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3 02:38
- 아니 이건 또 왜 벌써 3년 전 영화죠. ㅋㅋ 런닝타임은 2시간 30분. 스포일러는... 걍 핵심만 몇 줄로 요약해... 보려다가 망했습니다. 암튼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었어요.
(커밍 투 씨네마스... 개봉 당시엔 꽤 의미가 깊은 문구였죠. 코시국이지만 극장에는 무조건 걸어야 했던 씨네마 감독 놀란!!)
- 우크라이나의 오페라 하우스에 테러리스트들이 쳐들어 오고,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서 진압을 시도하고, 그 와중에 분명히 경찰은 아닌 우리의 주인공 아들 워싱턴이 출동합니다. 근데 뭔가 계속 뜬금이 없어요. 당연히 마지막에 좌라락 한 방에 설명하며 '어떠냐 놀랍지!!!'를 시전하기 위한 떡밥들이겠지만 어쨌든 지금 여기에다 적는 건 전혀 무의미할 테니 스킵하구요.
암튼 이 임무 후로 우리 아들 워싱턴은 (이미 다들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극중에서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테넷'이라는 아주 수상한 조직에 포섭이 되구요. 국가도 아니고 그냥 '인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첩보 임무에 뛰어드는데... 그게 뭐 대충 시간을 역행하는 싱기방기한 기술과 관련이 있구요. 거기에 무시무시 케네스 브래너 악당과 참으로 아름답고 처연하신 엘리자베스 데비키님이 등장하시고... 결정적으로 사실상 진짜 주인공이 아닌가 싶은 비밀에 찬 수상남 로버트 패틴슨이 함께하십니다.
(사실 전 인버전보다 이 장면이 더 재밌었습니다. 이렇게 수백명이 자는 가운데에서 펼쳐지는 액션씬이 또 있었던가요? ㅋㅋㅋ)
- 놀란 영화를 오랜만에 봐서 오랜만에 하는 얘긴데요. 전 이 분 영화들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ㅋㅋㅋ 보면 거의 매번 재밌게 보는데 딱히 호감이 가진 않아요. 늘 똑똑하게 영화 잘 만드는 능력자라는 건 당연히 인정하지만 왠지 이 분 영화들은 별로 정이 안 가더라구요. 되게 아는 것 많은 오타쿠 감독님이 그 똑똑한 머리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내시는 건 잘 알겠고 인정하겠는데,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느낌은 없구요. 그래서 조금 지나면 시큰둥해져서 기억 저 편으로 날려 버리고 그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테넷'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르라서 언젠간 봐야겠다... 하긴 했는데. 지니 티비에서 이게 되게 건방진 가격으로 미동도 없이 오랜 세월 버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예 관심을 끊었다가, 며칠 전에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라면서 이틀 대여에 550원!!! 이라길래 냉큼 봤어요. 하하.
근데 뭐... 대충 예상대로의 영화였달까, 뭐 그랬습니다. 역시나 재밌게 봤지만 아마 나중에 다시 보진 않을 것 같구요. 역시나 정은 안 가네요. ㅋㅋ
(이름도 없구요. 그나마 나중에 붙는 호칭이 프로타고니스트, 그러니까 '주인공'이었던 우리 주인공님.)
- 일단 가장 인상적인 건, '와 정말 가볍게 만들었구나?'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정말 팔랑팔랑 가볍습니다. 스파이물로서도, 대충 비슷한 성격의 SF, 혹은 환타지물로서도 아주 가벼워요. 도처에 클리셰가 난무하고 개연성 같은 건 별로 신경 안 쓰면서 빨리빨리 전개하며 하고픈 이야기, 보여주고픈 장면들 만드는 데에 전념하는 오락물이었네요.
