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온다

2024.02.15 10:17

Sonny 조회 수: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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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 전에 조카의 방문이 좀 부담이 된다고 글을 하나 썼었죠. 제 동생 부부와 조카가 함께 방문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조카는 저나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방방거리기 시작했는데 별 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맞장구를 쳐주느라 에너지가 다 빨렸습니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같은 도시에 있어서 동생 가족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에는 그 틈이 생기면 저희 아버지도 한숨을 몰아내쉬더라구요. 모든 생활패턴이 조카에게 맞춰지기 때문에 집의 주인인 아버지는 그게 별로 편하지 않을 수 밖에요. 어머니는 그저 손자 귀여워하는 마음이 큽니다만.


이를테면, 제 동생은 조카 앞에서 절대 동영상을 켜지 못하게 합니다. 티비를 틀지 않는 건 당연하고 핸드폰 동영상 시청도 안됩니다. 한 네다섯살까지는 이런 디지털 영상을 접하지 않게끔 할 거라고 하는데 저는 그 정책(?)에 아주 대찬성입니다. 어른들도 정신못차리고 숏폼 및 10분 단위의 영상에 정신못차리고 중독되는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런 부분에 큰 불편이 없는데 아버지는 조금 갑갑해하시죠. 밥먹으면서 뉴스도 보고 싶고 재미없는 외화도 멍하니 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시니까요. 그러니까 조카와 시간을 보내면 조카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계속 교류를 하는 것인데 이게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긴 시간을 지속하면서 하기엔 쉽지 않죠. 그러니 기쁨보다도 노동이 훨씬 크게 됩니다. 


거기에 제 동생의 태도가 조금 꺼끌거린다고 느꼈습니다. 제 동생은 타인에게 어떤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생이 가게 주인에게 아이스크림 값을 흥정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소상공인들 남겨먹는 거 없으니 그렇게 부담주지 말라고 해서 한번 다툰 적이 있거든요. 이런 태도가 본인 자식의 양육과 결부되고 그 사람들이 가족이면 더 당연하게 요구를 합니다. 이를테면 조카는 계란 알러지가 있으니 음식을 조리할 때 조심해야하는데, 동생이 그걸 엄마에게 시험관처럼 캐묻고 야단치는 형식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죠. 세대차이가 있다보니 어머니는 알러지에 덜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원래도 막 그렇게 칼같이 딱딱 구분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그러니 동생이 엄마를 약간 '부리는' 식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런 건 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조카가 저를 보고 혼자 울면서 땡깡부리길래 제가 방에 들어가자 제가 조카에게 사과를 하고 풀어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시간이 좀 흐르고 조카랑 또 같이 방방거리면서도 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조카가 집에 온다는 건 결국 온 가족이 육아의 책임을 나눠야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명절 연휴 때에는 좀 편히 쉬고 싶습니다ㅎㅎ 조카를 귀여워할 수는 있지만 이런 저런 일들에 적극적인 책임까지 질 준비는 아직 되어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딜 데리고 놀러가면 모르겠는데 생활 패턴 자체를 조카에게 맞춰야 한다는 게 좀 번거롭긴 하더군요.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제가 맡아줄 상황이 되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아이를 이뻐하는 마음을 사촌동생에게 다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카가 귀엽긴 해도 큰 책임이나 애착이 아직까지 생기진 않군요. 이것도 시간 지나면서 생각해볼 일이지만 '첫 애기친척'이란 정이 또 따로 있는 건 아닌가 혼자 의심해봅니다. 그냥 제가 아이들을 안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ㅠ


@ 그래도 조카가 귀여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배를 먹으면서 강아지 인형에게 "이거 정말 맛있어~"라고 말하는 건 촬영을 못해서 아쉬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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