제 많은 이천수가 다시 돌아와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종수의 예에서 보듯 이천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대회는 이천수처럼 측면도 헤집으며 골게터 능력까지 있는 놈이 정말 절실했었다. 박주영이나 이청용 염기훈 기성용 등은 그런 용도는 아니었기에. 염긱스와 기라드를 다음 월드컵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청용과 박주영은 서로 다른 의미로 멘탈이 좀... 그렇다.)


어쨌거나 수고하셨습니다. 나의 영웅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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