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0 21:13
게시판 복습하다 코난 얘기가 있기에, 한창 코난 좋아할 때 유튜브를 뒤적이며 팬심으로 따라잡은 이야기들을 잠깐 늘어놓을까 합니다.
<사전 정보>
당대 최고의 심야 토크쇼였던 NBC의 '투나잇쇼' 진행자 자리는 '성배' 혹은 '왕좌'로 일컬어질 정도로 모든 호스트의 꿈이었습니다.
'투나잇쇼'가 끝난 뒤 연이어 방송되는 '레잇나잇쇼'는 자정을 넘긴 방송 시간대로 인해 투나잇쇼의 2군 정도의 포지션으로 여겨졌죠.
90년대, 투나잇쇼의 왕좌에는 자니 카슨이 군림하고 있었고, 레잇나잇쇼는 데이빗 레터맨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데이빗 레터맨은 당시 자니 카슨이 공인한 투나잇쇼 호스트 계승 서열 1위였고, 방송국 내외에서 이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죠.
그러나 자니 카슨이 왕좌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꿰찬 것은 의외로 자니 카슨의 서브 진행자, 사이드킥이었던 제이 레노였습니다.
방송국과 거의 구두 합의해둔 내용을 뒤집은, 게다가 동료였던 제이 레노에게 일말의 언질도 받지 못했던 이 결정이 데이빗 레터맨에겐 엄청난 배반으로 느껴졌죠.
결국 레터맨은 자신의 스텝들을 데리고 NBC를 떠나 CBS로 가서, 제이 레노와 동시간대에 자신의 쇼를 런칭해버립니다.
<사전 정보 끝>
한 시대를 이끌었던 투나잇쇼(자니 카슨)-레잇나잇쇼(데이빗 레터맨)의 두 호스트를 거의 동시에 떠나보낸 NBC는
갑작스레 공석이 되어버린 레잇나잇쇼 호스트 자리에, 당시로선 완전히 무명이었던 코난 오브라이언을 (급한대로) 파격 캐스팅합니다.
SNL의 작가로 가끔 엑스트라 역이나 맡아 본 것 말고는 카메라 경험이 전무했던 코난은
얼떨결에 오랜 꿈이었던 토크쇼 호스트 자리를 꿰차게 된 거죠. 그것도 자신의 영웅이었던 자니 카슨-데이빗 레터맨의 뒤를 이어서요.
이 꿈같은 캐스팅을 받아들인 코난의 심정은 레잇나잇쇼 첫 회 오프닝에 잘 드러나 있는데
여기서 첫 출근길의 모든 행인들이 보내는 '데이빗 레터맨보다 잘 해야해!'하는 인사를 자신만만한 미소로 응대하며 방송국에 들어선 코난은
태연히 대기실 천장에 동아줄을 걸고 목 매달기를 시전. 다행인지 바로 직전에 생방 호출을 받고 첫 무대(혹은 진짜 교수대)에 오릅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러,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는 데이빗 레터맨쇼와 함께 심야 토크쇼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무명이었던 코난 오브라이언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시청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조금은 뒤틀린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매니아층을 확보하게 됩니다.
NBC 입장에선 자니 카슨-데이빗 레터맨의 아성을 잇는 제이 레노-코난 오브라이언의 황금 라인업이 구축된 거죠.
그러나 코난의 무명시절 이루어졌던 NBC와의 계약은 형편없는 조건이었고, 그 계약이 끝나가자 FOX, CBS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방송사들이 코난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코난을 싼값에 잘 쓰던 NBC로서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 여전히 십 년 전의 어중이떠중이로만 대우하던 코난을 잡기 위해 뒤늦게 코난 영입 전쟁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그들이 코난에게 쓸 수 있는 돈은 타방송사들의 제시액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죠.
결국 그들이 꺼낸 최후의 카드는 다름 아닌, 투나잇쇼 차기 호스트 자리 보장이었습니다.
...장난해요? 이건 자니 카슨의 투나잇쇼라고요!
