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00:15
- 1962년작이니 나온지 60년이 넘었네요(...) 런닝타임은 1시간 18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그거슨 참으로 전설의 레전드... 그런 영화인 것입니다. ㅋㅋㅋ)
- 여자들이 탄 차가 랄라라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남자들이 탄 차가 와서 도발을 해요. 여자들은 도전을 받아주고 둘은 위험한 길을 위험하게 막 달리다가... 여자들이 탄 차가 다리 밑 강으로 떨어집니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물속 상황이 구려서 차를 금방 찾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여자 한 명이 물 속에서 타박타박 걸어 나와요.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된 건지, 어떻게 나온 건지는 기억을 못하구요.
며칠 후 정신을 수습한 여자 '메리 헨리'는 혼자 차를 몰고 새 직장이 있는 동네로 향하는데. 그 곳엔 오지라퍼 하숙집 할매도 있고, 성희롱에 가까운 수위로 줄기차게 들이대는 옆방 총각도 있고, 상냥하지만 좀 귀찮은 고용주 목사님도 있고, 결정적으로 자꾸만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정체 불명의 남자 그림자가 있습니다...
(도발에 약한, 그리고 겁 없는 난폭 운전 친구를 둔 덕에 인생 대차게 꼬이는 불행한 녀자. 메리 헨리님 되시겠습니다.)
- 일단 호러 장르에서 영화사적 자리 하나를 든든히 차지하고 있는 영홥니다. 이후로 수도 없이 변주되는 어떤 반전 스토리의 원조격이거든요. 사실 뭐 위의 도입부 요약만 봐도 그게 뭔지는 빤히 보입니다만. 스포일러는 나중에 적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생략하구요. ㅋㅋ 혹시 아직도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에게는 이게 그렇게 큰 장점은 아닐 거에요. 결국 결말이 뻔하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게 또 장점이기도 해요. 결말은 뻔하지만 영화가 그 반전 하나에만 목을 매다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오히려 후대의 따라쟁이들 중 다소 보다는 여전히 우월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상당히 이쁘세요. 이후에 찍은 영화가 두 편 뿐이고 대표작이고 뭐고 기억할만한 역으로 나온 게 이 영화 하나 뿐이라는 게 이상할 정도로 괜찮으십니다.)
- 그리고 영화 제작에 대한 비하인드와 개봉 이후에 흘러간 영화의 운명, 그리고 관련자들의 후일담 같은 것들도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재밌습니다. 말하자면 갑툭튀 듣보들이 만든 싸구려 B급 호러 영화인 것인데요. 알고 보면 그 갑툭튀 듣보들이 엄밀히 말해 갑툭튀 듣보는 아닌 것이고... 뭐 그런데 그걸 여기 구구절절 적지는 않겠구요.
대충 '개봉 땐 망했으나 매니아들 생겨서 나중에 재평가 됐어요' 스토리를 대충 비슷하게 따라간 영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 디테일이 좀 특이한 편이라는 거.
(처음 볼 땐 '대체 이 캐릭터는 왜 나오는 건데? 싶었던 옆방 추근덕 남자 파트도 몇 번 보다 보면 이해가 되고 납득도 되고 그렇구요.)
- 마지막으로 의외로 잘 만든 영화라는 것도 좀 특이한 점(?)입니다.
이런저런 서브 텍스트들이 빼곡한 이야기에다가 결말도 '이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라는 식의 결말인데요. 그 서브 텍스트들이 대체로 만든 사람들이 이미 의도해서 만들어 넣은 것들로 보이는데 그게 꽤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구요. 결말도 대충 '애매하게 끝내면 더 흥미롭겠지!'라는 수준을 넘어서 상당히 깔끔하게 중의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도록 잘 만들어져 있어요.
