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우울합니다. 오늘은 있던 약속도 모두 취소한 채 누워서 <그래도 살아간다>를 보고 단 맛이 나는 빵과 크림스프를 먹었어요. 일종의 환자놀이인데, 스프를 먹으니 감기 기분이 더 나고 드라마는 제게 올해 최고의 작품이지만 한껏 처질대로 처진 제 개인적 상태에는 썩 좋지는 않으네요.

 

"센 척 해도 괜찮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해도 된다. 하지만 자기 자신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보고 싶지 않아서 애써 못본 척한 부분, 목까지 말이 튀어나오는데도 꾹꾹 눌러놨던 것을 전부다 훌훌 꺼내어 자신과는 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은 자신뿐이다. 자기 자신에게서도 소외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언니가 쓴 글 중 몇 줄이에요.  언니는 부쩍 표정이 어두워진 제게 '너의 예민함과 관찰력을 믿어'라고 했어요. 그렇게 바라본 마음은 틀림이 없을 거라고. '내가 이런데 어때, 배째' 한번쯤 이렇게 해 버려도 문제 없을 거라고. 문자창을 읽고 읽고 또 읽었죠.

"행복하다"라고, 적어도 혼자 있을 때 중얼거리는 적이 꽤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급강하한 건지. 어렴풋이 그렸던 이상에 조금 가까워진 결과물을 완성했을 때. 바라던 취재거리를 따냈을 때. 우연한 경로로 오랫동안 아껴온 예술가를 만나게 됐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사람들과 강아지처럼 뒹굴거리고 장난치는 온전한 휴식의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그랬어요. 하지만 대부분이 '일'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문득 드는 컴컴한 의심은 ('이 행복은 마약같은 것이다. 중독된다. '일과 보상'이라는 마약이다) 못 본 척 고개를 돌렸죠. 위험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제, 그리고 그제, 아마도 일주일 전, 아니면 한달여전.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어떤 순간이 생겼는데, 그게 뭐냐면 '생각멈춤'의 순간. 퓨즈가 나간 듯 '외면'하게 되는 상태요. '나 자신'과 관련된 일이면 생각하기가 싫어요. 왜? 안 해도 별 일이 없다 보니까 자꾸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리고는 마음은 달음질쳐요. 일, 음악, 영화, 정치, 가십, 스케줄.

남루한 자아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은 귀찮고, 무서우며 왠지 지루한 일이니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에요. 어디서부터 관찰해야 할지, 어느 파트를 자세히 봐야 할지 계획을 짜는 일도 무리라고 느껴지고.

잘 모르겠어요 아마 이 글도 결론 없는 희미한 글로 마무리될 게 틀림없어요. 누군가는 몇 가지를 그만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네요 다음날 지옥도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이래도 지옥, 저래도 지옥이라면 질러라도 보라고.

'아, 역시 게으르고 빈둥대는 상태가 편안하고 익숙해'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얼른 전에 말한 일 끝내서 달라고 눙치는 이도 있었고요.

글감 몇 개의 마감을 미루고 있어요. 이 지독한 지옥감은 분명 그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겠죠. 비슷한 경험이 몇백번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송고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그만 개운해져선 다른 일에 돌입해버렸었어요 다시 '돌아보지' 않았죠, 두고 온 지옥을. 이번에도 쓴 커피와 단 초콜렛을 소비해가며 피가 마르는 마감을 마치고 나면 또 정체모를 자신감과 즐거움에 휩싸일 게 눈에 훤해요..그리고는 또다시 정신없는 마감 릴레이에서 허우적대요. 뭐 하나에 집중하면 밥을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잊곤 하는 성격이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산만하긴 하지만. 집중력이 강한건지 산만한지 저도 헷갈리는 성격. 그런데 무서운 건요  몰입의 순간 느낀 자신감과 즐거움이 온전한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일로 평가받는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과 달콤한 칭찬과 돈으로 치환되는 보상에 중독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려요 종종.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바라보고는 있는데.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지만, 발등에 떨어진 일감이 너무 많네요. 제 생활과 스케줄을 좀 더 느슨하게 조정해야 하는데, 그 결과를 제가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프리랜서에게 분명 단점인 성격이겠죠 이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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