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2 14:15
아래 강신주에 관련된 글이 올라왔네요. 의외로 아니 뭐 그에 대한 평가가 제법 좋은 것에 대해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그냥 돌팔이 의사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에요. 뭐 그 의술도 의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을 것 같지만.
뭐 돌팔이의 말재주에 치유가 되거나 사회개혁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부작용이나 의학 자체의 수준도 떨어뜨리는 결과밖에 기대할게 없습니다.
난다긴다 하는 우리가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학자를 공부하고 그 학자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3년이라고 합니다.(전공 교수의 수준에서) 게다가 자신의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학자에 대해 나름 저명한 평가를 받는 학자들은 대부분 50이 넘거나, 그 분야에서 (그 field에서) 보통 20년은 굶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 학자 한명 한명 (예를 들어 하버마스, 부르디외, 맑스는 말할것도 없고, 푸코 등등등등등) 자체가 요구하는 콘텐츠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며 이미 명성을 가진 인물들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를 전공한 사람들에 의해 너무나 많은 연구가 개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저명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다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문을 쓸 수도 없고, 전문 저널에 실리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처럼 내기만 하면 받아주는 게 아니라 해외 유망한 전문저널에서 거의 6개월, 길게는 1년이란 시간 검증을 거쳐야 겨우 그 학자에 대한 '공인된 해석'으로 인정받습니다.
이게 그가 맨날 가지고 와서 떠드는 여러 철학적 이슈들에 대한 '장'에 속한 사람의 태도이고, 강신주는 애초에 이 분야에 더이상 속하다고 보기도 민망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연구(공부)에서 나름의 '실적'을 거두고, 그 철학자에 대한 나름의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극소수에 해당하고, 그 소수의 밑 정도 평가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오히려 강신주 같이 자신이 배우거나 '맘대로 생각한 것'을 도구 삼아 날뛰는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학자'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 인문학계의 현실입니다.(또 그런 쓸만한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은 또 그 인문학을 써먹고, 결국에는 인문학은 '아무나 ' 다 할 수 있고, 아무나 책 몇권 읽고 '전문가'가 됩니다. 자기 맘대로 해석하면 모든 게 참 쉽습니다.)
강신주 씨에 대해 학자로서의 평가는 '논할 가치가 없다' 정도입니다. 인문'학자'/철'학자'에서 그가 '학자'의 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하기에는 그는 이미 공부를 접은 사람입니다. 그의 전공은 '동양철학'이고 대부분 자신의 전공에 박사논문까지 갈 정도면, 그 철학 공부하느라 다른 철학에 대해 솔직히 누군가에게 강연할만큼의 지식을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설령 그가 정말 열심히 '공부'한 인문학자 라고 할 지라도 그는 자신의 지식을 '전문가'들에게 평가받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죠. 누가 그가 헛소리를 하는지 옳은 소리를 하는지 판단해줄까요? 그 분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매일 전문가들에게 평가받고 거부받고 다시 수정하는 일에 거의 반평생을 보냅니다. 50년이 넘는 동안 개진된 현대철학, 사회과학이론이 그렇게 대중들에게 '간결한 명령법'으로 전달될 수 있는 차원일리가 만무하죠. 학자들은 지식을 '써먹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애초에 그의 '써먹는 방식' 또한 너무 후집니다. 아마 그는 '전공분야의 사람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할겁니다. 왜냐면 다 쉽게 반박당하거나 자신이 가진 오류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의 얘기를 많은 철학자와 사회과학이론, 그리고 비판이론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위자'들을 윽박지르면서 내가 너에게 깨달음을 주겠노라 라고 말하고 있죠. 그 깨달음을 주겠다고 나섰던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성공한 깨달음'의 사례가 있나요? 