그리고 그런 가벼움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다른 놈도 아닌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이름 조차 없는 이 양반은... 보는 내내 '대체?'를 연발하게 만들어요. 분명 무슨 조직의 일원이라는데 스토리를 보면 딱히 누구에게 지시를 받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자기 맘대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것 치고는 행동에 일관성이 되게 없어요. ㅋㅋㅋ 게다가 능력치를 보면 무슨 비밀 요원이라기 보단 그냥 평범한 만화책 히어로급이란 말이죠. 다른 캐릭터들이 무게 잡고 폼 잡고 하며 어떻게든 심각한 척을 해보려고 해도 이 주인공 젊은이 때문에 그게 안 됩니다. 그냥 '놀란이 간만에 걍 편하게 하나 만들었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봤네요.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인 '인버전'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후반부의 전개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저도 다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종료 후에 몇몇 장면들은 다시 돌려보며 확인해보고 그랬죠. 놀란 본인이 만들어낸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활용해서 복잡하게 꼬아 놓고, 사방에 떡밥 뿌려 놓고, 종종 대놓고 스포일러를 초중반에 마구 던져 놓고서 '알아 볼 테면 알아 보등가?'라는 자신감도 부리고. 놀란은 역시 똑똑합니다. 능력도 좋습니다. 그런데... 좀 지나치게 퍼즐 티가 나요. '요 아이디어를 갖고 최대한 꼬아대면서 또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할까'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수수께끼 같달까요. 드라마가 진지한 드라마 같지가 않고 그저 과학 덕후 놀란씨의 취미 생활에 동참하여 퍼즐 푸는 기분. 가끔 캐릭터들이 철학적인 화두도 대놓고 투척해주며 무게를 잡아 보려 애 쓰지만... 애초에 그걸 던지는 놈들이 전혀 진짜 사람 같지가 않으니까요.
개인적으론 가장 웃겼던 게. 여기서 그 '인버전'이라는 싱기방기 복잡한 아이템을 잠시 넣어두고 전체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들만 놓고 보면요. 이게 되게 중2병 소년들을 위한 망가/아니메 스타일 스토리라는 겁니다. 주인공도, 동료도, 빌런도, 주인공과 엮이는 가련한 여성도. 그리고 이 모두가 내리는 선택과 그 결과까지도 거의 모두가 그런 작품들에서 많이 본 느낌들입니다. 놀란 아저씨는 참 취향도 넓고 다양하기도 하시지... 라고 생각을.
(한동안 이 양반을 음침함 범죄자, 찌질이, 변태 같은 역할로만 봐 와서 모처럼 훈남으로 나오니 적응이...)
- 그런데 어쨌든 이번에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역시나 아이디어들이 많아요. 도입부 오페라 극장 액션씬에서 경찰들이 투입한 수면 가스를 맡고 관객들이 모두 좌석에 잠들어 앉아 있는 채로 벌이는 액션 장면 같은 것도 보기 드문 진풍경이었고.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가운데 몇몇 인물들은 또 정상 재생(?)되면서 벌이는 액션씬들도 어디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장관이었죠. 게다가 또 이런 걸 잘 나가는 S급 감독님답게 제작비와 인력을 왕창 때려박아 연출해 주니 신선함에 덧붙여 스펙터클까지!!
그리고 이야기 전개가 되게 빠릅니다. 두 시간 반이나 되니 지루할만도 한데, 이걸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덜 중요한 것들을 싹 다 쳐내 버리고 핵심 위주로만 와다다다 달려대니 그냥 멱살 잡혀 딴 생각 않고 끝까지 보게 되더라구요. 덕택에 이야기의 현실성은 더 멀리 날아가 버렸지만 뭐, 애초부터 놀란도 그런 부분은 포기하고 쓴 각본이었겠죠. 여기서 개연성 잡겠다고 캐릭터들 디테일 넣고 주인공 능력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그랬음 런닝타임이 3시간 30분이 되어도 가능했을지... ㅋㅋ
(사실 이 분 때문에 본 것이기도 합니다. 데비키님 넘나 멋지신 것...)
- 또 배우들도 괜찮았어요. 아들 워싱턴은 뭐... 맡은 캐릭터가 뭘 진지하게 연기할 거리는 없는 인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액션을 잘 하더라구요. ㅋㅋ 적당히 평범하게 호감가게 생긴 외모로 적당히 액션 히어로스런 모습 잘 소화했구요. 케네스 브래너는 뻔한 소시오패스 악당 캐릭터를 어쨌든 화려하게, 아주 불쾌하게 잘 살려냈고. 로버트 패틴슨도 참으로 의심스러운 훈남 동료역을 매력적으로 잘 해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호감이 가야 할 캐릭터인데 호감이 가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 데비키는 영화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감정 이입 가능 캐릭터를 맡아서 혼자 되게 진지하게 잘 했습니다. 캐릭터 자체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선 역할 수행 잘 한 듯.
