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집 뒤의 통로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서 이틀 째에 집 뒤로 가 봤더니,

손바닥에 올라올 정도로 작은 새끼 고양이들이 여섯 마리나 있더군요.

 

저희 집이 길고양이들의 아지트입니다.

집 뒤에 복도처럼 작은 통로가 있는데 두 건물 사이여서 눈에 띄지도 않고,

통로도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아서 고양이들에겐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희 집 개가 쓰지 않는 커다란 고무개집도 갖다 놓고

대야에 물도 갈아주는 것으로 길고양이의 거처와 식수를 제공해 왔습니다.

 

주로 임신한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을 때 저희 집 뒷통로를 잘 이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끼 고양이들을 심심치 않게 봤는데, 이번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가 죽었거나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이틀 내내 여섯 마리가 다 있는데, 어미 고양이가 와서 봐주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뼈 밖에 안 남은 새끼 고양이들은 금방 죽을 것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에 먹이를 주었습니다.

기르는 개에게 생식을 시키고 있어서, 생닭가슴살을 간 것에 우유를 섞어서 주니까 정말 잘 먹더군요.

까만 고양이 다섯, 갈색 얼룩이 고양이 한 마리인데, 어미가 핥아주질 않아서 눈곱이 덕지덕지 끼어있고,

한 마리는 한쪽 눈이 완전히 감겨서 퉁방울처럼 튀어나와 있는 게 눈이 먼 것 같았습니다.

어찌 닦아 주려고 해도 경계심이 워낙 강해서 잡을 수조차 없더라고요.

잘 다니는 곳에 먹이만 놔 주고 이따가 가서 그릇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보를 찾아보니까 다행히 젖을 막 뗀 고양이들 같더라고요.

그래서 클 때까진 개의 생식을 나눠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삼일 째인 오늘 아침, 비가 많이 왔죠.

아침에 밥을 만들어 나가보니 고양이들이 없더군요.

어미가 다 데려갔나, 그러길 바라며 집에 있는데, 낮부터 고양이들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뒤를 나가 봤더니 세 마리가 비를 흠뻑 맞고 죽어라 울어대고 있더군요.

비에 흠뻑 젖어 움직이지도 못 하길래 세 마리를 다 잡아서 데려와,

따뜻한 물에 담가서 닦아 주고난 다음, 전부 다 드라이기로 말려 주었습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여기 게시판에도 올렸더랬습니다.

 

누군가 쇼핑백에 수건으로 둘둘 말아 새끼 고양이 둘을 버린 걸 발견,  

데려와서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초유를 먹였는데 두 시간 만에 둘 다 죽어서

엄청 울고, 마당에 묻어 줬거든요.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냉정하게 감정적 거리를 두고 보살펴주자 싶었습니다.

특히나 한 마리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는데요.

다행히, 드라이기의 훈풍에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가누더라고요.

 

한 가지 다행인 건, 빗물에 눈곱이 씻겨서 눈망울이 분명히 보이는데,

눈이 먼게 아니라 멀쩡하고 예쁜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전날, 저처럼 개를 키우고 생식을 먹이는   동네친구가 제 얘길 듣고 고양이들 갖다주라고

소심장 얼린 것을 해동해둔 게 있었는데, 그걸 우유에 말아서 스프 상태로 만들어 먹여주었더니, 정말 잘 먹는겁니다.

특히나, 죽은 것처럼 몸도 못 가누던 고양이에겐 주사기로 먹였더니, 한 시간 쯤 지나서 기력을 찾더라고요. (생 내장의 힘!)

 

키우는 개의 케이지 안에 신문을 겹으로 깔고 세 마리 다 넣었습니다.

체온저하증도 극복한 것 같고, 넣어둔 내장우유죽도 싹 먹어 치웠고, 한숨 돌렸습니다.

 

한 시간 쯤 지나, 또 다른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같은 자리에

갈색 얼룩이가, 마찬가지로 완전히 뻗어 있더라고요.

똑같은 방법으로 회생시키고 케이지에 넣어두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급히 고양이용 분유를 가져와 주었습니다.

분유를 타서 줬더니, 다들 잘 먹고, 잘 쌉니다.

 

순둥이인 저희 집 개는 처음엔 케이지 빼앗긴 게 억울한 건지 하울링을 하더니,(비글입니다 ^^)

이젠 신경도 안 쓰네요.

 

해가 나면 다시 뒤에 갖다 놔야하겠지요?

아니면, 한동안 저런 식으로 보호를 해 줘야 할까요. 고민 됩니다.

 

아이들이 왜 비가 오는데도 고무개집에 안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안에 이불도 깔아 줬는데, 이불엔 고양이 발자국들도 보였는데, 다른 고양이였을까요?

 

주는 밥만 먹고 늘 햇빛 아래 있더라고요.

비가 와도 무방비로 맞기만 하고... 엄마를 기다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머지 두 마리는 어디서 헤매고 있을까요, 죽은 걸까요...

 

지금이라도 뒤로 와서 울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제 바람은 어차피 저희 집 뒤를 거처로 삼았으니, 저와 한 공간에 있을 때까지는

밥과 거처를 책임질 생각입니다.

 

지금 키우는 개 두 마리 때문에 거둔다는 건 무리일 것 같고, 고양이들도 바라는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런데 갈색얼룩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더라고요. 만져도 가만히 있고, 얼굴도 제일 예뻐요.

입양을 원하는 분이 있으면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이 좀 더 기력을 찾으면 사진 찍어서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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