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4 00:07
- 작년 영화구요. 런닝타임은 제목에 적은 대로구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지요.
('올해의 가장 무서운 영화'라는 문구가 어떤 면에선 거짓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특정 관객 층들은 아마 이걸 보고 나서 두통이나 몸살이 왔을 것...)
-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고 울먹거리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분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이 곳이 학교라는 걸 알 수 있구요, 이 분이 지나가는 미화원을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학생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교사라는 것도 알 수 있죠. 손에는 뭔가 요리해 온 것을 들고 있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학생에게 보여줘요. 그게 뭔진 몰라도 학생은 귀엽다고 하네요. 그러고 잠시 후엔 학생에게 '너처럼 아직 하교 안 한 학생도 있는데 벌써 청소를 하면 바닥이 미끄러워져서 위험하잖니. 저기 청소 아줌마한테 니가 직접 말씀드리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챙기는 학생이 되어야해.' 뭐 이런 소리도 하고. 그러고 홀연히 길을 가다가 마주친 다른 여성에게 '혹시 무슨 모임 가시는 길 아니신가요?' 하고 말을 걸어서 함께 숲 속 성당으로 가요. 성당 2층에는 모임 준비가 되어 있고, 동네 여성들이 대략 7~8명 정도 모여 있네요. 서로 아주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제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하려는 순간 우리의 주인공이 지금껏 소중히 들고 온 음식을 개봉하는데... 딸기 파이인 듯 해요. 다만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이...
(어라???)
- 원 테이크로 연출된 영화들이 그렇게까지 막 드물진 않지만... 그 중에서 정말로 원테이크로 찍은 영화는 의외로 또 별로 없죠. 뭔가 편집 트릭을 사용해서 원테이크 흉내를 낸 게 많더라구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궁금해져서 확인해 보니 진짜로 원테이크가 맞다고 합니다. 5일간 하루에 한 번씩 (시간대가 중요하거든요) 다섯 번 찍었고 그 중에 네 번째 테이크를 골라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자칫하면 별 의미 없는 테크닉의 과시로 떨어지기도 좋은 컨셉입니다만. 이 영화의 경우엔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어요. 영화의 테마상 실제로 그 장소와 그 시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이 중요한데 그게 아주 압도적으로 전달되거든요. 물론 종종 어지럽고 불편하긴 합니다만, 영화의 내용에 비하면 헬드핸드 카메라의 움직임 정도는 불편의 '불'자도 꺼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티가 나진 않습니다. ㅋㅋㅋ
(주인공 팀입니다만. 주인공은 얼굴이 안 보이는 짤을 골라 버렸네요.)
- 그러니까 결국 도입부에 나오는 숲속 성당 2층의 소박한 마을 여성들 모임... 의 실체는 마을 인종 차별 주의자들 대화 모임이었던 겁니다. 거기 앉아서 내내 나누는 대화도 다 그런 쪽이구요. 한참을 떠들다 밖으로 나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장소도 옮기고 그러지만 계속 그렇게 하나의 테마로 대화가 이어져도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는 않아요. 정말 실시간으로 그 인물들의 92분을 보는 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래서 결국 이 영화의 컨셉이란, 온라인 상에선 흔히 보이지만 현실 세계에선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레알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정신 세계와 행동거지를 관객들에게 92분 동안 아주 리얼하게 체험시켜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체험이란... 제목에 이미 적어 놓았듯이, 정말로 고통스럽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이 분이 주인공이십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테일즈 프롬 더 루프'에서도 교사 역으로 나오셨는데. 미인인 동시에 교사처럼 생기시긴 했어요. ㅋㅋ)
-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들은 내내 정말 멍청한 소리들을 해댑니다. '우리 이렇게 모임도 만든 김에 뭐도 하고 뭐도 하고 열심히 해보자!'며 열심히 으쌰으쌰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데, 거기에서 이 양반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들 중 무엇 하나라도 정말 저지른다면 난리가 나고 세상이 뒤집어지고 글로벌 수퍼 스타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워낙 이렇다 보니 캐릭터들 컨셉이 너무 과해서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싶지만 '지금껏 내가 한 얘기들 중에 뭐 하나라도 틀린 게 있음??' 이라며 정색하는 주인공의 표정을 보면 정말 현실에서 이러고 노는 사람들이 있겠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구요.
어쨌든 그래서 웃깁니다. 일단은 웃겨요. 한심하고 소름 끼치지만 또 너무 멍청하니 웃음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그냥 수다로만 끝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중반부쯤에 일어나는 소소하게 기분 더러운 사건을 거쳐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할 큰 사건이 벌어지면 잠시 까먹고 있었던 이 영화의 장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호러거든요.
(어찌나 찌질하고 무식들 하신지 웃음이 나오... 긴 합니다만. 그보단 이들의 우악스러움에서 나오는 혐오감이 더 크다는 게 문제.)