아... 그리고 우리 케인 옹이 계시죠. ㅋㅋ 얼마 전에 배우 생활 은퇴 선언을 하셔서 더더욱 반갑게 잘 봤습니다. 아주 짧은 등장이었지만 본인 이미지에 딱 맞는 역할로 폼나게 잘 하셨어요. 이제 더 이상은 신작이 없다고 생각하니 슬프더군요.
(브레너 옹도 밋밋 뻔할 수 있는 빌런 캐릭터를 불꽃 연기로 잘 살려주십니다만. 짤을 좀 잘못 골랐네요. 데비키님 키가 잘못하셨...)
- 또...
액션 연출이란 것도 타고난 감각의 영역인가 봐요. 이번에도 역시 액션씬들은 좀 그냥 그렇습니다. ㅋㅋ
그러니까 늘 액션에 어떤 아이디어를 넣어서 그걸로 시선을 끌고 인상 남기는 건 잘 하는데요. 이번에도 그 펜타곤스런 건물에서의 2 vs 2 격투 장면이나 도로에서 뭔가를 수송하는 차량을 습격하는 장면 같은 거. 그리고 막판의 어떤 건물 파괴씬 같은 것. 이런 게 다 그 장면에 들어간 아이디어들 때문에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긴 하는데. 그냥 액션 자체를 멋지게, 폼나게, 그러면서 설득력 있게 잘 그려냈는가... 를 생각하면 뭐. 이번에도 좋다고는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특히 클라이막스의 그 대규모 전투씬 같은 건 엄... 뭐가 되게 많이 분주하게 오가긴 하는데 보고 나면 내가 뭘 봤는지 기억이 잘(...)
(인버전 팀과 순행(?)팀이 어우러져 아수라 난장판이 되는 대형 전투씬... 입니다만.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또 상황을 알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 암튼 그래서 결론은요.
아무리 저명한 과학자 친구님의 조언을 들어가며 쓴 각본이라고 해봤자 그냥 딱 봐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빤히 보이는 이야기와 설정들이잖아요.
그냥 신기한 아이디어 하나 들이 파면서 재밌으라고 만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뇌를 비우고 그냥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재미는 있어요. 이야기가 가볍다는 걸 꼭 단점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구요. 이런 수퍼 히어로스런 주인공이 튀어나와 활약하는 스파이/하이스트물 같은 영화를 정색하고 노려보며 '공허하다'고 지적할 필요가 있나요.
게다가 막판에 나오는 놀란의 퍼즐 풀이 클라이막스도 뭐, 확실히 한 눈에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한 면은 있지만 그냥 대충 흐름만 즐겨도 적당히 즐길만하구요. 다 보고 나서 여기저기 찾아 본 해답 (제겐 난이도가 좀 높았습니다만 ㅋㅋ) 한 번쯤 찾아 읽으며 '아 그랬구나~' 하는 재미도 있고 그렇더군요.
애초에 소재가 제 취향이라 그런지 전 오히려 '던케르크'보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아마 '오펜하이머'보다도 이게 맘에 들 것 같아요. 그러합니다. ㅋㅋ
+ 극중에서 우리 마이클 케인 옹에게
이렇게 디스 당했던 '브룩스 브라더스' 양복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대충 주인공이 입고 있던 옷처럼 생긴 게 세일 없이 1,200달러. 그러니까 대략 155만원쯤 하네요.
이게 싼 티 난다고 디스 당하니 제 지갑 수준이 슬퍼지긴 하지만, 뭐 초 극 상류층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ㅋㅋ
++ 근데 극중에서 계속 '일어난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는 말을 반복하는데요.
