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를 겨우 읽고.

2023.06.05 14:07

thoma 조회 수:329

프레데릭 포사이드의 '코브라'(2010)'는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책 한 권 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자칼의 날'은 건조한 스파이물, 수사물, 추격물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대부분 좋아할 작품인데 '코브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중심 인물과 악의 축이 되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인물의 개성 중심도 아니고 이야기의 규모도 매우 크고 분야가 넓습니다. 무엇보다 60년대 식 아날로그 스파이물의 느낌이 많이 나는 '자칼의 날'에 비하면 이 소설의 시간 배경은 세계무역센터 붕괴 이후의 가까운 현대라 컴퓨터를 비롯 최신 장비들이 동원되고 사람보다 장비빨과 시스템의 비중이 훨씬 커진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적극 협조하여 테러와의 전쟁급으로 코카인과 전쟁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코브라'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의 카르텔을 궤멸시키기 위한 작전명입니다. 왜 시작되었고 어떤 사람들이 작전의 중심이 되는지를 소개하고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인, 준비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나열되는 데까지가 전체 420페이지 분량의 반 너머를 차지합니다. 작가가 나이들어 그런지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도 모두 은퇴하거나 은퇴와 다름없는 한갓진 생활을 하던 60,70의 나이먹은 이들입니다. '코브라'는 작전명이면서 동시에 이 사람으로인해 작전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은퇴한 전 CIA팀장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세운 계획에 의거해서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말 그대로 육해공에 걸쳐 거미줄치듯 빈틈없이 준비하는데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백전불태'를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전 수행에 실무를 뛰어 줄 사람으로 덱스터라는 사람을 불러들입니다. 제가 읽지 않은 앞선 소설에서 데브루(코브라)와 덱스터는 같은 편은 아니나 서로의 능력에 대한 존중을 하게 된, 인연인지 악연인지를 맺었던 거 같아요. 데브루는 미국 동부의 좋은 환경에서 최고 교육을 받은 수재인데 덱스터는 노동자 계급으로 고생 끝에 변호사가 되었고 개인적인 불행을 포함하여 산전수전 겪고 이제는 조용히 살고 있었어요. 모든 계획은 데브루가 세우고 그 계획대로 현장을 다니며 실행하는 일은 덱스터가 하게 됩니다. 노인네들이 체력도 좋지.

     

초강대국인 미국의 추진력과 물량의 힘에 대한 긍정이 깔린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왜 영화에서 블랙호크가 등장하고 이륙할 때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헬기 소리와 최첨단 무기로 단장한 군인들의 모습이 비추어지면 뭔가 미국의 힘! 같은 금속적인, 물신적인, 숭배하게 되는 분위기 있지 않습니까. 자원의 전적인 지원으로 작전을 진행하는데 그런 무자비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소설 전반에 이어지던 저의 이런 느낌은 결국 마지막에 슬쩍 비틀어져서 독자의 허를 찌르며 안심하도록 마무리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의 대부분 분량을 군사 작전에 대한 지식, 배와 전투기에 대한 지식, 코카인 생산과 공급망에 대한 지식으로 채워넣고 있어요. 뭐랄까 내 독자라면 읽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선을 넘는? 난감할 수도 있는 세부 지식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서 중에 나는 지금 뭘 읽고 있는가 싶은 고역을 느끼기도 했어요. 위에도 썼듯이 왠 보고서를 읽는 듯할 때가 많아요. 자료 조사하는 스테프들의 역할이 매우 큰 소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콜롬비아는 커피를 떠올렸던 나라인데 안타깝지만 이제 다른 물건과 같이 떠오르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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