성공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과연 학자의 가르침 덕분인지 아니면 자신의 '제멋대로 알아먹은 결과'인지는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그가 밥먹듯이 얘기하는 '넌 착취당하고 있는 노예다' 이제 200년도 더 된 방식이고, 그 노예들이 인문학자들의 계몽에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오직 '개인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거나 자본주의의 물화와 소외를 벗어난다면 참 좋겠죠. "이제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맑스의 강령이 아직까지도 유효하다면 좋겠지만, 그건 '제대로된 해석'을 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강신주 같은 인문학자들은 그 '해석'조차 공인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제법 대중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강연을 다니는 학자도 있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정도의 해외 학자는 이미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난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쓰는 것도 자신의 전공 안에서지. 전공 밖의 자잘한 고민을 함부로 다루지 않아요. 부르디외가 한국에 왔을 때 , 어느 기자가 "당신의 이론은 어떤 내용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정작 그의 답변은 간단했죠. "당신이 이해하기 어렵다. 매우 매우 복잡하다"
왜 그 인문학자들은 '대중'만큼 옳고 그름을 평가받기를 무서워하는걸까요? 왜 그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물화와 소외'당하는 인간들에서 항상 "예외"일까요? 공부를 많이 해서? 학자 스스로 그 분야에 제대로 된 논문 하나 개진하지 못한 사람이 대중들 앞에서는 의기양양하게 '행위자'를 평가하고 그들에게 해결법을 제시합니다. 자본주의의 착취를 벗어나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나를 봐라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너 혼자 하세요)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렇게 계몽에 의해 자신을 깨닫는 것이 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 이론으로 누군가를 '해방'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그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람이었던지. 수많은 비판이론들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저는 그 강신주 씨의 자신만만함이 오만함을 넘어 돌팔이 의사 특유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사실 지금도 학계의 논쟁적인 이슈고,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죠. (답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론의 가설은 '반박'당하기를 기다릴 뿐, '정설'이 될수 없습니다.)
"이론가가 행위자보다 더 나은 인식과 해석을 갖출 수 있는가?" 이건 철학적, 사회과학의 이슈이고 아직도 논쟁 중입니다. 강신주 씨는 자신이 전제하고 있는 그 가설에 대해 과연 공인된 해석을 인정 받을 수 나 있을까요? 글쎄요. 설령 그가 다른 학자들에 의해 인정받는다고 할 지라도, 한국 인문학계는 지금 변변한 논문을 발표하여 그들을 출산했던 나라들, 영미권, 유럽권의 학자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지도 못합니다. 그냥 그 사람들의 이론을 수입해서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죠. 그 장사의 역사가 벌써 30년 입니다. 역수출은 아직도 꿈에 가깝구요. 이런 판국에서 정작 '장'밖에 있는 사람들은 인문학을 '강신주'같은 사람들에게 배웁니다. 자본주의 - 착취 - 사료 - 벤야민 -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거나, 그 노동을 때려쳐라. 그가 맘대로 한 해석, 정오 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해석을 써먹고 그것이 옳다고 윽박지르며 , 그것을 도구로 주변 사람들을 분석하고 , 그것을 못 알아들으면 ' 이 사람은 내가 뭔 소리 하는지 이해 못하는 수준이구나'라고 서문에 당당히 적습니다.
아니 대체 왜, 고작 학자 따위가 '행위자'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일까요?
그 도구적인 인문학이 과연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 자본주의의 소외로부터 벗어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쎄요.
80년대에 맘대로 맑스를 해석하고 맑스를 써먹던 많은 젊은이들 처럼, 함부로 이론의 결과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바꾸려고 할 때 생기는 것은 상처 뿐이며,
강신주 씨가 이야기한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행위자의 권리입니다. 그는 계몽으로, 이론으로 누군가를 상처줄 권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자신은 언제나 그 상처 '밖'에 있잖아요. 그와 같은 돌팔이 의사는 그 상처를 치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학'이며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지, 함부로 정답을 내리고 그 답을 선전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2시간의 저녁 예능에서 시시껄렁한 잡담과 함께 정답으로 제시하는 문제집은 강신주 씨 혼자 푸시기를 바랍니다.
2014.02.12 14:26
2014.02.12 14:29
좋은 글이네요. 공감 백배입니다.
2014.02.12 14:31
돈주며 등 떠밀 때 저렇게 안 될 자신이 없네요
2014.02.12 14:32
강신주라는 강사한테 관심이 없고, 본문의 인문학 공부론에 대해선 동의 안되는 부분이 꽤 되지만
"고작 학자 따위가 '행위자'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적절한 지적으로 읽히네요.
2014.02.12 14:36
과격한 말씀이지만 학문 하는 사람에 대한 글 쓴 분의 기본 태도에는 동의합니다.