이게 그렇게 불변의 진리라고 주장을 한다면 영화의 내용과 주인공들의 노력이 다 이상해지지 않나 싶구요. 인간의 주관을 제외하고 보면 화산이 터지나 제 조카 여드름이 터지나 어차피 다 '일어난 일' 아닌가요. 바뀔 수 있는 사소한 일과 바뀌지 않는 중요한 일의 기준이 무엇이더란 말이냐... 는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 자세한 설명은 다 스킵한 간략한 큰그림 요약만 대충 적어 봅니다만. 적다 보니 구멍이 적지 않네요. 그냥 뭐 대충... ㅋㅋㅋ
미래의 우리 후손들은 극심한 환경 파괴의 결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과학자가 '인버전' 기술을 발명해서 과거에 손을 댈 수 있는 길이 열리구요. 하지만 후손들이 '환경을 이 꼴 만들지 못하게 걍 우리 조상님들을 다 죽여버리지?'라는 결론을 내리자 그 과학자는 이 기술에 필요한 핵심 알고리즘을 아홉 개의 조각으로 나눈 후 과거로 보내 버려요. 왜 파괴해 버리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서로 사이 안 좋은 나라들에 하나씩 나눠줘서 이게 하나로 모이는 걸 막죠.
그러자 우리 후손님들은 과거의 인물들 중 부려 먹기 딱 좋게 생긴 놈 하나를 골라서 그놈에게 인버전 알고리즘을 모으도록 시킵니다. 그 대가로 금괴를 팡팡 보내주고요. 그게 바로 영화의 빌런 케네스 브래너님이시고, 우리 '주인공'의 타겟입니다.
어쨌든 수수께끼 조직 '테넷'에 포섭된 후 대략의 사정을 알게 된 주인공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기 밀매상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에게 접근하려는데,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그 아내에게 먼저 접근해 이용을 하죠. 이 아내가 캣 = 데비키님이시구요. 또 테넷에서 조력자로 보내서 주인공과 함께 활동을 시키는 닐(=로버트 패틴슨)은 항상 뭔가를 쓸 데 없이 많이 알고서 의뭉스러운 행동을 해서 닐의 의심을 삽니다. 암튼 그러다가... 중간 다 생략하구요.
사실 사토르는 암으로 인한 시한부 상태였습니다. 어차피 곧 죽을 거, 자기가 죽을 때 이 세계도 멸망해 버리면 끝내 주겠군? 이라는 맘으로 미래 후손들에게 알고리즘을 보내려는 거였죠. 그리고 보험으로 알고리즘의 핵심 정보가 담긴 이메일을 적어 놓고 자신의 심장 박동이 멈출 때 발송되도록 세팅을 해놓았던 것이었습니다. 고로 그 알고리즘(...계속 이렇게 말하니 애매한데 금속 덩어리 형태로 보관되어 있습니다)을 탈취하기 전에 사토르가 죽으면 인류는 멸망해요.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테넷의 전사들은 알고리즘이 숨겨진 장소를 대대적으로 습격할 계획을 세우는데, 팀을 반으로 나눠 한 팀은 그냥 공격, 다른 한 팀은 그 며칠 후에 인버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와 집결해서 선발대가 몸으로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공격한다는 시간 협동인지 뭔지 하는 작전이래요. 그런데 이 공격이 사토르에게 알려지면 또 위험해지니 사토르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며 살다가 한 덩어리가 된 캣을 과거로 보내 알고리즘 탈취에 성공하는 순간 사토르를 사살하도록 합니다.
결국 어찌저찌하다가 캣이 성공 신호를 받기도 전에 사토르를 죽여 버립니다만. 다행히도 그 시점에 알고리즘 탈취도 성공해서 만만세. 캣은 자기 인생 한도 풀고 테넷팀은 현생 인류를 구했네요. 그리고 이 때 닐이 주인공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그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작전은 처음부터 싹 다 너님이 세운 거에요. 테넷을 만든 것도 너님이구요. 저는 너님 기준 미래에서 당신을 만나 절친 겸 오른팔이 되어 이 임무를 자원한 거랍니다.
문제는 탈취 작전 성공 직전에 누군가의 시체가 활약(?)을 했는데. 이 타이밍에 딱 보니까 그게 닐이었던 거죠. 결국 이 역사가 그대로 흘러가면 닐은 또 죽는다는 건데. 닐도 대략 그걸 눈치 챈 것 같지만 어쨌든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기에 씩 웃으며 인사를 하고 떠나가고. 우리 주인공님의 눈엔 눈물이...