이걸 굳이 비유하자면, 현재 무한도전을 보고 자란 방송 꿈나무가 수십년 후 유느의 차차기 무도 MC를 약속받는 것과 같을 겁니다.
코난에게 계약금, 방송국의 대우, 부와 명성, 이딴 건 이미 안중에도 없는 거죠, 소년시절 로망- 그것말고 다른 이유를 댈 게 뭐 있겠습니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코난은 투나잇쇼라는 가상의 성배를 받아들고 다시 한 번 NBC와 헐값에 계약을 해버립니다.
그렇게 다시 4년여가 흐릅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NBC는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제이 레노, 코난 오브라이언 둘 중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언제까지 회피할 순 없는 일, NBC는 코난과의 약속에 대해 제이 레노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제이 레노의 반응은 의외로 쿨한 거라.
(NBC와) 마지막 5년 계약을 했어. 과거 나랑 데이브(레터맨)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이 반복돼 다시 우정을 잃는 일은 없길 바라서야.
이 자리는 왕좌와 같아. 군림했으면 이양하고 물러나야지. 누가 더 낫네 어쩌네 하면서 언론 싸움하지 말자고.
자, 이렇게 하지. -코난, 이 쇼 너 해! 5년 뒤에 보자고, 친구.
(이 동영상의 제목이 뻥카인 이유는?)
그리하여, 다시 5년의 기다림.
해서, 이러저러 말이 많았지만 됐고, 사실상 코난은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레잇나잇쇼 호스트로 보내게 됩니다.
NBC에 말 그대로 젊음을 다 바친 거죠.
그리고 대망의 2009년.
코난은 약속된 성배를, 투나잇쇼 호스트 자리를 손에 쥡니다. 그런데- 기분 탓이겠지만. 이상해, 독이 든 거 같애...
왕좌를 이양하고 물러나겠다던 제이 레노는 (코난이 모르던) NBC와의 물밑 계약으로 투나잇쇼 앞 시간대에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런칭합니다.
투나잇쇼의 제이 레노-레잇나잇쇼의 코난 오브라이언 라인업으로 20년 좀 안 되는 세월을 살았는데, 이건 뭐 시간대만 바꿔서 제이레노쇼의 제이 레노-투나잇쇼의 코난 오브라이언 형국이 돼버린 거죠.
뭐, 약속이 아주 다른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투나잇쇼는 코난 꺼니까...) 코난으로선 앞지퍼 열고 방송하는 듯한 찝찝한 기분 아니었겠습니까.
슬픈 예감은 틀릴 리 없이, (여전히 굳건한)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데이빗 레터맨쇼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 제이 레노쇼와도 경쟁해야 했던 코난의 투나잇쇼는 끝없는 시청률 하락을 겪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 레노는 '우리 이제 10시 방송이지만 11시 반(투나잇쇼 방송시간)이라고 생각합시다 ㅋㅋㅋ'->이런 발언을 서슴치 않고 뱉을 정도로 투나잇쇼 고정 시청층을 대놓고 가져가버렸거든요.
그렇게 소년의 로망은 참혹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고, 7개월 뒤, 훗날 '레잇나잇 워' 혹은 '레잇나잇 게이트'로 일컬어지는 심야토크쇼 분쟁이 시작됩니다.
NBC 수뇌부의 눈에 코난은 여전히 자기들이 키워놓은 코흘리개 무명이었고, 그런 그에게 투나잇쇼를 맡겼던 건 자신들의 엄청나게 관대한 처사였던 거죠.
그러니, 레터맨이 쇼에서 언급한 게스트를 바로 다음 회에 섭외해 맞불을 놓자는 등의 방송사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지저분한 시청률 싸움을 고사한 코난의 신사적인 태도는 바로 눈엣가시가 됩니다.
한 편, 투나잇쇼의 추락과 이름을 내건 쇼의 성공으로 기세등등해진 제이 레노는 애초에 코난에게 투나잇쇼를 주기 싫었다는 내심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투나잇쇼 양보에 대해 거짓말하기 지겨워.'
