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화분을 구원해줬어요

2010.06.28 22:46

therefore 조회 수:1874

집에 화분이 하나 있어요.

별거 아닌 평범한 좀 열대계열처럼 생긴 식물인데 팔뚝 정도의 길이에 가벼워요.

마트가면 한 5-7불정도 하는 그런 화분.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주셨는데, 룸메이트 셋이서 거실에 두고 오가며 생각날때마다 물을 주고 키웠어요.

가끔 다들 잊어서 꽤 시들해지기도 하고 입사귀가 누렇게 변색되기도 하면서도 어느새 물주고 보면

다시 파릇파릇해져 있어서 확실히 살아있긴 하구나 싶었습니다.

겨울에 실내온도를 거의 17도 수준으로 해놓고 살았는데도 4개월 넘는 기간을 버티고

이제 거의 일년을 채워갑니다. 요즘의 햇볕 잘드는 덥고 에어컨 거의 안켜는 우리 집에서

여느때보다 입사귀가 생생해보였어요.


그런데 룸메들은 다 한국에 갔고

저도 한달쯤 비워야 합니다.

집 자체도 이사가서 얘를 어떻게 하기가 난감했어요

평소에는 친절한 친구들도 의외로 다들 화분 맡는건 한사코 거절합니다.

사실 저도 이해가 가요. 받아놓고 죽인 경력이 있어서.. 뭐 사소하게 느껴져도 생명이

죽으면 (벌레 이외에는) 죄책감을 수반하게 되더군요.


살만큼 살았다싶어 버릴까했는데 왠지 망설이게 되고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아무 공원에나 묻어놓는 것도 만만찮게 무책임한 것 같고. 

그래도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해서

식물에 마지막으로 물을 흠뻑주고있는데 갑자기 번개같이 스쳐가는게 있었어요.

근처 유기농카페의 화장실에 붙어있던 문구,

이사가는 사람들의 식물을 맡아준단 거였거든요. 


그 순간 굉장히 안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잘 살아있는데 부러 버릴 필요가 없다니. 

식물도 이런데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과 책임의식들을 갖고 있겠구나- 잠시 생각했어요.




물준 정이랄까요.

오가면서 가끔 싱크에서 물을 주고

물빠지면 다시 받침대에 올려놓고

생각나면 해가 더 많이 드는 자리로 옮기고

오다가다 집의 유일한 푸른 흔적을 보고 입사귀를 살짝 만지작거리고

특별히 애정을 준건 아니라도

집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소파나 탁자보다는 더 아끼게 된 것 같아요.


아무튼, 카페에 맡기고 왔습니다. 늘 활발한 분위기의 주인이 환영해줬어요.

이름도 없는 식물녀석이 여름을 잘 지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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