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6 23:53
[남과 여]의 이야기는 90년대라면 딱 황신혜 주연의 멜로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단지
섹스 묘사가 많고 와이드스크린이죠. 핀란드에서 만난 두 한국 사람이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는데, 두 사람에겐
모두 배우자와 아이가 있습니다. 그냥 잊어버리면 되었을 것을, 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계속 관계를 가집니다.
그리고 모든 게 복잡해지지요.
뻔하다기보다는 원형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원형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의 매력이 있죠.
[밀회]나 [캐롤] 모두 그런 영화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은영과
이윤기가 쓴 [남과 여]의 각본에는 그게 없어요.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꼼꼼하지만 이들이 특별히 재미있거나
매력적이지는 않아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배우 자체의 매력이지 캐릭터의 매력은 아니죠. 완벽하게 그럴싸한
직업을 가진 고소득층인 이들이 사는 세계 역시 깔끔하기만 할 뿐 생기가 부족하고요. 그 때문에 전 자꾸 그들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이미소가 연기한 공유 캐릭터의 불안정한 아내
같은 사람 말이죠. 척 봐도 그 사람의 고통이 두 주인공의 고통보다 컸으니까요. 물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두 아이들도 있고요.
이 영화의 개성이라고 할만한 부분도 꼭 매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전 공유 캐릭터가
많이 귀찮고 불편했어요.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지만 그에겐 강한 스토커 성향이 있습니다. 이 불편한
관계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이고 상대방의 입장과 상관없이 이 관계에 집착한 것도 그죠. 그런데
영화는 그의 이 음산한 성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장르에서 제대로 다루면
더 재미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익숙한 멜로 안에 갇혀 있는 거죠. 그렇다고 그 불길한 느낌이 제거되거나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래도 이게 이윤기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그의 재미있는 영화들은 모두 인상적인 설정이나 캐릭터를
제공해주는 원작이 있었어요. 성공한 이윤기 영화는 그 특별함을 살리려는 시도 속에서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남과 여]는 극단적인 익숙함에서 시작하죠. 여전히 남아있는 그의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밋밋해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16/03/06)
★★☆
기타등등
카티 오우티넨의 카메오가 있습니다. 영화 후반에 택시 운전사로 잠시 나와요.
감독: 이윤기, 배우: 전도연, 공유, 박병은, 이미소, 박민지, 민무제, 이상희, 노강민, 다른 제목: A Man and A Woman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A_Man_and_A_Woman.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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