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4 21:43
- 또 에피소드 6개에 편당 40여분. 스포일러 없구요.
(그러고 보니 Slow Horses라는 제목은 Slough House와 이어지는 말장난이기도 하네요.)
- 시즌 1도 그 자체로 완결성이 충분한, 그리고 재밌게 잘 만든 이야기였습니다만. 시즌 2까지 보고 나면 둘 사이에 관계성 같은 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결국엔 시즌 1은 캐릭터와 배경 소개, 밑밥 깔기로 가면서 거기에 가벼운 사건을 얹은 시즌이었고 시즌 2부터 발동 걸고 본격적으로 달린다는 느낌. 그래서 두 시즌을 이어서 봐도 뭐 부담스럽거나 물리는 것 없이 그냥 쭉 재밌습니다. 물론 시즌 1을 재밌게 봤다는 가정 하에서요. ㅋㅋ
(이번 시즌은 그냥 대놓고 이 양반이 주인공입니다!)
- 시즌 2가 '본격적이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심 사건입니다. 이런 스파이물들 좋아하는 분들에게 매우 친숙한 단골 소재가 출동하거든요. 냉전 시대 스파이들, 그리고 냉전 체제 붕괴 후 엇갈린 그 스파이들의 기구한 운명. 스파이 소재 시리즈라면 한 번은 응당 나와줘야죠. ㅋㅋ
개인적으로 재밌다는 생각이 든 건 세월의 흐름이 이 소재에 미치는 영향이었어요. 한 20년 전에 이런 소재로 스파이물이 나오면 그 냉전 스파이들은 아직 쌩쌩하게 활약할만큼 적당히 늙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이젠 그 시절 스파이 생존자라고 하면 최소 환갑입니다. 고로 얘들이 아무리 무시무시한 일을 벌여대도 이야기의 바탕에 기본적으로 소멸, 회한, 이것이 마지막... 과 같은 쓸쓸한 정서가 아주 실감나게 실려요. 그리고 그걸 잭슨 램 캐릭터의 개인사와 연결지어서 결과적으로 시즌 1에 비해 감성적인 울림이 훨씬 큰 시즌이 되었구요.
(조나단 프라이스의 캐릭터도 전보다 비중이 살짝 늘었구요. 이번 시즌은 결국 황혼의 노인들 이야기거든요.)
- 또 하나는 뭐, 당연히도 전작에서 맛보기 수준으로 뿌려 놓았던 떡밥들, 캐릭터 설정들이 시즌 2에서 심화되고 발전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우리 게리 올드만의 잭슨 램 캐릭터겠죠. 시즌 1 말미에 이 양반이 슬라우 하우스 같은 '진창'에 스스로 처박혀 있는 이유가 슬쩍 제시되긴 합니다만, 시즌 2에선 그걸 심도 있게 파해쳐서 다 보여줘요. 거기에다가 이번 시즌 빌런도 램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게리 올드만옹의 비중이 그냥 원탑 주인공급이 됩니다. 뭐 처음부터 존재감은 그랬지만, 이번엔 분량과 역할 양면에서 걍 대놓고 원탑. ㅋㅋ
나머지 슬라우 하우스 멤버들은 이제 슬슬 서로를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느낌입니다. 그냥 단순히 '뭉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루는' 법을 익혀가는 느낌이라는 게 재밌어요. 당연히 캐릭터들 각자에 대해 좀 더 심화 모드로 파고 들어가는 요소들도 흥미진진하구요. 저번 시즌과 마찬가지로 얘들이 동상이몽으로 각자 다른 의도로 딴 일 열심히 하다가 그만 마지막에 한 점으로 수렴하게 되는 구성이 '뻔함 방지'에 덧붙여서 반전의 재미를 더합니다. 뭐 그래봤자 결국 다 램 부장님 손바닥 안이지만요?
(새 캐릭터도 대충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나름 개성이나 매력도 뽐내주고 그럽니다.)
- 스케일도 더 커졌습니다. 이번 빌런들은 판을 정말 크게 벌이거든요. 그래서 클라이막스까지 가면 내용 면에서나 볼거리 면에서나 정말 시즌 1은 몸풀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해서 진짜 막 엄청 예산을 들인 호화로운 볼거리가 나오는 건 아닌데, 영리하게 잘 연출해서 되게 스케일 큰 난리통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게 해요.