에필로그 비슷한 게 조금 나옵니다. 드디어 폭력 남편에게서 해방된 캣이 즐겁게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상한 차를 발견하죠. 그 차엔 전반부에 중요 인물로 나왔던 인도인 여성이 타고 있고, 이 분이 옆에 앉은 부하에게 요 알고리즘에 대해 알고 있는 캣을 살해하도록 지시합니다... 만 그 순간 소음기 총소리와 함께 부하는 사망. 뒷자리에 슥 올라타는 건 우리 주인공님이죠. 아 내가 저 사람은 냅두랬잖아? 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증거는 없어야지? 라고 대꾸하는 중요 인물님. 하지만 대충 체념하고 '그럼 남은 증거는 없애야지?' 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또 총소리와 함께 중요 인물님은 사망하구요. 먼 발치에서 캣을 바라보는 주인공님의 애틋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023.12.03 05:41
2023.12.03 22:01
왜냐면 저는 어려운 부분은 다 빼 버리고 요약을 했으니까요. ㅋㅋ 몇몇 장면들에서 시간선 얽히는 거 분석해 놓은 거 보면 골이 아파서 저도 적당히만 이해하고 포기했습니다(...)
근데 그렇게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마음만 버리면 의외로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오락 영화입니다. 한 번 시도해보셔도 괜찮을 거에요.
2023.12.03 07:35
저는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007을 좋아하는 놀란이 만든(다크 나이트 시리즈에도 007의 요소가 들어가긴 했었죠) 007영화라는 우스개도 있듯, 자기식으로 SF와 함께 겹쳐서 만들었죠. 평소 지적받던 백인남성위주의 요소를 약간 비틀긴 했으나.. 알고리즘 아이템이 12개인 것도 그렇고... 그 문의 존재도 그렇고, 뭔가 설정덕후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클라이막스는 놀란의 팬인 저도 별로 좋아하긴 어려웠지만(시키는 대로 하는 부하의 존재자체가), 거기까지 가는 진행자체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초반 오페라 시퀸스는 2002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극장인질극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죠. 그때 사망자가 170명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우크라이나로 바뀌었고, 영화개봉시점은 러시아 침공이전이었으니... 코로나로 손익분기는 겨우맞췄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가 핵폭탄을 가진 국가들이 미래를 책임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영화촬영이 최신작인 오펜하이머로 이어졌다는 생각을 하면(촬영 쫑파티 때 패틴슨이 놀란에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선물해서 그걸 읽고 이번 영화 제작했다고 하죠) 꽤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그런가... 제가 SF적 설정으로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할아버지 죽이기 역설'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방만함이, 미래의 파국을 부르기에, 미래의 자손들이 현재의 조상을 없앤다는... 어떤 의미에서 인터스텔라의 안티테제적 설정인 것 같아요.
2023.12.03 22:03
네 설정 덕후요. 그래서 오타쿠스럽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
안 그래도 영화 속에서 아예 오펜하이머가 언급되죠. 이런 식으로 차기작 떡밥을 뿌려놨구나 싶어서 웃었구요.
마지막 문단 말씀은 살짝 스포일러가 아닌가 싶지만... 뭐 상관 없겠죠. 그다지 특별할 건 없는 얘기니까요.