전 이 양반에 대해 조금도 모르지만, 행보를 봤을 때 학자인지는 모르겠고, 학문 하던 사람은 맞는 것 같고, 어차피 이 나라가 그 이상 제대로 된 학자 층에 대해 제대로 된 대접 해줄 수 있는 곳도 아니니, 그냥 사회 수준에 맞는 유명인사를 만들어내는 중이구나 합니다. 그래도 어제 글에서 견주였던 김미경류보다는 이런 사람이 낫지 않나 싶기다가, 고작해야 이 정돈가 싶으면 좀 암담하기도 하고.
2014.02.12 14:39
초창기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값싼 힐링 멘토 그 이상이 아니죠.
2014.02.12 14:39
2014.02.12 14:44
김훈 씨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이 그냥 답이 아닐까 싶어요. "조언은 충고의 형태가 아니라, 고백의 형태를 띄어야 한다"
그냥 자신의 인생을 고백할 뿐, 굳이 타인의 인생에 충고 까지 할 '대단한 사람'이 있기나 한걸까 가 제 생각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차가운 충고보다 따뜻한 고백이 더 많지 않나요. 영화는 그러던데. ㅎ
2014.02.12 14:55
동의합니다. '강연자'일지는 몰라도 '학자'는 아닙니다. 학자, 연구자라면 자기가 말할 수 있는 분야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분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디킨즈 전공자가 강의나 강연 도중 현대프랑스 철학이나 바로크 미술에 대해 여담으로 한두 마디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지요. 분과의 차이와 지식의 전문성 앞에서 신중함이 결여되어 있다면 학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문학, 철학은 엄연한 '학문'인데 이분의 철학관은 역술원 간판에 붙어있는 '철학'이라는 단어와 다를 게 없어보입니다. 현자가 되고 싶다면 되라고 하지요. 하지만 학자는 현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해도요.
2014.02.12 15:09
예전에 이분이 책 한 권을 두고 한 시간 동안 강연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두 개의 분야가 만나는 책이어서 두 분야 전공자 둘이 공역한 건데 제가 그 중 한 명이었거든요. 애초에 큰 기대를 갖고 본 건 아니었지만 보다가 화가 나서 모니터를 뽀갤 뻔 했습니다.
이해가 엽기적으로 피상적인 건 그렇다 쳐도 책에 나온 문장 두어 개를 얘기한 걸 빼면 관련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잡소리로 시간을 채우고 있더군요.
게다가 그 분야를 십년은 공부한 사람으로 여길만큼 어마어마하게 권위적인 어조로 자신있는 단언들을 줄줄이 이어가더라고요.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독, 이해부족, 헛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쪽으로 공부 자체를 5분도 안 한게 뻔히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게 세상이 바라는 인문학의 모습, 인문학의 미래라면 인문학 따위 근절되는 게 낫습니다.
2014.02.12 15:20
"돌팔이 인문학자"라는 표현은 과격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논지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강신주가 '뜨기 전'인 몇 년 전에 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을 너무 매끄럽게 연결해 설명하고 있어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과 사고 배경을 가지고 있는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한 사람의 생각인양 연결시켜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신뢰가 안 가더군요.
인생의 답과 길은 자기가 스스로 찾는 것일진대, 사람들은 자꾸 답을 가르쳐 주고 길을 가리켜 주는 '위대한 스승'을 열망하는 듯하네요. 주식 시장에 득실거리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어차피 그 사람들도 주식 몰라요. 마찬가지로 철학자라고 해서 인생의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2014.02.12 16:18
철학자라는 사람이 tv에서 강연을 한다니까 촐싹맞게 왜 저럴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2014.02.12 16:21
전 인문학자이지만, 강신주박사는 '공중파'가 소화하기에는 조금 투박한 '거친' 특색이 있는 사람이라,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라고 맨처음엔 재미있게 생각했었어요. 근데 점점 지명도가 생기면서, 강박사의 강연이나 텍스트를 몇 번 접하게 되었는데, 눈 뜨고 못봐줄 내용이 간혹 있더군요. 뭐 강박사의 강의나 내용이 그렇게 후지다는 건 아닌데, 무엇보다도 가장 못참겠는 것은 그의 '오만'과 일반 대중 상담자의 삶에 대한 그의 태도의 강팍함이었어요. 인문학은 가장 바탕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겸양이라서, 인문학자적 소양이 전혀 안보이는 발언들을 하고 있어요. 뭐 하지만 나름 특색이 있으시니 미디어판에서의 철학 버전 김미경의 역할을 하시고 계몽 받고 필 받으시고 싶으신 분들은 나름 즐기고 있으신듯...