유머의 활용도 아주 적절합니다. 이번 시즌은 특히 초반부터 막 달려대서 위기감이 잦아들 틈이 없는 편인데 보다가 지치지 않도록 참 적절한 타이밍에 그 독한 영국식 농담을 끼얹어주더라구요. 생각하면 할 수록 각본도 좋고 연출도 좋고 뭐 빠지는 구석이 없는 드라마네요.
전 특히 그 클라이막스에서 각지에 흩어져 각자 자기 할 일 하고 있던 슬라우 하우스 패밀리가 여차저차해서 한 장소로 달리게 되는 전개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긴박감도 넘치고 드라마틱해서 짜릿한 기분!
(혐오스럽게 취식하기 스킬이 저번 시즌보다 대폭 파워업하신 우리 램 부장님. 게리 올드만이 너무 천연덕스럽게 잘 연기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일 것 같...)
(그리고 그 와중에 이번 시즌에서 참 여러모로 활약 해주시는 이 분... 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냥 웃음만 나와요. 보신 분들은 이 심정 이해하실 듯.)
- 기억에 남는 장면들... 을 꼽아 보자면 일단 우리 비서 할머니의 체스 장면이 참 좋았구요. 소탈한 듯 하면서 사실 할 거 다 하고 능력도 출중한 이 캐릭터의 매력이 되게 잘 살아났어요. 매 시즌마다 계속 러브라인 '비슷한' 걸 형성하는 훈남 젊은이가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시원하게 바로 처리 못 하고 자기 처지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연출이 좋더라구요. 전 시즌에서 커플이 된 양반들의 드라마도 좋았고. (정말?) 우리 슈퍼 스파이 잭슨 램이 마지막에 빌런을 맞상대하는 장면이야 뭐 말 할 것도 없구요. 그리고... 사실은 마지막 화가 끝나자마자 시즌 3 예고편을 틀어주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ㅋㅋㅋ 오래 안 기다려도 되겠어! 이미 다 찍어놨네!!!!!
(우리 멋진 할머니도 또 멋진 장면 하나 만들어 주시구요. 이거시 퀸스-갬빗이닷!!!)
- 결론이야 뭐. 아주 잘 만든 시리즈의 더 잘 만든 두 번째 시즌입니다. 애플티비+ 유저시라면 일단 시즌 1 보시고 맘에 드시면 신나게 달리시면 되구요.
유일한 걱정이라면 과연 시즌 3을 이것보다 더 잘 만드는 게 가능할까... 라는 것 정도. ㅋㅋㅋ 계속 계속 잘 보고 있어요.
이걸 보고 나니 갑자기 스파이물 뽕이 차서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등등 영국풍 스파이물들 뒤적뒤적 하고 있네요. 당장은 안 보겠지만 조만간 이것들도 좀...
+ 우리 사이먼 페그 마크 투와 잠시 얽혔던 저 분
맘에 들었는데. 다음 시즌에도 또 나오면 좋겠지만 안 나오겠죠.
++ 이번 시즌의 곡은 이겁니다.
이제 이 분들도 나온지 20년이 넘어 신입 아재들의 라떼 밴드가 되었군요. 허허...
2023.04.24 23:31
2023.04.25 10:29
비중이 크지는 않고, 말하자면 얄미운 찐따 캐릭터 정도 되는데 배우 연기가 매우 찰집니다. ㅋㅋㅋ 저 설명을 보고도 관심이 가신다면 아마 즐기실 수 있을 거에요!