2023.12.03 09:46
예고편에서도 나왔던 대사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느껴.'가 어떻게 보면 놀란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해준 것 같은데 이해가 안되서 신경이 쓰이면 그냥 느끼면서 즐기는게 잘 안되는데 말이죠 ㅋㅋㅋ '인셉션', '인터스텔라'처럼 한 번에 100% 이해가 어려웠던 작품들도 그냥 그대로 즐기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마 제게는 처음으로 극장에서 첫관람 하고 별 감흥없이 그냥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나왔던 놀란 영화일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온라인에서 줄거리 해석본을 보고 나중에 블루레이로 재감상을 해보니 다회차를 할 때마다 처음의 당혹스러움이 없는 상태에서 이제야 느끼는 게 되더군요.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말고 두 번, 세 번 봐.'라고 대사를 넣었어야 ㅋㅋ 지금은 그래도 여전히 감독 이름값은 하는 엔터테인먼트한 SF 첩보액션물이라고 평가는 합니다만 어쨌든 영화라는 건 처음 개봉했을 때 관객들을 사로잡아야하는 것도 중요하니 유명감독이 된 후 첫 실패작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항상 시간을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비틀었던 시간 덕후 놀란이 정말 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 덕질을 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중간에 프리포트에서 한 명은 순행 다른 사람은 역행하는 액션이나 그 막판에 파괴됐다가 연이어 복구되는 건물이라든지 듣도보도 못한 구경을 한 건 재밌었구요. 그런데 진짜 제대로 각잡고 따져보면 결국 말이 안되는 것도 맞고 ㅋ
위 상수님 댓글처럼 놀란이 자기 스타일로 만든 007 영화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깊이라는 게 심각할 정도로 없고 완벽히 전형적으로 기능적인 캐릭터들도 주인공은 본드, 사토르는 전형적인 007 빌런, 캣은 본드걸 이런 식으로 맞아떨어지죠. 정말 오랜만에 상업영화에 출연했던 패틴슨의 닐이 제일 간지나고 튀는 캐릭터였어요. 마지막에 가장 짠~한 장면도 있고... 놀란이 처음으로 나름 '다양성'에 신경을 쓴 캐스팅이라는 것도 재밌었죠. 백인이 아닌 흑인 주인공에 사실은 무기상의 아내가 실세였고 여주인공도 클라이막스에 나름 중요한 역할을 주는 등... 그래봐야 놀란의 한계는 명확했지만요.
2023.12.03 22:14
꼼꼼하게 다 이해하고 의미 찾으며 보려는 분들에겐 정말 다회차 감상을 강요하는 몹쓸 영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야 뭐 늘 대충대충 즐기니까요. ㅋㅋ
근데 이게 '이해가 어려워서'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놀란이 결국 자기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이해 시키는 데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 대결전 장면 같은 건 대충 이해하고 다시 봐도 그냥 정신 없고 좀 번잡스럽더라구요(...) 초반의 마스크맨 두 명 vs 주인공과 닐 격투 장면 같은 건 그냥 보자마자 '아 그런 거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던 걸 생각하면 흠...
암튼 이젠 정말 흔해빠지기 짝이 없는 시간여행물에서 이런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는 건 인정해줘야겠죠. 덕택에 재밌는 볼거리도 몇 번 건졌으니 만족합니다. 놀란씨 굿잡!
2023.12.03 09:49
+ 말씀대로 브룩스 브라더스도 고급 브랜드인데 최상류층 코스프레를 하기에는 모자란다는 뉘앙스인데 이걸 국내 상영자막에서 그런 싸구려는 안된다는 식으로 해놨던 걸로 기억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저 브랜드가 정말 싸구려라고 오해할지도...
++ 제가 이해한 작중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는 물론 현재 세계에서 테넷이라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이미 정해진 결말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믿고 주인공들이 아무것도 안하면 안된다. 그러니 어쨌든 열심히 주어진 임무를 노오력을 해야한다. 뭐 이런 것 같았습니다. 억지스럽지만 ㅋ
2023.12.03 22:15
제가 바로 그 잘 모르는 사람이었죠. ㅋㅋ 말씀대로 결국 그게 '기성복은 안 되니 내가 추천해주는 좋은 데서 맞춰 입어라'는 뜻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런 게 궁금해지더라구요. 주인공이 운명의 뺑뺑이에 싫증이 나서 걍 다 때려 치우고 놀아 버리면 미래는, 그리고 그에 영향 받을 과거는 어떻게 되나.... ㅋㅋ
2023.12.03 14:37
뭔가 놀란의 "찐팬" 판독기 같은 영화인듯도 합니다ㅎ
(저는 찐팬이라는 이야기? 껄껄껄)
다크나이트 정도는 좋게 본 사람이 대부분인데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에 이어서 테넷까지 오면 호불호가 꽤 갈리더라고요ㅎ
예전에 메멘토로 놀란이 한국에서 처음 유명세를 얻게 될 무렵
알맹이는 없고 눈속임, 잔기술만 있는 영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간간히 있었는데
이 영화도 막상 메인플롯에 막 대단한 주제나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닌데 꼬아놓은 시간선 때문에 헷갈리고 현란하게만 만들어놓은 영화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꼬아놓은 서사방식도 그냥 보여주는대로만 대충 수긍(?)하면서 넘기면 즐길만 했고
특히 (눈물없이 못볼!) 홍콩영화 감성의 마무리도 전 괜찮더라고요ㅎ 그 애잔한 감성을 미세한 표정으로 표현할만큼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내공있는 연기자는 아닌 듯 한 게 아쉬웠지만요ㅎ
오히려 로버트 패틴슨은 역 자체가 멋진척 마음껏 할 수 있는 역이긴 했는데 배우의 연기 자체도 괜찮아서 호감도가 오르긴 했어요. 이 영화 이후에 배트맨도 꽤 훌륭하게 해내는 걸 보고 호감도가 더 올라가더군요.
