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트위터 글을 보셨는지요.
기분 좋네요. 이렇게 당당하고 씩씩하면서도 사려깊은 젊은이의 글을 보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만큼 사려깊고 말도 단정하여 나이만 먹은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 일어나세요 용사들이여.
우리들은 아직 젊어요.

 

오래전 어딘가에서 스치듯 만난 분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촛불집회 때 열심히 하다가 좌절하고 포기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과가 없다고, 소용없다고, 해봐야 쓸데없다고 계속 집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 마치 진흙탕에 허리를 박고 팔을 휘젓는 것 같았어요. 누구든 잡히는 대로 자신이 빠진 좌절에 머리를 처박으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절대로 저렇겐 되지 말아야 겠다... 라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결심을 돌이키게 되네요.


 

저 역시도 인생에 있어 이렇게까지 정치 문제로 맥이 빠진 적이 처음입니다. 이제 내 손에 들어올 것만 같았던 희망이 모래처럼 스르륵 사라져버리고 케케묵은 망령이 내 목을 틀어쥐는 것만 같은. 뭐 그런 거죠.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래 찍은 인간들 다 죽어봐라 ㅋㅋㅋ 라는 - 진짜 유치한 생각마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아인의 글을 보고 부끄럽네요.
나이는 더 먹은 주제에 밥 먹기 싫은 어린애처럼 팅팅 심술을 부리고 있었어요.
지금 좌절할 때가 아니다 싶습니다.
당선자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사회의 대통합을 이끌어가라고 압력을 넣어야 하는 게 지금 할 일입니다. 선거에서 진 건 너 때문이야, 이렇게 된 거 다 뒤졌어! 하는 건... 우와, 밥도 안 나오고 쌀도 안 나와요. 허무하죠.

 

저는 이번에 대통령이 된 그 사람이 아주 싫지만. 그 사람 본인보다도 등에 짊어진 역사의 망령들이 진짜 싫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그러니 욕은 안 붙이렵니다. 어디 잘 하나 보자 라는 독살스런 마음도 접고, 정치도 계속 봐야지요. 아직 괴롭습니다만, 그렇다고 여기서 관심을 꺼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엉망진창인 세상이 펼쳐질 거여요.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독재와 맞서 싸우던 피 끓는 젊은이들이 지금 움켜쥔 것을 놓지 않으려 안주하는 5. 60대가 되었듯이.
저 역시 늙어가겠고 좌절하고 또 완고해지겠지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노력해야 겠지요.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삶을 구축하고 어쩌고가 아니라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듣고 이야기하는. 물론 쉽지 않을 거여요.

 

 

어제부터 미친듯이 글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일단 소설부터. 그런 다음 친한 편집자님과 손 꼭 잡고 애들도 읽을 수 있는 역사서를 만들자고 약속했습니다. 이제부터 자료를 모으고, 포맷을 정하고 글을 쓸 겁니다.

계층간 나이간 지역간, 분열과 분노와 스트레스가 충만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물어뜯는 여기 대한민국이란 정글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게.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고 눈물 흘릴 수 있게 하는... 지금 아주 거창하게 들려서 쓰는 제가 쪽팔려 손가락이 오그리토그리가 될 정도이긴 하지만. 바로 그런 역사책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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