2023.04.25 00:07
시즌 1에서도 이미 맛배기로 보여줬었지만 이번엔 진짜 잭슨 램이 사기캐 주인공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줬던 것 같아요. 특히 냉전시대와 관련된 그 과거사도 그렇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역시 올드먼옹이 연기했던 스마일리 캐릭터도 겹쳐지더라구요. 마지막화에서 아예 대사로 언급도 됐던 것 같은.. 근데 완전 깔끔한 영국 신사 스파이였던 그 작품과는 달리 여기서는 ㅎ.. 저 혐오스럽게 취식하는 씬에서 국물이 모니터를 뚫고 저한테 튀는 느낌이었어요 ㅋㅋㅋ
두 시즌만에 멤버들한테도 금방 정이 팍팍 드는데 정말 비서 할머니는 전시즌에서도 호감이었지만 이번엔 더욱 멋지시더군요. 이번에 새로 합류한 여성 현장요원도 매력이 넘쳤고 다음시즌에 활약이 더 늘어나길 기원합니다. 이번에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여사님 캐릭터 비중은 줄어든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웠어요. 그런데 시즌 1 글에서 써주셨듯이 진짜로 본부 요원들이 너무 무능하게 나오죠. 주인공 슬라우 하우스 멤버들이 돋보여야해서 대조적으로 그런 묘사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무슨 다 줄을 잘서서 본부에 자리 잡은 케이스들인가 싶기도 하고 ㅋ 특히 저 캡쳐샷에 나온 캐릭터는 meet cute 어쩌고 설명해줄 때 빵터졌네요.
한가지 약간 맘에 걸렸던 건 빌런 측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이 타이밍에 실행한 빅 픽쳐라는 게 겨우 그거라고?? 이런 느낌이었죠. 뭐 영국멸망급 위기를 그리기에는 이 시리즈 톤과 매너에 별로 맞지 않았겠지만 약간 김빠지는 면이 없진 않았어요. 그래도 크게 지적할 정도는 아니고 시즌 1보다 훨씬 더 쫄깃했습니다. 자잘한 반전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터뜨리는 것도 좋았고
2023.04.25 10:54
사실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캐릭터인데, (요원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서 뭐 하나 알아내서 보고하면 "그딴 건 나도 알아." 근데 진짜 알고 있었... ㅋㅋ) 그래도 이번 시즌에는 나름 맞상대가 될만한 빌런이 나와서 그렇게 사기라는 생각 없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짜 저 국수는... ㅋㅋㅋㅋ 젓가락 쿡쿡도 압권이었죠.
본부 요원들의 무능함은... 나름 각본에 신경을 써 놔서 시즌 1에도, 시즌 2에도 어느 정도 사정이 깔리긴 하죠. 자꾸만 사건들이 슬라우 하우스로 가서 찰싹 달라붙고. 그래서 주인공들이 먼저 정보를 얻는데 이런저런 암투 때문에 본부가 그걸 일부러 무시하고 딴 짓을 한다든가... 그래서 무능이라기 보단 잿밥에만 관심 많은 집단이라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배우님 덕에 매우 간지나긴 해도 그 부국장님도 권력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그려지잖아요. ㅋㅋ
빌런들의 마지막 작전은 뭐, 그냥 최종 빌런님의 궁극의 목표와 그걸 위한 훼이크(?) 목표가 따로 놀고 각각 주체가 따로 있다 보니 전 걍 괜찮았습니다. 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했어요. 하하.
2023.04.25 20:12
새로운 캐릭터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저야 원래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지지부진한 배경스토리나 서사없이 깔끔하게 바로 이야기에 붙는 것이 제작진들이 진짜 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1시즌 캐릭터나 이야기들이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연결되어 상승되는 느낌이었지요. 클리프행어 따위에 의존하는 쇼들은 반성해야...
2023.04.26 00:02
네 전 당연히 신캐릭터니까 배경도 나오고 독립 스토리도 부여 받고 그럴 줄 알았는데, 걍 다짜고짜 열심히 할 일 하는 걸로 밀어 붙이면서 자연스럽게 융화를 시키더라구요. 노련도 하고 자신감도 있고 그런 작가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이렇게 줄줄이 이어져도 이런 식으로 매번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뭐 원작 소설 한 권 한 권을 한 시즌들로 만드는 구성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습니다만. 제발 다른 작가들도 이런 것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ㅠㅜ
2023.04.25 21:09
1시즌 다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작가들이 (지나간 유행어지만) 쿨하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나 캐릭터가 좋으니 배우들도 최상의 역할 연기가 나오는 거 같고요. 말씀대로 음악까지 좋았습니다. 2시즌 시작해야겠어요. 강력추천 비슷하게 해 주셔서 잘 봅니다!
2023.04.26 00:03
재밌게 보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만, 솔직히 '이걸 재미 없게 볼 수가 있나?' 라는 생각도 좀 하고 있었습... ㅋㅋㅋㅋ
더욱 재미난 시즌 2까지 저만큼 즐겁게 달리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