2023.12.03 22:19
근데 전 이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긴 자주 들었어도 못 만들었다, 싫다는 얘긴 또 많이는 못 들었거든요. 그래서 되게 호평인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제 생각보단 안 좋아한 분이 많은 듯.
메멘토는 그래도 마지막의 그 반전이 나름 인간 본성(?)에 대해 고찰하는 척... 하는 식이었고 또 그게 임팩트가 있어서 그렇게 가벼워 보이진 않았는데. 이 영화는 기교와 퍼즐 풀이가 극에 달해서 그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지더라구요. 저야 뭐 가벼운 영화들 좋아하니 그냥 즐겁게 봤지만요. 하하.
마지막은 홍콩 감성이기도 했고... 또 아주 대놓고 모 유명 SF영화가 떠올라서 좀 웃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가볍다고 느낀 것 같기도 해요.
패틴슨은 정말 인생 승리죠. 그렇게 이미지 박혀 버린 배우가 이만큼 변신해내기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근데 또 우연찮게 같은 영화 주연이었던 다른 분도 결국 그 이미지 떨쳐내는 데 성공하신 걸 보면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뭔가 특별한... (쿨럭;)
2023.12.03 18:45
2023.12.03 22:20
네 기성복 vs (고오급진) 맞춤옷. 그 차이를 말하는 대사였는데 자막이 애매하게 번역을 해놨더라구요. 저렴한 양복이라는 줄 알고 '보기엔 멀쩡한데?'라고 생각했어요. ㅋㅋ
2023.12.03 19:37
윗분들이 브룩스 브라더스 이야기를 해서... 다크 나이트에서 루시우스 폭스에게서 쓰리버튼은 구식이죠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때 크리스찬 베일이 입은 양복이 조르지오 아르마니였죠. 협찬에도 들어가있는... 위키에도 나와있지만, 인셉션도 그렇고, 누가 영국남자 아니랄까봐 캐릭터들한테 수트입히는 것도 좀...ㅎㅎ(배트맨 비긴즈 촬영 전, 마이클 케인 집에 찾아가서 캐스팅제의 할 떄 브루스 웨인의 집사역할이라며, 찾아갔을 때도 커피인지 차를 마셨다고..) 심지어 촬영장에서 수트차림으로 온다고 하지요.
2023.12.03 22:21
뭐 그게 또 어울리는 사람들이고 그게 자기네 문화적 스타일과도 연결되고 그러니까요. ㅋㅋ '킹스맨' 같은 영화가 한국에서 어떤 포인트로 그렇게 흥행했나를 생각해보면 놀란의 의도와 관계 없이 결과적으로 현명한 전략 같기도 해요.
2023.12.03 22:30
위에 레이디버드님이 말씀하셨지만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라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방법같긴 합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오타쿠스럽달까 놀란 본인이 제시한 설정 규칙은 꼼꼼하게 다 지키려고 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그래요. 테넷 영상 내 이해 안되는 부분 설명한 유투브 영상만 한가득인데 보고 있자면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인지 싶더군요.ㅋㅋㅋ 생각해보면 인셉션도 그런 류였죠.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가정해놓고는 그걸 꼼꼼하게 따르는... 그런데 테넷이 더 설정이 튀어선지 그런 면이 도드라진 것 같네요.
2023.12.03 23:46
개인적으론 설정이 튀기로는 '인셉션'이나 이거나 막상막하가 아닌가 싶었구요. (대체 꿈 속에서 그게 뭐하는 짓... ㅋㅋ)
다만 '인셉션'의 경우엔 그 튀는 설정이 주인공들 드라마와 잘 섞여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는데. 요 '테넷'의 경우엔 그게 그렇게 잘 융합이 되진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퍼즐은 퍼즐이었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