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이 보답받지 못하는 슬픔

2023.10.17 21:00

Sonny 조회 수:409

5b90d703e5dd1.png


제가 스타크래프트 1 리그에서 제일 좋아하고 응원하는 선수는 변현제라는 선수입니다. 예전에 듀게에 이 선수의 지독한 게임 스타일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그 외에도 독특한 tmi가 하나 있는데요. 이 선수는 표정변화가 아주 솔직합니다. 자기가 실수를 했거나, 게임을 진다거나 하면 자책을 심하게 하느라 카메라가 없다는 듯이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짓죠. 저 사진이 어떤 극적인 순간을 딱 캐치해낸 게 아니라, 자기가 지거나 뭘 못했다고 느끼면 여지없이 저런 표정이 나옵니다ㅋㅋ 그래서 변현제에게는 "전기의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저렇게 자책하면서 의자에 푹 잠겨서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는데 그게 전기의자에 앉아서 지지지직 고문당하는 것 같다는거죠. 해설자들도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아~ 변현제 또 전기의자 앉겠는데요~ 


이 링크에서 동영상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ㅋ 

https://vod.afreecatv.com/player/88520791


얼마 전에 변현제가 다른 선수와 맞붙은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스포를 피해서 뒤늦게 경기를 챙겨보았는데 결국 졌더라고요. 질 때마다 전기의자에 앉는 변현제를 보니 진짜 속상하고 웃프더군요. 7전 4선승제에서 결국 4:1로 졌는데 그 중 두 경기는 자기가 정말 유리한 분위기를 가져가놓고서도 끝내 밀려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30분이 넘어가는 장기전을 해서 이렇게 져버리니 더 속상하기도 하더군요. 전에 이 선수는 타짜의 고니를 방불케하는 도박적인 플레이를 즐긴다고 소개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도박수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후반지향형 플레이에 더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게릴라 플레이나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역공 플레이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대 선수의 별명이 방어력으로 유명한 "철벽"이라서 그랬던 것일지도요. 결과론적이지만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 조금 더 본인 스타일의 견제에 집중했다면 어떘을까 싶더군요.


팬이 건방지게 선수에게 훈수를 둬봐야 뭐하겠습니까? 김민철도 한번은 우승을 했어야 하는 강자였습니다. 그저 이게 순리였다고 생각해야죠.


오랜만에 응원을 하는 선수가 참패를 하는 슬픔을 경험해봅니다. 저는 스포츠를 원체 안봐서 누굴 열렬히 응원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국가대항전 축구경기나 올림픽 같은 것들은 애국심으로 뜨거운 응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애국심마저도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가장 최근에 불타올랐던 일이라면 월드컵 정도일려나요.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보면 "영미~~"가 울려퍼지던 컬링 정도? 그러다가 변현제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만큼 속이 쓰리고 비통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 때 뭘 했더라면, 조금만 더 기민하게 움직였더라면!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그리게 되는데 그럴 수록 마음이 헛헛해집니다.


혹시 이게 제가 누군가를 응원하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저는 변현제 이전에 송병구라는 프로게이머를 좋아했는데, 이 선수가 바로 "콩라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선수입니다. 너무너무 잘하고 다른 선수나 감독들이 다 우승후보로 뽑는데 결승전에만 올라가면 귀신이 쓰인 것처럼 지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송병구를 보고 홍진호 라인이라고 농담을 했고 그게 콩라인으로 되버린거죠. 송병구는 결국 이 콩라인의 저주를 풀었지만 그 다음에 결승에 갔을 때는 아주 크게 참패를 했습니다. 변현제도 힘겹게 콩라인의 저주를 풀어낸 선수인데 그 우승 다음에 또 스코어상으로는 커다란 패배를 하면서 또 준우승의 아쉬움을 겪고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어째서 이렇게 우승의 기쁨을 이렇게 힘들게, 딱 한번씩만 맛을 보여주는지... 이제 스타크래프트 리그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기회를 꼭 잡아서 변현제가 우승 한번은 더 해줬으면 합니다. 


@ 변현제를 응원하러 무려 숏박스 개그맨들이 왔더라고요. 한명은 목사 코스프레하고 한명은 스님 코스프레하고 경기 도중에 서로 기도하는 흉내 내고 있는데 종교대통합이라고...ㅋㅋㅋ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91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24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677
124934 (스포) 전장연 다큐멘터리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6] Sonny 2023.12.07 328
124933 [스압] 오랜만에 올리는 스누피 스티커 [3] 스누피커피 2023.12.07 269
124932 레알 마드리드 음바페에게 최후통첩 daviddain 2023.12.07 218
124931 엑스포 떨어진 부산 민심 달래는 윤석열과 재벌들...(국제시장 방문) [5] 왜냐하면 2023.12.07 510
124930 2023 National Board of Review Winners [1] 조성용 2023.12.07 192
124929 Norman Lear 1922-2023 R.I.P. 조성용 2023.12.07 104
124928 요즘 좋았던 영상 - 스위트홈 시즌 2, 워너 100주년 기념 DDP 전시, 고양이의 도미노, 전정부의 엑스포 홍보영상, 마음돌보기 상수 2023.12.07 231
124927 [넷플릭스바낭] 뜻밖의 인도네시안 스릴러, '복사기'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12.06 276
124926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3 한국영화 베스트 10 [1] 상수 2023.12.06 491
124925 프레임드 #635 [4] Lunagazer 2023.12.06 69
124924 페르시아의 부마 음악 [5] 돌도끼 2023.12.06 222
124923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3.12.06 582
124922 무도관 음악 [2] 돌도끼 2023.12.06 126
124921 오늘자 뉴스 몇개,,,(블랙핑크, 이재명, 방통위원장....) 왜냐하면 2023.12.06 276
124920 십년전으로 되돌아갈래 하면 좋죠 하는 사람 없다고 합니다 [3] 가끔영화 2023.12.06 282
124919 가지를 치는 책, 피로사회, 웨스 앤더슨 단편, 잡담 [6] thoma 2023.12.06 292
124918 프레임드 #634 [5] Lunagazer 2023.12.05 114
12491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n stage 가끔영화 2023.12.05 163
124916 윙코맨더 음악 [1] 돌도끼 2023.12.05 110
124915 황금박쥐 주제가 [1] 돌도끼 2023.12.05 15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