NBC와 제이 레노는 다시 물밑(참 거기가 어딘지)에서 만나기 시작했고, 코난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제이 레노쇼를 투나잇쇼 시간대에 시작하고, 투나잇쇼를 12시 이후로 옮기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
제이 레노쇼가 투나잇쇼 시간대로, 투나잇쇼가 레잇나잇쇼 시간대로 이동한다니, 코난에게 이건 그냥 무명시절로의 회귀죠.
말이 좋아 투나잇쇼 시간대 이동이지, '님 레잇나잇쇼로 다시 강등이요.'와 한 끝 차이도 없는 말인 겁니다.
아니, 이건 무명시절로의 회귀보다 더 나쁩니다.
코난 자신을 강등시키려면 강등시키라지요. 투나잇쇼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코난과 함께 레잇나잇쇼 시간대로 강등된단 말입니까.
코난은 '지구인 여러분께 알림'이란 기자 회견을 열어, 자정 넘어 시작하는 투나잇쇼는 더이상 투나잇쇼가 아닐 것이며, 자신은 이와같은 파괴 행위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고 밝힙니다.
훗날 이 선언은 코난이 NBC에게 투나잇쇼를 망가뜨리기 '싫다'고 대답하는 것을 넘어, '너희들이 틀렸어'를 선포하며 전쟁의 서막을 연 것으로 간주되죠.
거의 한몸과도 같았던 코난과 NBC 사이의 분쟁은 가시화되고 세간에선 많은 말들이 돌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론, 투나잇쇼에 대한 로망만으로 자릿수부터가 다른 거액의 계약금을 뿌리치고 NBC와의 의리를 지켰던 젊은 시절의 선택 이후, 코난은 또 한 번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공중파 토크쇼 호스트 금지, 투나잇쇼 관련 인터뷰 금지 등 향후 몇 개월간 팔다리를 묶고 입을 막는 것과 다름 없는 모든 조건을 감수하고 NBC를 떠나기로 한 거죠.
쫓겨나듯 오랜 직장을 떠나며 코난이 원했던 건 단 하나였습니다. 투나잇쇼 시간대는 건드리지 말 것.
아... 소년의 로망이란.
(제이 레노, 생일 축하해.) 친구들 모두 모여 파티 하고 있을 텐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
제이가 케잌 자르고 있는 그 칼 말야, 그거 걔가 코난 등에 꽂았던 거임.
결국 코난의 희생으로 투나잇쇼는 지켜지고, 코난이 떠난 자리는 (어이없게도, 또한 당연하게도) 제이 레노에게 되돌아갑니다.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 복귀와 코난의 부당한 하차(라고 쓰고 방송 금지라 읽죠)는 동시대 토크쇼 호스트들의 즉각적인 공분을 사죠.
그 중에서도 제이 레노로 인해 NBC를 떠나왔던 데이빗 레터맨의 심정은 남달랐을 겁니다.
레잇나잇쇼 직속 후배인 코난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이 레노에게 투나잇쇼를 빼앗기고 쫒겨나는 꼴이었으니까요. 역사의 반복...
말을 아끼던 레터맨은 제이 레노가 '이건 비즈니스적인 결정이었을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일로 코난이 비난받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대인배처럼 말하자 폭발하고 맙니다. '저기요, 이 일로 *코난*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이게 꼭 레터맨의 개인적인 감정이었다고 할 순 없는 게, 지미 팰런을 제외하고 모든 호스트가 참전했다고까지 회고되는 이 전쟁에서 대부분이 코난의 편이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게다가 지미 팰런이 제외된 이유도, 그가 제이 레노의 편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레잇나잇쇼 호스트 자리에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무명에서 대스타가 된 코난으로 재미 좀 본 NBC는 코난 이후 계속 SNL 출신들의 호스트 데뷔 실험 장소로 레잇나잇쇼를 이용했고, 코난 오브라이언-지미 팰런-세스 마이어스의 SNL 계열 호스트 계보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죠.