- 굉장히 교육적인 영화입니다. 실제로 미국 같은 나라에선 학교에서 학생들 교육용으로 틀어줘도 큰 문제가 없을 법 하구요. (다만 R등급입니다. ㅋㅋ)
같잖은 논리로 자신의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고 사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뭉쳤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난폭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 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는 영화에요. 물론 그 모든 걸 92분 안에 하자니 비약이 없진 않습니다만. 실제 미국의 혐오 범죄들 목록을 뒤져보면 이보다 더한 것도 많을 테니 뭐 괜찮(?)은 걸로.
(나름 말려 보려다가 결국 휩쓸리고 마는 이 남편 캐릭터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겠구요.)
- 단점 아닌 단점 하나가 있습니다. 뉘신지도 잘 모르겠는 배우님들이 하나 같이 다 연기가 쩔고 연출도 절묘해서 초반에 실소를 할 때부터 막판의 숨막히는 상황까지 아주 몰입해서 보게됩니다만. 문제는 그게 어쩔 수 없이 순도 99%의 불쾌함으로 채워져 있다는 거죠. 그래서 중간에 슬쩍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죄로 지금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나...
(하지만 정말로 아무 죄도 안 짓고 고생하는 분들은 여기 두 분이시구요...)
- 어쨌거나 잘 만든 영화이고. '재미있다'라고 말하긴 좀 그런 이야기지만 탄탄하게 잘 짜여진 작품이면서 상당히 강력한 긴장과 스릴과 충격의 도가니로 인도해 주기 때문에 이런 이슈에 거부감이 없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해드릴만 하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사실 태어나서 줄곧 한국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입장에선 아직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어차피 한국도 그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아주 인상적으로 잘 봤습니다.
+ 아마존 드라마 '더 보이스'에 나오는 캐릭터 '스톰프론트'를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요. 이게 미국에 실제로 있는 네오 나찌 커뮤니티 이름이었나 보군요. 이 영화 덕택에 뒤늦게 알았습니다.
++ 난 절대로 유색 인종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냥 같은 인종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그리고 이 땅은 우리가 발견(??)해서 자리 잡은 우리의 고향이잖아요? 라는 대사를 듣고는 좀 웃었습니다. 이거 한국 커뮤니티에서도 아주 자주 보게 되는 논리인데요.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그 외에도 공정 드립 계속 나오고 무임 승차 얘기 계속 나오고 그럽니다. 아이고 두야...
+++ 아. 제목의 뜻은요. 도입부의 그 화기애애한 모임에서 자기들끼리 뉴스 레터를 만들어 유익한 정보(?)를 나누자... 는 얘길 하는데 이 때 한 명이 동네 이민자 리스트를 만들어 뉴스 레터에 공유하잔 얘길 하거든요. ㅋㅋㅋ 그러자 주인공이 '그건 안 됨!' 이라면서 쓰는 표현이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일단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조용히 활동하며 서서히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격 받지 않고 우리 편을 확보할 수 있다. 뭐 그런 거에요. 잠시 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본인들 주제에 맞지 않는 너무 고차원적인 얘기였다는 게 곧 드러납니다만.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영화 특성상 요약할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좋아요.
그래서 도입부의 그 정겨운 마을 여성 모임, 무려 '아리아인 연합의 딸들' 회동은 훈훈하고 감동적으로 진행됩니다만. 멋모르고 장소 빌려줬던 성당 신부님이 우연히 이 양반들 이야기를 듣고는 '죄송한데 당장 나가서 사라져 주시죠?'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좀 일찍 끝이 나 버려요.
그리고 모임 멤버들 중 다섯 명의 여성은 주인공네 집에 가서 와인 마시며 못 다 한 수다를 이어가기로 의기 투합을 하죠. 근데 또 멤버들 중 한 명이 동네 주류 판매점 주인이어서 그 곳으로 가는데... 그때 동양인 젊은 여성 둘이 가게에 들어옵니다. 마침 나누던 대화가 대화이니만큼 주인공들은 '가게 문 닫았으니 그냥 나가라'고 요구하는데, 이 젊은이들이 요즘 젊은이들답게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죠. 결국 술을 팔긴 팔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동양인들에게 마구 폭언을 퍼붓고, 근데 이들이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싸가지 없는 것들! 본 때를 보여주자!!!'라며 불타올라요. 이 때 주인공의 남편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말려 보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당신을 평생 쫄보라고 생각하며 살면 좋겠어?" 라며 싸다구를 날려대는 서슬에 그만 남편까지 덩달아 파티원이 되어 그 동양인들의 집을 향하죠.
다행히도(?) 일단 그 집은 비어 있었는데. 적당히 난장 부리다 떠났어야 했을 것을, 집 주인의 여권을 찾아서 태워 버리자느니 어쩌느니 하다가 결국 도중에 귀가하는 집주인을 맞닥뜨리게 되죠. 어찌해야할지 혼비백산하는 주인공들입니다만, 이 때부터 그동안 귀여운 막내에염 뿌잉~ 하던 캐릭터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초반에 이 분이 감옥에 다녀왔다는 게 슬쩍 언급되는데. 그런 경력을 살려 아주 거칠게 폭주하고, 나머지 곱게 자란 양반들도 얼떨결에 그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결국 집주인을 결박해놓고 고문하기 시작해요. 운 없게 시간차를 두고 그때 귀가한 집주인 동생도 결박하고. 주인공들 중 한 명이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던 권총까지 꺼내들자 주인공 남편은 "안 되겠군. 나는 여기에서 나가야겠어!" 라며 집을 떠나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폭주하는 막내의 제안으로 집주인 동생의 입을 벌리고 온갖 음식들을 쏟아 붓는데... 불행히도 이 동생은 땅콩 알러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그걸 알고 에피펜을 가져오기도 전에 동생은 사망. 주인공들은 본격적으로 멘탈이 나가 버리죠.
