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애프터눈티와 자유

2023.10.22 19:02

여은성 조회 수:223

 

 1.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려면 일주일에 며칠을 자유로워야 할까요? 7일은 아니죠. 7일 내내 자유로우면 설레는 것이 없고 안타까움이 없으니까요.



 2.왜냐하면 일주일에 1~2일은 일해야 설렘과 안타까움이 있거든요. 사실 말이 하루지, 일주일에 일하는 날이 하루라고 해도 남은 6일이 그 하루에 의해 좌지우지돼요. 일단 일해야 하는 그 하루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긴장되니까요. 어떤식으로 창작을 할지 미리미리 레이아웃도 짜고 그래야 하죠.


 그리고 일하는 날엔 밤을 새야 하고 일한 다음날은 피로에 쩔어 하루종일 자느라 못 놀아요. 이미 이것만으로도 일주일에 3~4일은 일하는 하루를 위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거죠.



 3.하지만 일이 끝나고 하루 쉰 다음날엔 엄청난 설렘이 느껴지는 법이예요. 드디어 해방이다! 오늘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강남도 중구도 강동도...그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곳을 가던, 아니면 일하느라 못 간 익숙한 곳을 가던 너무나 행복하죠.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조바심이 들어요. 이제 하루만 자면 다시 슬슬 일하는 날을 준비해야 하는데...라는 긴장감과 조바심. 그리고 그나마 노는 날이 사라져 간다는 안타까움...그런 것들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도 또다시 놀러나가게 돼요. 이번주의 내게 딱 하루 남은 자유의 시간...오늘이 지나가 버리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상품권을 써야만 하니까요.



 4.휴.



 5.돈이란 건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 안 써도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에 쓸 수 있어요. 하지만 '노는 날'은 오늘 안 쓰면 다시는 못 쓰는 거거든요. 돈은 언제든 교환가치를 지니지만 '쉬는 날'은 그 날 가치있는 것과 교환해 먹어야만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백수일 때보다 훨씬 충실해요. 백수일 때는 오늘 못 놀면 내일 놀아도 되고 내일 못 놀면 내일 모레 놀아도 되지만, 일을 하면 놀 수 있는 날에 놀아둬야 하니까요. 


 돈이란 건 낭비하면 다시 똑같은 걸로 채울 수 있고, 낭비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쓰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쉬는 날은 그 날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이 가치있게 느껴진다 이거죠.



 6.그리고 또다시 일하는 날이 오면 한숨을 푹푹 쉬며 일하기 싫지만 일하고...그 시간을 참아내며 어떻게든 이번 주 일을 끝내면? 엄청난 황홀감과 함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이 황금같은 쉬는 날에 대체 뭘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요.



 7.그러니까 인간들이 맨날 말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적절한 족쇄가 필요하다 이거죠. 왜냐면 일주일 내내 자유로우면 그 자유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거든요. 돈이나 친구와 마찬가지로, 자유 또한 그것을 획득하는 그 순간에만 확실하게 체감이 되니까요.



 8.전에 썼듯이 나는 돈을 좋아하지만 이미 가진 돈은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돈...내 돈이 아니던 돈이 내 명의의 돈으로 탈바꿈하는 그 짧은 순간을 좋아하는 거죠. 친구도 그래요. 친구가 아니던 사람이 친구가 되는, 그 아주 짧은 순간을 좋아하는 거거든요. 돈도 친구도 새것이 좋다 이거죠.


 

 

 

 -----------------------------------------------





 자유 또한 자유롭지 않다가 자유롭게 되는 그 순간이 있어야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이클이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게 가장 좋죠.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니, 맨날 백수이던 때보다 오히려 새로운 곳을 자주 가게 돼요. 일주일에 자유로운 날이 7일이면 늘 하던 걸 하면서 때우지만 일주일에 자유로운 날이 2일이면 그 2일을 어떻게든 가치있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니까요.


 애프터눈티 얘기를하면서 쓰려고 했는데 애프터눈티 얘기는 안 나왔네요. 다음에 써보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354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80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216
124836 [자유를 찾은 혀]를 읽고. [2] thoma 2023.11.26 182
124835 잡담 - 돌잔치 그 후, 배드 아이디어 - 자기편의적 생각,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 다시듣기 상수 2023.11.26 153
124834 프레임드 #625 [1] Lunagazer 2023.11.26 71
124833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영화 "미스터 존스" 추천해요 [2] 산호초2010 2023.11.26 172
124832 여러분의 버킷 리스트 [4] 칼리토 2023.11.26 232
124831 영화 전단지가 없어졌다는군요 [4] 돌도끼 2023.11.26 429
124830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대해 책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3] 산호초2010 2023.11.26 179
124829 뒤늦게 올리는 [잠] 후기 (스포) [6] Sonny 2023.11.26 479
124828 [영화바낭] 올해의 조용한 화제작, '잠'을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23.11.25 669
124827 chat-gpt 음성 채팅 [2] theforce 2023.11.25 206
124826 프레임드 #624 [6] Lunagazer 2023.11.25 65
124825 일본책을 가져오지 않고 자체적으로 삽화가를 동원하면/ 계림문고 [6] 김전일 2023.11.25 364
124824 오 나의 귀신님을 보다가 [4] catgotmy 2023.11.25 201
124823 이런저런 잡담...(대상화) [1] 여은성 2023.11.25 314
124822 2023 청룡영화상 수상 결과(씨네21 트위터발) [4] 상수 2023.11.25 566
124821 [왓챠바낭] 듣보 호러의 턴이 돌아왔습니다. 지수원 안 나오는 '배니싱 트윈' 잡담 [2] 로이배티 2023.11.25 242
124820 프레임드 #623 [4] Lunagazer 2023.11.24 81
124819 블랙핑크 영국 MBE 수여 상수 2023.11.24 201
124818 김강민 한화 행 [1] daviddain 2023.11.24 167
124817 로이베티님 글 받아서/ 사서 고생 [4] 김전일 2023.11.24 31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