레잇나잇쇼와 투나잇쇼의 관계로 인해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던 지미 팰런은 나중에 해탈한 듯 자조적인 농담을 하죠.
'내가 레터맨-오브라이언 선배의 전례를 통해 배운 건, 레잇나잇쇼의 호스트 자리는 투나잇쇼 호스트가 되지 못하는 지름길이라는 거야.'
그런 지미 팰런이 현재 투나잇쇼의 호스트라는 건 재미있는 아이러니입니다.
레잇나잇 게이트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지미 키멜의 '안방 저격 사건'을 들겠습니다.
당시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제이 레노를 비난했던 지미 키멜 (맷 데이먼의 그 지미 키멜이 맞습니다.)은 아예 자신의 쇼 한 회를 제이 레노 분장을 하고 이 사건을 까는데 할애합니다. '코난은 투나잇쇼를 망칠 수 없다며 호스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난 달라! 난 할 수만 있다면 투나잇쇼를 아주 불싸질러 버릴 거야!'
이 방송을 본 제이 레노는 직접 지미 키멜을 자신의 쇼에 섭외합니다.
아마도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시청자에게 보여 키멜이 했던 비난이 일종의 풍자나 개그일 뿐이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 거겠죠.
그러나 가벼운 문답으로 친분을 과시하고 끝내려던 이 섭외는 자충수로 끝나죠. 저격수를 안방에 들인 꼴이 되고 만 겁니다.
제이 레노 : 당신이 저지른 가장 심한 장난은 뭐였죠?
지미 키멜 : 한 놈을 제대로 엿 먹였던 적이 있었는데, 내 쇼를 5년 뒤에 주겠다고 말해놓고 정확히 5년 뒤에, 줬다가 바로 뺐은 거였죠.
제이 레노 : 티비에서 보고 주문해 본 상품 있어요?
지미 키멜 : ...NBC가 댁이랑 투나잇쇼 갖고 장사질한 것처럼?
아무리 동료들이 지지해줘도, 아무리 시청자가 그 부당함에 함께 분노해줘도 계약은 계약이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코난은 예정되어 있던 마지막 방송에 임합니다. 투나잇쇼를 지키기 위해 투나잇쇼를 떠나는 거죠.
이토록 어리석고 로맨틱한 이유라니.
영화 이지A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인생을 말아먹기 직전인 딸에게 그 어머니가 했던 말이죠.
넌 무슨 일이 닥치든 극복해낼 거야, 엄청난 유머감각이 있으니까 - 대충 이런 대사였죠. 코난은 마치 이 대사의 산증인 같아요.
코난의 마지막 방송은 NBC 직원으로 분한 스티브 카렐이
'NBC에서의 경험이 어땠습니까. 1.긍정적 2.매우 긍정적 3.엄청나게 긍정적. / 당신의 하차를 유발시킨 특정한 압력이 있었습니까. / NBC와 향후 다시 일할 계획이 있습니까.'
-등의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퍼부은 뒤 코난의 NBC 사원증을 회수해 잘라버리는 등 자조적인 농담으로 가득한 한 회였다고 합니다.
그 기나긴 농담 끝에 코난은 두고두고 회자될 감동적인 엔딩 멘트를 남기고 젊음을 다 바쳤던 NBC를 (아마도) 영원히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시청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아왔던 코난의 투나잇쇼는 천 만이라는 무시무시한 시청률을 기록하죠.
천 만 명이 함께 봤던 코난의 작별 인사, 좀 길지만 같이 들어주시겠습니까.
제가 NBC에 대해 법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언론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요,
기록을 위해 밝히자면, 농담 아니고요, 오늘은 법적으로 무슨 말이든 해도 됩니다.
...아, 농담 아니라니까. 그래도 웃어줘서 고맙군요.
오늘은 뭐든 제가 말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니까,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SNL과 레잇나잇쇼, 그리고 짧았지만 투나잇쇼 호스트까지 저는 NBC에서만 20년 넘게 일해왔습니다.
맞아요, 지금은 서로 의견차가 있고, 맞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합의했지요.