결국 그동안 쭉 리더 행세를 하던 주인공은 막내에게 살살 빌다시피하며 상황 해결을 부탁하고. 막내는 "성폭행으로 보이면 우리가 혐의를 벗을 수 있다"며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내와서... 음... (천만 다행히도 직접 보여주진 않습니다) 그런 후에 살아 있던 집주인도 쿠션으로 눌러 질식사 처리. 그러고선 밖에서 자루를 가져와 두 명의 시체를 넣고 거기에 무거운 캔 같은 것도 넣고, 그러는 동안에 나머지 멤버들은 자기들 흔적 없앤다며 저엉말 어설프게 여기저기 문지르고 닦고... 그런 후에 차에 싣고 출발해요. 목적지는 근처의 호수.
원 테이크니까 가는 동안에도 내용이 필요하겠죠. 주로 이들의 찌질 모자람을 보여주는 말다툼이 한참 이어지는데... 그 와중에 시체를 담은 자루가 슬쩍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아무튼 도착은 했고, 계속 아웅다웅 찌질거리며 조각배 노를 저어 나아가 시체 자루를 버리고 주인공들은 멀어져가구요. 주인공들이 떠난 자리를 한참 꼼짝 않고 응시하던 카메라... 에 물의 흔들림이 보이고. 잠시 후 질식사 당한 줄 알았던 집주인 여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솟아 올라요. 숨을 가다듬고 카메라 앵글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여준 후,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다행히도 해피엔딩(?)이네요!!
2023.12.04 00:29
2023.12.04 00:44
92분이라는 런닝 타임 안에, 그것도 실시간 연출로 이런 소재를 때려 박다 보니 인위적이란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게 최대 단점인 듯 했구요. 그런 면에서 의도는 좋아도 좀 지나친 프로파간다 영화 아니냐는 비판은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무지막지 원테이크와 배우들 열연 덕에 보는 동안엔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무시무시 불쾌합니다. 화제, 논란 둘 다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전 좋게 봤지만 혹시 누가 이거 보고 쓰레기 영화라고 욕해도 굳이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2023.12.04 16:12
트럼프 당선되자마자 음지에 숨어있던 네오나치 같은 인간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세상에 나와서 어떤 짓들을 저지르는지 다 봤는데 이런 소재를 다룬다는 자체로 프로파간다라고 불편해하면 뭐 성향이 뻔하겠죠 ㅎㅎ
그런데 해외 감상평들을 더 찾아보니까 오로지 불쾌함을 위한 불쾌함, 실시간 고문 포르노 이런 표현들이 보여서 겁이 나네요;;;
2023.12.04 20:19
제 생각은 거기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후자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는 쪽이어서 쉽게 추천은 못하겠네요. ㅋㅋ 하지만 보고 후회하거나 안 보고 후회하거나 중에서 선택이라면 당연히 전 전자를 지지합니...
2023.12.04 09:27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미국 평론가가 정말 기가 막힌 영화라고 칭찬하는 걸 읽으며 흥미롭긴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로이 배티님 리뷰를 보니 혹시나가 역시나군요. 무식한 인종차별주의(남)자가 설치는 영화는 많지만 여자들만 모여서 활약하는 영화는 없기에 보고는 싶었는데, 리뷰만 읽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게;;;;;;
2023.12.04 20:20
관객들에게 사서 고생을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ㅋㅋㅋ 혹시 언젠가 보신다면 인생 최고 컨디션일 때 후딱 봐 버리고 회복하시는 게!
2023.12.04 20:17
로이배티님 리뷰를 보니 강렬한 흥미가 생기네요. 마지막에 인종차별자들 대량학살한다든가 하는 판타지 장면은 없는 건가요.ㅋ 나쁜놈이 이기는 영화가 아니라면 한번 보고싶네요.
2023.12.04 20:21
그냥 말씀 드려도 될 법한 부분만 짧게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대리 만족 장면은 없습니다. 여기까지만요. ㅋㅋㅋ
2023.12.05 23:27
전혀 몰랐던 작품인데 좀 검색을 해보니까 2022년 '스피크 노 이블'과 함께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진 않았지만 영화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화제+논란이 된 작품인가봐요. 레터박스에서 봐도 "이 영화는 진짜 fucked up이다." 뭐 이런 뉘앙스의 감상평들이 많고 ㅎㅎ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혐오범죄를 다룬 영화들은 가끔 봤지만 그 대상이 아시안계인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보면서 평소보다 불쾌함이나 공포가 더 강렬할 것 같군요. 게다가 원테이크라니 스트레스 수치가 걱정되지만 궁금해서 꼭 보긴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