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키스] 보고 왔습니다

2023.12.20 11:45

Sonny 조회 수: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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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의 작품 중 제가 세번째로 보게 된 작품입니다. [400번의 구타]는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던 작품이고 나중에 다시 한번 보면서도 조용히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는 작품이라 괜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서럽고 외로운 시절을 보낸 앙트완은 과연 어떻게 나이가 들었을까 하고요. 영화가 그를 처음 보여주는 장면부터 탄식을 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다가 나오는 그의 옷을 보니 군인인데, 위로 올라가서 상관한테 잔소리를 잔뜩 들어먹고 바로 군인을 그만 두는 장면입니다. 상관이 나열하는 그의 무책임한 일상도 기가 막힌데 이 훈계를 자꾸 웃음을 참으면서 건들건들 듣고 있는 걸 보니 보는 제가 다 승질이 납니다. 아주 어릴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라도 들었죠. 이제는 그래도 좀 머리가 컸는데 아직도 이런...? 


불운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그렇게 큰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앙트완이 이후 보여주는 행태를 보고 있자면 꽤나 깝깝합니다. 굉장한 악의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중심적인 그런 성격은 아닌데 좀 헐렁하고 무책임합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일하자마자 바로 잘리죠. 이게 앙트완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손님의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안된다는 규정은 분명히 교육을 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호텔에서 잘리고 시작하는 사립탐정(흥신소) 일도 영 어설프긴 매한가지입니다. 미행을 하다가 너무 티가 나서 바로 신고를 당하질 않나... 구두가게에 위장취업을 해서도 말썽을 일으키질 않나...


이렇게 앙트완을 계속 깝깝해하면서도 영화 자체는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영화라는 건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 흘러가는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감이 안잡히더군요. 이게 앙트완의 성장 이야기라면 처음에는 말썽꾸러기이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줄텐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앙트완의 인생을 가까이에서 지겨보며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카메라는 그를 집중적으로 포커싱하지도 않고 다른 캐릭터들과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앙트완을 바라봅니다. [400번의 구타]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 소년의 외로움과 그 일상을 보는 목적이 느껴졌는데 이 영화는 아예 그렇지도 않더군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게 뭔...???


예전에 정성일 평론가가 누벨바그 영화를 설명하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면 영화가 부숴진다고요. [도둑맞은 키스]를 보면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했습니다. 영화가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 없이 앙트완의 일상을 따라가니까 어떤 작품으로서의 테두리가 희미해지고 어떤 영화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체가 영화의 결점이나 낮은 완성도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앙트완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방식과 이 영화가 만들어진 그 방식 자체가 딱 일치해서 영화가 좀 시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착하길 바래? 이 영화는 그런 사람 이야기 아닌데~ 주인공이 철 좀 들었으면 좋겠어? 이 영화는 그런 교훈극이 아닌데~? 영화 전체가 어쩌라고의 정신으로 흘러간달까요. 영화가 끝난 후에 지브이를 들으면서 이 영화의 각본이 거의 현장에서 쓰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렸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나 뉴욕을 싸돌아다니다가 매춘부 소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친구 엄마에게 흥분하는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 군대에서 쫓겨나 사창가부터 가고 오래전에 친구로 지내던 여자애의 집에 가서 괜히 얼쩡대고 말도 안되는 미행을 하다가 신발가게 사장의 부인, "싸모님"에게 반하는 앙트완의 모습과 뭔가 흡사하지 않습니까? 두 작품 다 자유롭게 쏘다니는 남자애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이 보여주듯이 원래 자유로움이라는 건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모습에서도 벗어나있는 그런 것일테니까요. 결국 앙트완이 사립탐정에서도 짤리고 티비 수리공으로 일하다가 다시 여자친구랑 이어지는 이 영화의 전개가 진짜 얼렁뚱땅같았지만, 자유로운 영화를 봐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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