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

2022.12.09 23:16

가봄 조회 수:556

최근 몇달은 육체적으로 꽤 고됐어요. 딱히 힘든 일이 많았다기 보다는 그것을 소화해야할 피지컬이 노쇠한 거겠죠. 

예전엔 다 깡으로 버텼다고 하는 그런 얘기들도 따지고 보면 깡이 아니라 체력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는 정말로 피곤한 몸으로 퇴근했어요.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쳐 집에서 아이와 대화할 에너지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빠. 아빠. 있잖아. 오늘 000에서 00가.."

"나중에 얘기하면 안될까? 아빠가 지금 힘이 너무 없단다."

"응!"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씻은 후 쇼파에 앉았어요. 


"아빠. 아직도 힘이 없어?"


당시의 제 심정은 정말로 아이의 말을 들어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끝내 다정할 자신이 없었죠.


"응. 조금만 있다가 "


아이는 더 보채지 않고 곁에서 조용히....제가 힘을 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우리 둘이 채 몇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있었던 셋팅에 진심으로 응해주기로 했습니다. 

이 녀석 얼굴을 보면서 점점 힘을 내야지. 

그리고 힘이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최고로 다정한 얼굴로 오늘 있었던 00와의 일을 들어주자. 


"자. 이제 힘이 다 채워졌다."


아이는 아까의 대화를 방금 전에 했었던 것 처럼 이어갔습니다. 


"00가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는데 하면 안되는 말을 해서 혼난 거거든? 근데 난 처음 들은 말인데 그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래."

"그게 무슨 말인데?"

"하면 안되는 말이라서 할 수는 없어."

"그래도 해줘. 아빠 궁금해."

"안돼. 근데 나도 하고 싶긴 한데... 그래도 선생님이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이랬어."

"아...아빠 듣고 싶은데..."

"음..궁금해?"

"응"

"하면 안되는데 어떡하지? "

"괜찮아. 아빠한테는 괜찮아."


아이는 오늘 내내 그 말을 계속 하고 싶었던 거죠. 하루 종일 내내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고 싶은 것을 참아왔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제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제 목을 팔로 감고 귀에다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ㅆ ㅣ 팔"


뜬금없지만, 그 순간 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긴장됐던 몸과 마음이 푹신푹신 이완되는 냄새. 

모든 상황과 맞물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지난 몇달이 존재했던 것 처럼 충격적으로 좋은 냄새가요. 


아이는 그러고는 웃으면서 도망가버렸어요. 

아빠 귀에다가 쌍욕을 속삭이고 도망가는 자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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