그러나 이 회사는 성인이 된 이후 제겐 고향과 같았고, 저는 그들과 일했다는 사실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해준 NBC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진심이에요.
많은 분들이 제 심경을 물어오시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투나잇쇼를 떠나는 건 제 평생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 정말로 힘들었고요.
투나잇쇼 호스트는 세계 최고의 직업이고, 저는 정말로 기쁘게 일했습니다.
미디어 역사상 최고의 스텝들과 함께 했고, 여기에 토다는 사람이 있다면 붙잡고 싸울 거예요. 뭐, 아무도 없겠지만.
이 모든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미디언이라면 누구든, 정말이지 누구든지 투나잇쇼 호스트가 되는 걸 꿈꿉니다.
7개월 동안 전 그걸 했잖아요, 그것도 제 방식대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러니 지난 7개월의 단 1초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타까운 얼굴로 저를 보시는데요, 저는 제가 누구보다도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다음 쇼가 세븐일레븐 주차장에서 열린대도 저희는 진짜 웃겨드릴 자신 있거든요. 정말로요, 문제 없습니다.
-그래도 세븐일레븐 주차장은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뭐, 아무튼.
마지막으로 저희 팬 여러분께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내주신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피켓을 든 군중들부터, 거의 미친 게 아닌가 싶도록 창의적인 네티즌 여러분까지.
그리고 오늘 먼 길을 달려 밤새 빗속에 텐트까지 쳐가며 기다려서 이 자리에 와주신 방청객 여러분.
정말로요, 여러분 모두가 이 슬픈 상황을 즐겁고 고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지금 시청하고 계신 모든 시청자 여러분... 이 모든 친절함에 어떤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단 한 가지 뿐입니다. 특히 지금 시청하고 계신 젊은이들에게 간청합니다.
제발, 시니컬해지지 마세요. 저는 냉소를 증오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냉소예요. 그건 정말 발전적이지 못한 거예요.
세상 누구도 자기가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 바로 그것을 손에 넣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열심히 일하세요, 그리고 친절하세요. 그러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코난은 브라운관을 떠납니다.
그가 재기할 수 있을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티비에서 웃기는 게 법적으로 금지돼버렸으니까요.
아니, 정말로.
코난 : 여보세요? 일 있다고요? 일 있어요? ...데비네 집 아닌데요. 아, 데비란 애 없다고.
딸 : 엄마, 아빠한테서 오줌 냄새나.
(코난 오브라이언, '티비에서 웃기는 게 법적으로 금지된 투어' 中 오프닝 스킷)
뭐,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얘기죠.
법적 금지 투어로 미전역을 도는 야인 생활을 하다 케이블 티비로 둥지를 옮겨 (제이 레노처럼 또 누가 내 쇼를 훔쳐가면 되게 이상해보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딴 '코난쇼'를 런칭하고,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가 된 것.
팬심으로 쓰다보면 한정없이 길어지곤 하는 포스팅은,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보셨을 '다트머스 대학 축사'로 닫겠습니다.
이 축사는 2011년, 그러니까 제이 레노에게 투나잇쇼를 뺐긴 이후, 야인 생활을 마치고 코난쇼를 런칭한 직후에 이뤄진 축사입니다.
앞부분 농담들도 주옥같지만, 포스팅과 관련된- 그러니까 코난의 개인사가 언급되는 후반부에 바를 맞춰놓았습니다.
모르고 봐도 감동적이셨겠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안 뒤에 보면 저 농담같은 한 마디 한 마디 사이마다 얼마나 깊은 수렁들이 가로놓여 있는지가 보이실 거예요.
너무 진실해서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인 고백과 조언들 끝에 코난은 다시 한 번 투나잇쇼 마지막 멘트를 언급하죠.
그 맺음말이 충격적일만큼 아름답다는데 토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붙잡고 싸울 겁니다, 물론 아무도 없겠지만요.
