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일을 잘할 자신이 있어서 하는 경우란 별로 없습니다. 하다 보니, 또는 해야 하기 때문에 했더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잘)할 자신이 없다고 겁먹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건 내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큰 배포가 제겐 있어요. - -
오늘 H사와의 미팅은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전쟁에 가까운데, 바로 그 점이 해볼 만하다는 솔깃한 마음을 들게 합니다. 미팅 내내 피가 마르겠지만,  지금 저의 내면은 긍정의 그림이 그려진 면이 펼쳐진 카드들로 가득해요. 난삽한 표현이지만 그렇습니다.

2. 오늘 미팅을 두고 어제 회사의 핵심 브레인 P는 저에게 '기대한다'고 했고 보스는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대한다'와 '믿는다'는 결코 동의어가 아니죠. 믿음은 상대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기대는 상대방보다 자신의 욕구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어요. 굳이 동의어를 찾아보자면, 기대한다는 것은 '상대가 그러해야 한다는 나의 욕심' 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대는 신뢰가 아니라, 자기 혼자서 상대에게 기대라는 짐을 얹어 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관계의 구조나 밀도를 놓고 보자면 '믿는다'는 말은 P에게서, '기대한다'는 말은 보스에게서 듣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반대현상이라니, 그것참 이상합니다. 

3. 뜬금없이 '밑빠진 독'이라는 구문이 떠오르네요. '밑'이라는 것은 바닥과의 접촉벽입니다.  '밑'이 없다면 그 바닥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용기 속에 담겨 있던 생각의 정수만 줄줄 새버리고 말아요. '밑'의 변은 접촉벽으로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걸 제가 오늘 미팅시간 내내 유념하기를 바라며, 
쓰담쓰담, 토닥토닥하는 의미에서 <꽃가루되기>라는 인디언의 노래를 암송해봅니다. (조셉 켐벨의 신화 관련 책에서 읽었던가? )
적을 만났을 때 적의 분노를 가라앚히기 위해 부른 노래라지만 슬픔과 아픔, 두려움을 잠재우는데도 효능을 발휘했을 것 같습니다. 노랫말이 자아와 타자, 인간과 우주와의 경계를 허무는 '우주 되기' 기도에 다름아니니까 말이에요.

-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럼 너의 발은 꽃가루, 너의 손은 꽃가루,
  너의 몸은 꽃가루. 너의 마음은 꽃가루,
  너의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다우면서도,잠잠하여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91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24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681
111717 문빠가 쎄긴 하네요. 김형오 미통당 공천위원장 사퇴 [5] 가라 2020.03.13 2245
111716 연예계 단상 [7] 예정수 2020.03.13 983
111715 [회사바낭] 결재선 + 그분 [10] 가라 2020.03.13 698
111714 [넷플릭스바낭] 오랜만에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원펀맨'을 봤네요 [7] 로이배티 2020.03.13 689
111713 [대륙의 기상] 중국의 대구 우한시의 수준 [3] ssoboo 2020.03.13 1001
111712 조던 필 제작, 알 파치노가 나오는 헌터스 Hunters 보고 계신가요? [6] iggy 2020.03.13 692
111711 [총선바낭] 김은희, 박찬주, 유영하, 금태섭 [3] 가라 2020.03.13 749
111710 [스타트렉] 피카드 7화... 그 외 (노스포) [2] 노리 2020.03.13 453
111709 이런저런 일기...(젊음, 성장성) [1] 안유미 2020.03.13 449
111708 네이버 시리즈 온에서 <언더 더 스킨>이 무료네요 [5] 부기우기 2020.03.12 507
111707 [총선] 찐따 섭섭이가 탈락했군요. [11] ssoboo 2020.03.12 1221
111706 옛날 영화를 보다보니 요즘 영화가 떠오르네요 [9] 부기우기 2020.03.12 456
111705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지속 가능성 37일 [3] 어제부터익명 2020.03.12 884
111704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감상(스포 약간) [1] 예정수 2020.03.12 500
111703 달라진 사람 [27] 은밀한 생 2020.03.12 1198
111702 정의당은 민주당이 방해 안하면 표가 굴러올거라는 망상을 버려야... [14] 도야지 2020.03.12 871
111701 중국 봉쇄 안한 문재인이 문제라던 머저리들 사과 안합니까? [3] 도야지 2020.03.12 818
111700 탑골가요(배따라기 골든베스트) & 정치바낭(비례연합정당관련 인터뷰) [8] 왜냐하면 2020.03.12 453
111699 와인스틴 23년 형 [23] mindystclaire 2020.03.12 889
111698 NBA 시즌 중단 영화처럼 2020.03.12 40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