흑백을 선택한 거나 등장 인물이 별로 없는 거나 황량한 장소들이 주 배경인 거나 사실은 다 제작비와 관련된 선택이겠습니다만. 촬영이 상당히 좋고 각본이나 스토리도 다 그런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어서 가난한 영화라는 느낌은 별로 안 들어요. '아하~ 호러로 예술하고 싶으셨구나~' 라는 생각은 많이 듭니다만. 그건 단점은 아니잖아요? ㅋㅋ
그리고 당연히 하나도 안 무섭지만, 클라이막스가 전개되는 마지막 십여분 정도는 연출이 상당히 좋아서 기괴하고 불쾌하단 느낌이 충분히 전달이 돼요. 이 정도면 분명히 재능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었구나... 싶은데 불행히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이 영화의 주 스탭들이 다시 장르물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고 하죠. 참 안타까운 재능의 낭비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혀 안 무섭긴 하지만)
(탁월하게 모자란 제작비에 비하면 가난한 티 안 내면서 상당히 잘 찍어낸 편입니다.)
- 대충 빠르게 마무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일단 워낙 명성이 높은 전설의 영화 중 하나라서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실만 하구요.
그렇게 한 번 보신 후에 뒷 이야기를 찾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면 또 재밌습니다. ㅋㅋ 이런 식으로 즐길수 있는 영화에요.
비록 호러 주제에 거의 안 무섭고. 또 70여분 밖에 안 되는 런닝 타임 중에도 잉여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중간중간 있고. 가끔은 연출이나 연기가 그냥 허접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렇게 단점도 명확한 작품입니다만. 후대에 미친 무지막지한 영향과 그 흥미진진한 배경 스토리를 알고 보면 다시 한 번 뤼스펙을 바치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호러를 한 번 보고 싶은데 무서운 건 못 견디는 분들에게 추천하구요. ㅋㅋㅋ 호러 팬인데 이 영화는 아직 못 보셨다든가 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분명한 장점들도 있는 영화여서요. 전 이번에 아마 세 번째쯤 되는 것 같은데, 볼 때마다 다른 기분으로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저로 하여금 잘 알지도 못하는 '독일 표현주의 블라블라' 드립을 치고 싶게 만드는 우리 '물속 남자'님이십니다. 후대에 영향도 많이 남기셨구요.)
+ 사실 훨씬 긴 글을 주절주절 적어대다가 문득 듀나님 리뷰를 찾아 보고는 대부분 날려 버리고 급 마무리 했습니다. 제가 적던 이야기들은 죄다 들어가 있고 거기에 덧붙여서 제가 몰랐던 얘기들까지 와장창 적어 놓으셔서요. 심심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시길.
http://www.djuna.kr/movies/carnival_of_souls.html
(와! 23년 묵은 리뷰입니다!!!)
++ 전 요 옛날 일본 사람들 포스터 제작 센스가 참 맘에 든단 말이죠.
공포의 족적!!! ㅋㅋㅋㅋㅋ
+++ 그래서 스포일러 파트입니다. 결말 모르실 / 눈치 못 채실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ㅋㅋㅋ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메리 헨리는 한동안 '대체 이런 게 왜 중요한데?' 싶은 일들을 주야장창 겪습니다. 옆방 남자의 치근덕거림. 하숙집 주인의 상냥한 척하는 오지랖. 길에서 마주친 의사의 강제 상담. (정신과 의사도 아닌데!!) 그리고 역시 잘 해주고 인자한 척 하지만 자꾸만 평가질하며 꼰대스럽게 구는 교회 목사님이라든가... 결정적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물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정체 불명의 남자와 이유를 알 수 없게 신경 쓰이는 문 닫은 쇼핑몰.
그러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멘탈이 나간 메리 헨리는 다짜고짜 자기 차를 몰고 이 도시를 떠나려고 합니다만. 차 상태가 안 좋아서 먼저 정비소를 찾아가 정비를 부탁해 놓고 차 안에서 기다립니다만. 또 불쑥 나타나는 '물속 남자' 때문에 거리로 뛰쳐 나가는데요. 그 순간 뭔가 뾰로롱~ 하더니 갑자기 세상에서 단절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거리는 평소와 다름 없이 잘 돌아가는데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 못 하게 돼요. 그래도 어떻게든 도시를 떠나 보겠다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도 타 보지만 그 안엔 마치 좀비처럼 구는 괴인들이 우글거리고, 그렇게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정비소의 차 안에서 잠을 깹니다. 어익후 다행이네. 그래 다 꿈이었구나! 하고 차를 몰고 휭휭 달리는 메리가 간 곳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던 그 문 닫은 쇼핑몰 빌딩이구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안에 들어간 메리는 그 안에서 괴상한 무도회를 벌이고 있는 '물속 남자'와 누군지 모를 사람들을 발견하고. 한참 구경하다가 결국 그들에게 쫓기고, 죽어라고 달리다가 결국 바닷가 모래사장에 쓰러지고, 괴인들이 메리를 덮칩니다.