2014.07.20 21:24
2014.07.20 21:32
2014.07.20 21:47
몰랐는데, 잘 읽었습니다. 축사만 보고 그냥 단순히 힘들었나보다, 하고 말았는데 알고나니 더 깊어지네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 때문에 듀게가 좋아요.
2014.07.20 21:50
2014.07.20 22:4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저 졸업축사를 시작으로 노답게이머, 그밖의 코난쇼 에피소드등을 유투브에서 가능한 한 모두 찾아보았는데, 코난은 제가 아는 코미디언 중에서 가장 웃긴 코미디언입니다ㅋ 법적금지투어도 궁금하네요ㅎ
2014.07.20 23:0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배경을 알고 다시보니 정말 더 새롭고 깊게 다가오네요.
2014.07.20 23:06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글이네요. ㅎㅎ 우연히 게임 플레이 하면서 방송하는 짧은 클립들 보다가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의 개그를 무척 좋아해요. ㅎㅎ 제가 영어를 잘한다면 좀 더 많은 포인트에서 웃을 수 있을텐데 언어의 장벽이 아쉬워요 흑 ㅠ
2014.07.20 23:44
2014.07.20 23:51
좋은글 감사합니다. 코난의 팬이 되어서 오늘도 영업하고왔습니다.
2014.07.20 23:55
코난은 초창기에 친구하고 두 명이서 스크립트만 가지고 승부했을 때는 정말 이런 생각이 다 있을까 싶었고 대단한거 같아 당시 영상들을 인터넷세계를 열심히 뒤지며 구했는데..
요즘은 하는 시리즈들은 하나같이 무례한척하면서 상대를 깍아내리면서 하는 개그들이라 실망스럽더군요.
2014.07.20 23:59
2014.07.21 00:01
까칠한 개그 스타일이라고 오해했었는데 진국이었군요. 잘 봤습니다.
2014.07.21 00:43
저도 가끔 이것저것 보는데요.. 조든이라는 사람 갈구는 것도 있던데, 이거 진짜 생 리얼인가요?? 진짜면 조든이라는 사람이 좀 불쌍하던데..
2014.07.21 00:45
2014.07.21 01:00
안타깝지만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것은 Conan O'Brien이 했던 The Tonight show는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Jay Leno가 아무리 악의 축으로 보여도 그가 진행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고 볼 만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당시 하는 쇼마다 다 망해서 시청률면에서 엄청 눌리고 있던 NBC 입장에서는 이것 저것 가릴 때가 아니였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NBC를 계속 봐주고 싶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올 초 Jay Leno가 다시금 물러날 때 Bill Maher였던가 누군가 나와서 당신 쇼 여전히 시청률은 최고인데 그만둬야 한다면서요하고 농담을 하더군요. 그래도 이번에는 깔끔하게 그만 두었고 그 뒤를 이은 Jimmy Fallon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Late Night 할 때 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전략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을 한 듯이 보입니다. 몇년 전 Conan이 했던 것과는 달랐지요.
한마디로 The Tonight Show 시절의 Conan O'Brien은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듯 하고, 그렇다고 그가 잘하는 것이 주류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게 최근 케이블로 옮겨가서 잘 나가고 있는 이유일 듯도 합니다. 저도 Conan 매일 챙겨 볼 만큼 팬이기는 합니다만 딱 지금처럼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The Tonight Show도 편안한 분위기 덕에 계속 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딘가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문득 Stephen Colbert는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게 될런지 궁금해지네요.
2014.07.21 02:57
안그래도 요즘 코난쇼 보면서 점점 호감으로 관심 가지고 있었는데 딱 좋은 글이네요. 유머와 의리, 시대에 맞지 않는 로맨틱함까지, 흔치 않은 사람이라 좋아요.