2014.02.12 16:32
"대중 상담자의 삶에 대한 그의 태도의 강팍함"
공감합니다.
2014.02.12 16:55
2014.02.12 17:09
학자로서 갖춰야 할 첫 번째 미덕은 겸손이라고 생각하는데, 강신주 박사는 그와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2014.02.12 17:18
일단 저는 철학에 문외한입니다만.
그러니까 강신주 책은 학문적인 측면에서 엉터리니까 읽지 말아야된다고 이해했는데 맞게 읽은건가요?
50년 운운하신 부분이 저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아서요.
물론 어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고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최소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라면 입문 및 개론 분야에 대해서 세세한 디테일은 몰라도 틀린 얘기를 하지 않을정도의 소양은 필요한거 아닌가요?
(적어도 제 분야는 그렇습니다)
강신주의 책들이 학술 논문도 아니고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적인데. 교양서적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기본적인 소양도 없으면서 책을 쓰고 철학자 행세를 한다고 주장하시는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 근거를 알고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같은 문외한들에겐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면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은 권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죠.
2014.02.12 17:36
2014.02.12 18:09
질문해주신 부분에 대해 저는 글에 모두 적었습니다. '석사/박사 학위'는 일반인들에게 교양인문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 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가들 (지도교수와 동료들 / 저널의 편집진 등) 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정오를 교정받으며 토론 및 논쟁을 하는 과정입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전공한 분야(보통 좁은 분야일 수 밖에 없는 분야)에 대한 세세하고 방대한 지식의 역사를 배워야하기 때문에 (석사 보다 박사) 사실 다루는 주제나 자격을 갖출만한 전공은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세기 초반이나, 몇몇 천재를 제외하고 '만물박사' '모든 문제를 다룬다' 급의 학자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교양서적'에서 다루는 학자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비롯한 철학교양서들-은 단지 그런 개론 수준의 소개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해석과 자의적인 의미 규정으로 되어있고, 학계는 " 그 의미규정" 하나에 목숨걸고 싸우는 동네 입니다. 일반인들이야 '그런가보다'라고 짐작할 부분이 애초에 전문가들에게는 '논쟁적이고 논문 하나가 나올 만큼의 지식을 요구합니다. 그냥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아니란 거죠. 물론 교양 수준의 지식에서 무엇을 바라냐? 한다면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자의적인 지식'을 도구 삼아 행위자-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라고 상담을 빙자한 명령을 하고 있죠. 그 명령 의 방식 자체도 "글에서 적었듯" 애초에 행위자 이상의 인식론적인 권위를 지식인,이론가가 획득할 수 있느냐 라는 가설을 건들고 있는데,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강신주는 설명한 적도 "전공한 적도 없습니다" 이건 인식론-철학의 이슈니까요. 그것을 "전공자-학위를 담당한 자"가 아닌 사람이 그것을 공공연하게 '강연'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엉터리라는 겁니다. 최소한 "학위"를 딴 사람에게는 말이죠.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 , 일반인을 위한 쉬운 입문서를 쓰신 많은 인문학자를 대상으로 한것을 떠나 그것을 "대중들에게 인기와 강연"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는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부터 고민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비인후과 전공한 사람이 소화장애를 제대로 처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2014.02.12 17:50
2014.02.12 18:05
그럼 어떤 인문학자를 높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저도 배움이 깊진 않습니다만,,(그래서일지도;;) 장자랑 상처받지않을권리는 읽고 좋았습니다.
2014.02.12 18:22
2014.02.12 18:37
2014.02.12 19:01
아 근데, 시강이 자신이 전공한 분야만 가르친다는 건, 음. 너무 이상론이신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게 되어야 맞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실상은 대학에서 같은 학과로 묶일 정도의 인접 분야면 다 가르칩디다. -_-; 전임쯤 달면 모를까 시강이야 뭐, 가까운 데서 불러주면 굽신 하고 따라가는 거 아닌가요. 강의 준비는 그 다음 문제겠고. 물론 동양철학/서양철학은 인문학 다른 분야 중에도 특히 한 학문으로 묶기기 곤란할 정도로 판예하게 다른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인문학 전체를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좀. 네..
