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힘

2011.07.22 22:39

frolic welcome 조회 수:1284

살다보면 누군가를 지지해주고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고 아프지 않게 지켜주고 싶고…

그럴 때 수 많은 사람들은 ‘조언’을 합니다.이렇게 해,저렇게 해.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슬프니?그렇다면 이렇게 해봐.
시험에 떨어져서 속상하니?그럼 저렇게 해봐.

 

조언의 ‘조’자는 한문으로 도울 조 자죠.그러나 사실 진짜로 도움이
되려면 ‘돕는 말’을 내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내 귀에 옳은 말이 아니면 내면화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맞는 말만 나한테 와서 박히고 구체적인 ‘도움’이
되기에 마련인데,아주 운이 좋아 내 조언이 상대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면
모를까,아니라고 하면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상대방 귀엔 그저 공익광고일
뿐입니다.제대로 된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즉 상대방 가슴에 제대로 가
박히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내 말이 상대가
보기에도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죠.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어요.그 가치관이란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른 경우도 많고 똑같은 사람이어도 상황에 따라 가치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경청입니다
뭔가 상대의 가치 평가 기준의 벽을 통과해 내면에 와서 박히는 조언을
찾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상대의 입에서 스스로 결론이 나오도록
하는 거에요

 

위에 언급된 예를 다시 끌어오자면,
(여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에게)많이 힘드냐?
(시험에 불합격한 녀석에게)속이 타겠다…
정도 하는 겁니다.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이른바 ‘말 할 틈’만 주면,
여자친구와 헤어진 심경,혹은 시험에 불합격한 기분 따위는 본인 입에서
알아서 나올 겁니다.

 

그때 그냥 듣는겁니다.적절하지만 과하지 않은 반응과 함께.
이 과정까지만 해도 상대에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털어놓는다는 것은,복잡했던 내면이 ‘문장’이라고
하는 체계적인 도구로 정리되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가끔은 정적도 좋습니다
경청 도중에 발생하는 정적은 상대로 하여금 ‘정적이 있더라도 내 말이
끊길 염려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정적 이후 상대의 입에서 했던 말이 나오거나 곁가지 고민들까지
같이 나오는 등 고민이 점점 증폭된다 싶을 땐 듣기를 멈추고 대화
내용을 정리하거나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질문 중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이겁니다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겁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인간이라면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뭔가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고 이겨내기 위한 방어막은 사실 본인의
반 무의식중에 일어납니다

 

아마 상대는 답하겠죠,쓴웃음과 함께.
‘여자친구 일은 일이고,그냥 당분간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거지 뭐.’

 

‘시험이야 내년에 또 있으니깐…그냥 짜증나는거지.미뤄지는 게.’

별 것 아닌 듯 뱉더라도,상대는 이미 생각을 문장화하는 과정에서
비논리적인 생각의 곁가지들과 잡념을 태웠고
힘든 과정 중에 있으나 그 과정을 이미 극복하는 중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술에 잔뜩 취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원치 않는 술자리에서 높이 계신 분들이
제게 쏟아내시는 원치 않는 조언을
네시간이나 듣고왔기 때문입니다
초저녁 밥상머리 반주로 시작해 진상으로 마무리된 오늘의
술자리는

경청의 중요성과
회사를 그만둬야 할 필요성만을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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