장면이 바뀌면 경찰들이 와서 모래사장의 발자국을 보며 "아, 그게 분명히 이리 달려와서 여기에서 쓰러져 이리저리한 건데, 이후의 흔적이 하나도 없네요? 어허..." 이런 대화를 나누고요. 다시 장면이 바뀌면 도입부의 교통 사고가 났던 그 강입니다. 드디어 경찰들이 물에 빠진 자동차를 발견해서 견인했구요. 그 안에는 차에 원래 타고 있던 여자들이 그 모습 그대로 익사해서 담겨 있구요. 당연히 그 중에는 메리 헨리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의 아무 설명 없이 단호하게 바로 끝. 이에요.
2023.11.02 03:29
2023.11.02 23:35
사실 본문에는 되게 잘 이해한 것처럼 적어놨지만 저도 잘 모릅니다. ㅋㅋㅋ 대충 이런저런 식으로 해석되게 짜놨구나... 라든가, 대애충 그쪽 방면(?)으로 사람들 할 얘기가 많겠네... 라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죠. 말씀하신 '유치한 의문들'을 따져 보는 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도록 잘 짜 놓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구요.
듀나님의 저 시절 리뷰들은 요즘보다 좀 더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 느낌이 진하게 들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세기 씨네필 느낌이랄까... 그래서 가끔 일부러 듀나님 옛날 리뷰들 찾아서 다시 읽곤 합니다. 이 리뷰도 그 중에서 좋아하는 리뷰라서 저도 여러 번 읽었어요. 하하.
2023.11.02 10:28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별로 보탤 말은 없지만 저는 오르간을 사용한 주제 음악이 기억에 남습니다. 메리의 직업이 오르간 연주자라서 교회에 음악 연주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귀신들이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음은 오르간 특유의 귀기어린 느낌이 너무 잘 살아 있어서 정말 딱이었거든요. 폐허가 된 놀이 공원의 주제 음악으로도 아주 적절했다고 봅니다.
2023.11.02 23:39
그 오르간이 제작비 모자란 인디 영화를 좀 더 럭셔리해 보이는 데 공헌을 크게 한 것 같아요. ㅋㅋ 방 몇 개 사이즈는 될 법한 거대한 오르간이 직접 등장하는 것도 그랬고, 말씀대로 음악이 영화 분위기랑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되게 잘 쓰인 장면들도 있었구요. 이런 저렴한 영화가 음악까지 좋은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여러모로 능력자들이 만든 영화 같단 생각을 했네요. 모자란 부분도 많지만, 이 사람들이 계속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이란 생각에 아쉬워요.
2023.11.03 07:43
전 처음에 듀나님 리뷰로 알게된영화에요
이영화 보고싶어서 여러루트로 엄청 찾았던 기억이나네요
요즘엔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시절이니 세월 좋아졌어요
2023.11.03 21:22
전 영화를 먼저 보긴 했는데, 아마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 걸 모르고 케이블인지 어딘지에서 중간부터 대충 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듀나님 리뷰를 통해 그런 전설의 영화라는 걸 알고, 그 후에 다시 제대로 봤던 기억인데요. 요즘 OTT에 있는 버전은 화질이 되게 좋아져서 예전에 봤던 거랑은 느낌이 또 달라요. 전에 보고 괜찮으셨으면 화질 좋은 걸로 한 번 더 보셔도 좋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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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보다 링크하신 듀나님의 리뷰를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까지 느끼며 읽었고, 더 좋아합니다. 리뷰를 여러번 읽었었고 링크해주신 덕분에 한번 더 읽었습니다. 듀나님의 옛날 리뷰에는 요즘 리뷰에는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 영혼의 카니발 리뷰는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영화를 보아도 그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리뷰를 보고나면 나도 뭔가 깨달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