시장 상황이 그러니, 위에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들어봤던 대학 수업보다 나은 것 같았다는 경험담도 나오고 하는 거겠죠. 뭐 연구를 하는 연구자와, 강의를 하는 교수/강사는 또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요.
2014.02.12 20:25
2014.02.12 20:41
제가 말하는 건 "철학 시간 강사는 자신이 전공한 분야만 가르친다. "동양철학"(장자)을 전공한 사람이 "서양철학"(보드리야르)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겁니다. 말씀하신 현실적인 상황 자체를 고려하더라도 엉뚱하게 타인의 "직업문제"를 학자의 화두로 고민하지는 않는다는거죠. 수사적으로 말한 건데, 이게 그렇게 이 논의에서 주요한 논지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저는 지금 "강신주의 강연 자격" 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근거로 하는 "철학/사회과학"자체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과연 옳고 그것이 올바른 학자의 자격에 근거하는가 라고 묻고 있는겁니다. 왜 엉뚱한 포인트를 잡아서 물음표 두개를 쓰시는지 모르겠네요.
2014.02.12 20:44
떡볶이집 사장도 강연한다 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그냥 논점 이탈입니다. 강신주가 강연을 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방식과 그가 아우르는 "화두들"이 사회과학/철학의 입장에서 잘못되었다고 계속 쓰고 있는데, 제가 떡볶이집이든,목욕탕주인이든 강연 자체의 자격 유무를 따진 것이 아닙니다. 떡볶이집 사장이 남의 가정집 떡볶이를 훈계하는 게 웃기다는 거죠. 저는 글에서나 댓글에서나 계속 적은 것 같은데요.
2014.02.12 20:56
2014.02.12 21:15
그럼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2014.02.12 21:19
네
2014.02.12 20:19
책 출판이든 강연이든 학위가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개똥철학이든 뭐든
판단은 시장에서 하는거죠
2014.02.12 20:54
전체적으로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철학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이면 학부 교양 수준의 철학개론을 가르칠 능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실제 많은 박사, 혹은 박사 수료생들이 철학개론이나, 교양 수준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요. 학부 전공이나 대학원 수업은 물론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한정되거나, 자신이 박사 학위를 한 전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 따로 연구를 해야만 가르칠 수 있겠지요.
강신주가 학자로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인가는 같은 필드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riss에서 논문을 검색해볼 수고도 귀찮지만, 나름대로 동양 철학 전반에 대한 교양 수준의 강의를 할 능력은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서양철학 분야에서 강신주가 하는 강의를 몇개 보았을 때 autecher님과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의 사유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문장과 단어를 빌려와서 자의적이고 근거없는 해석을 전달하더군요. 그 강의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프고, 강신주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자신의 부족한 여가 시간을 쪼개서 그것도 돈을 내고 철학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는 커녕 언어유희와 자의식의 과잉에 불과한 발언들을 그 철학자의 철학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죠.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서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해석의 여지가 없는 일반론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거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물론 그 강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준비로 누구에게 철학이 아니라 썰을 푸는 것은 거의 범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철학자라고 불리는 강시주의 호칭에서 대중이라는 표현은 그렇다치더라도, 철학자라는 단어가 박사 학위를 받으면 자동으로 붙는 것인지, 아니면 강신주가 고유한 철학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지금 철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인지, 저는 이 셋 모두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유의 엄밀함과 논리 전개의 치밀함을 바탕으로 학적 동료들과의 논쟁에서 살아남음을 의미할 것인데, 강신주는 이러한 공부는 그만 둔 것처럼 보입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썰을 언제까지 잘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강신주 자신도 자신의 유통기한을 이제 슬슬 의식하는 것 같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곧 사그라 들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대중들이 원하는 인문학자의 수요가 이 정도 수준, 혹은 얼마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지금은 잠잠해진 하버드의 후광을 등에 업은 샌델의 대중강의 수준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 인문학의 현실일 뿐이지요.