2014.07.21 10:25
배경을 알고 보니 축사에 담긴 의미가 새롭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추천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좋아요를 누를수가 없군요. ㅎ
2014.07.21 10:30
2014.07.21 11:12
음... 만일 이 모든 게 '코난이 시청률 하락으로 투나잇쇼에서 조기 하차했다.'로 축약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코난의 투나잇쇼가 재미없었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겠죠. 그러나 애초에 NBC가 투나잇쇼 호스트 자리 보장으로 코난을 헐값에 붙들었는데 (그것도 무려 십 수년을), 시작부터 전임자의 그늘(정말이지 말 그대로, 전임자의 토크쇼가 신설되고, 그 후속 방송이라는 핸디캡)에서 발버둥치게 했으며, 레잇나잇쇼 때도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는데, 7개월이 과연 그들이 말한 '보장'에 합당한가와, 게다가 이 모든 과정에 빠짐없이 제이 레노가 묻어있다는 찝찝한 사실까지 상기한다면 그것이 (NBC의 결정에는 중요했을지언정) 이 사건을 판단하는데에는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NBC가 '믿고 맡겼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이해하기엔 찜찜한 데가 있는 거죠. 코난은 누가봐도 미국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꺽다리 빨간머리 아일랜드인 코미디언인데다, 그의 개그 스타일도 그가 작가로 있었던 심슨, SNL의 정서-미국적 전통에 대한 신랄하고 삐딱한 시선-를 코어로 두고 있고, 주로 상황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기믹이라, 미국 전통의 토크쇼 호스트 자리와는 거리가 있었으니까요. NBC가 이런 걸 모르고 코난을 믿고 맡겼는데 시청률이 기대에 못미쳤다기보단, 투나잇쇼 호스트 보장을 미끼로 타방송사의 거액 계약을 무화시켜놓고 기실은 애초부터 제이 레노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게 중론이죠. 어쨌거나 시청률이 깡패라, 시청률 1위를 들어 제이 레노를 옹호하는 시청자도 많지만, 가장 과격한 참전자는 방송에 대고 외치기도 했죠. '제이 레노가 그렇게 시청률에 자신 있었으면 동시간대 다른 방송사에서 코난이랑 맞장을 떴어야지, 내내 기웃거리다 투나잇쇼에 다시 기어들어가지 말고.' 이 모든 사태에도 불구,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가 여전히 최고의 인기라는 사실이 미국인들의 모럴 헤저드를 반영하는 거라는 냉소적인 시선까지 있었으니까요. 낭만적인 시각을 거두고 보면 제이 레노가 말한 '비즈니스적인 결정'이란 말에 아주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코난의 어리석은- 뭘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면서도 내렸던 그 모든 어리석은 결정들을 어떻게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코난의 개그는 상대방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보다, 타인 혹은 타문화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웃음거리로 여기는 몰지각한 무뢰배 역할의 코난 자신이 개그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잇나잇 시절부터 오히려 그 몰이해의 대상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통의 시청자층이 많았다고 해요. 조든 슐렌스키는 간단히 말해서, 레잇나잇-투나잇-코난쇼를 모두 같이 하며 모든 우여곡절을 함께 겪은 수 십년지기 오랜 친구이자 동료예요. 불쌍히 여기지 않으셔도 될 듯 :)
/ 코난이 '티비에서 웃기는 게 법적으로 금지된 투어'를 다닐 때, 심야토크쇼 전쟁에 참전했던 동료 코미디언들이 같이 투어를 돌거나 무대에 오르며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스티븐 콜베어였죠.
2014.07.21 13:07
lonegunman 님/ 고맙습니다. 제 일요일 저녁을 아주 멋지게 만들어주셨어요. ^^ 영상이랑 코멘트로 살짝 영업을 뛰었습니다. ㅎㅎㅎ
2014.07.21 14:57
항상 알맹이 있는 좋은 포스팅으로 많은 정보 얻어갑니다. 갑자기 턱주가리가 잠깐 얄미워졌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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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오브라이언에 대해서 전혀 모른채, 다트머스 축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고대그리스 드립이 소개글에 있었거든요. 제 전공과 연관된 이야기라 낄낄거리며 보다가, 마지막엔 아...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 진짜구나 느꼈죠.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라. 단순한 말 같지만 뼈가 저려요. 이렇게 간략해서 보여주시니 더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