각설하고, 누군가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그냥 교양 수준으로 배우라고 하고 싶습니다. 학부 교양수준의 철학과 비판적 사고 능력만 확실하게 익힌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철학은 전 인생을 전력투구해도 원하는 학적 수준에 오르기가 매우 어려운 학문입니다. 철학과에 들어오는 대학원생 신입생이 10명이라면 박사를 딸 수 있는 능력, 체력, 재력, 멘탈, 운을 지닌 사람은 두,셋에 지나지 않고, 설령 박사를 딴다고 해도 어떤 뚜렷한 학적 성취를 얻는 것은(교수가 된다 따위의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제3세계 인문학도의 현실에서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2014.02.12 21:19
"상당히 오랜 시간 따로 연구를 해야만 가르칠 수 있겠지요" 그냥 이 부분이 제 가 말하고 싶은 것이었고, 나머지는 저도 글에서 똑같이 적었고, 동의합니다.
2014.02.13 02:14
박사학위 없이 공무원사관학교에서 교수님자 들어가며 존경받는 분을 보면서 느끼는 거랑 비슷한거 같네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인문학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정치평론에 컴퓨터프로그래밍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섭렵하고 계시죠.
2014.02.13 06:34
동양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에 대해 함부로 강의하거나 발언하는 것의 위험함에 대해서는 autechre 님께서 직접 경험하신 바를 말씀하셨으니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철학 박사가 세부전공을 떠나 철학 일반에 대해 대중강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는 오메가3님 의견에 동의하고요. 원글에 대해선 그의 대중 강연과 상담 모든 것을 '돌팔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달전쯤 벙커1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선거 후에 (또 국정원 사건으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이 사람(들)이 벙커를 지키고 있었구나. 여기서 나누는 대화가 철학/인문학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상처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에게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뭐 그랬습니다. 그의 강연이 온전히 사기이거나 값싼 위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름 성찰의 지점을 제공하고 있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윽박지름이나 오만해 보이는 단언들에 대해서는 저는 일종의 스킬이라고 생각하는데(본인 스스로 예방주사 같은 거라고 한 적 있죠)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있겠죠.
2014.02.13 08:13
차이라떼 님 말에 동의합니다.
2014.02.13 10:47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대학교 입학하자 마자 읽었는데요
(지금처럼 필독서가 아닌때임...갓 출판된 시점이었어요)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저로는 철학 미술 종교 예술 등등 다 아우르는 이런 세상이 놀랍기만 했어요.
물론 지금 보면 사실 그 책이 시시하긴 하지만
(다른 미학 책들도 많더라고요^^: 물론 이후의 여정을 가는 출발점은 미학오디세이였음은 부정할수없어요)
그래도 다른 책 정리할때에도 안버리고 책장 젤 위에 먼지쌓인채 꽂혀있긴합니다.
거의 그 때의 논쟁들과 비슷한것 같네요.
이게 무슨 미학이냐 라는 소위 학계 vs 미학을 처음 접한 저같은 사람들의 환호.
엄숙한 학계,50년 전공자만 한마디 할 수 있는 학계....라면 일반 대중들은 어디서 철학과 미학을(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접하죠?
두가지 모두 학문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지 지금 이렇게 조명 받고 적이 많은건
너무 인기가 많다는 이유겠죠
이렇게 인기가 많지 않았다면 이런 욕도 안나오고 조용히 지나쳤을테죠.
인기가 많아서 사이비다는 논리적오류가 있어요.
(강신주의 수업이 예전 상상마당에서 7년인가 넘게 해온걸로 아는데
그때도 매번 조기마감이었던걸로 아는데
그땐 아무도 사이비라고 안했어요.
오히려 이런 강의도 일반 입문자들에게 유용하다 필요하다 인문학이 죽어가는데 이런게 물꼬다
등등의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았고요.)
왠지 언더에선 천재로 칭송받다
메이저에서 앨범나오면 나만알던 밴드였는데 이젠 개나소나 다 좋아하네
저게 음악이냐 하며 까대던 팬들과 비슷한 현상이랄까요.
인기가 '질'의 척도가 될까요.
대중성이란 과연 형편없는 저질의 것일까요.
그리고 덧붙여 차이라떼님의 말처럼
대선후 상처가 너무 커서 패배주의로 쓰러져 있던 젊은이들을 위로해준건 이 사람이었어요.
철학적으로 생각할 화두는 항상 던져줬고요.
그 행동력 실천력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봐요.
2014.02.13 12:23
그렇다고 생각해요 역시 형이상학적인 말이지만 깨달음의 정의도 확실하지 않고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져가다 끝날 뿐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