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8 10:05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 영화를 진지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모든 것이 캐릭터 코메디로 흡수된다. 꿀밤을 맞아 마땅한 바보 덩치가 있고 개그에 휘말리지 않고 까칠한 답변을 날리는 사이보그가 있고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못하는 걸어다니는 나무가 있고 그 가운데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 백인 남자가 있다. 다른 모든 세계관은 이들의 바보짓을 위한 하나의 무대이다. 다른 행성이든, 그 행성의 생명체이든, 그 생명체들의 언어나 생활방식이든.
이 작품 전에 개봉했던 마블의 [앤드맨: 퀀텀매니아]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 제작사의 외계인 표현은 늘 틀에 박혀있다. "이족 보행을 하면서 영어를 쓰는" 외계인의 존재는 어떻게 꾸며지든 그 상상력의 자기중심적인 벽에 부딪힌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이 행성과 저 행성을 넘나들며 다른문명과 생태계와 조우하는 기회들은 전부 다 지구인의 틀에 박혀있다. 전신에 무슨 피부색을 칠해놓고 머리에 뭘 달아놓든 결국 지구인의 티가 난다. 이 영화는 심각할 정도로 지구적이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의 진행과정은 흥미롭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우주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지구로 소환당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최종적으로 들리는 곳은 "카운터 어스"라는 지구를 본딴 행성이다. 우주 다른 행성에서 바를 차리고, 술에 진탕 취하고, 미국 노래를 신나게 듣고, 얼빠진 농담을 하는 다른 백인들을 맞닥트려 패싸움을 하다가 이들이 결국 도착하는 곳이 유사 지구이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혹은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이 우주 유랑단이 결국 가는 곳이 지구와 닮은 곳이라는 것은 창작자의 한계를 목도하는 과정 같다. 영화의 배경을 다르게 꾸며서 외계인들도 출현시키고 밤하늘도 보여주곤 했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과학적 시선과 탐구적 정신으로 영화 배경을 꾸며야 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해외에 나가서도 김치찌개와 소주를 찾는 한국인'을 보는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우주라는 무한한 가능성 위에서도 고착된 자기 세계를 그대로 이식하는 그 고집은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그래서 영화는 미국 LA를 방문하면서도 김치찌개를 찾아 한인타운을 기어이 가고 마는 그런 한인 여행객처럼 기어이 지구를 가고 만다. 물론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바보들의 코메디 영화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보냐고. 코메디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발현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문화적 제국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주라는 빈 공간을 지구적인 무엇으로 마음껏 채우는 그 일련의 행위가 이 영화에 도무지 빠져들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의 걱정없고 아둔한 그 태도가, 뭐가 됐든 지구적으로 풀리겠지 하는 지구인 특유의 오만처럼 보여서 영화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우주에서도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 그 장면은 우주라는 공간조차도 음악이라는 지구적 문화의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소모하는 느낌이다. 이 때 '지구적'이라는 표현은 '미국적'이라는 표현과 일종의 동의어가 된다. 미국적인 것이 곧 지구적이고, 지구적인 것이 곧 우주적이라는 이 자신만만한 태도에 질릴 지경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미국적 코메디를 위한 소재로 소모된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보면서 제임스 건이라는 감독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귀엽고 깜찍한 무언가를 아주 마초적인 감성과 버무려서 둘 중 하나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그 상업적 능력이 영화적 재능의 전부라고 하기에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의 미국적 세계관이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 언어가 다르고 "흉측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카운터 어스의 주민들을 보면서 괜한 불안을 느낀다. 이런 묘사가 영어를 못하고 피부색과 이목구비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국적 코메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걱정을 제임스 건은 알고 있을까. 상관없을 것이다.
@ 2편에서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완전한 지구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난 뒤에도 3편의 쿠키에서 기어이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만나러 지구에 되돌아가는 스타로드를 보면서 진짜 어이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지구인으로서의 뿌리를 반드시 되찾고 말겠다는 그 지구적 순혈주의(게다가 또 남자 조상!)
2023.05.08 10:39
2023.05.08 11:06
https://www.youtube.com/watch?v=0zBghroJfCE
이번 영화에서 나온 동물실험은 주인공인 로켓의 개인적 서사이지 정치적 주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PC에 민감한 사람들도 별 말이 없을 것입니다) 동물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영화에서 아무 이유없이 새를 쳐죽이는 저런 묘사는 안할 거거든요. 아주 귀여운 것에 대한 학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즉 이미지의 고어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실질적인 내용은 현실 정치와는 무관할 것입니다.
2편에 비해 나아졌다는 평에는 공감하지만 그 모든 게 "지구적 자장"안에 들어가있어서 저는 아무 감흥을 못느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족보행 존재"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는 안좋은 의미로 꽤나 인상적입니다. 카운터 어스 사람들을 다 날려버리는 것도 애초에 스펙터클의 재료로 쓰이기 위해서였고 행성은 유사하게 꾸미되 거기 주민들은 인류와 "흉측하게" 꾸며놓으면 죽더라도 어떤 혐오감이나 질척거리는 드라마가 안생기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외모의 알리바이입니다.
2023.05.08 11:27
아아, 수어사이드 스쿼드 감독이기도 했군요. 어쩐지 인간(생명)을 거리낌 없이 대량으로 죽이고 사람 죽이는 농담을 아무렇게나 쓰는 감성이 익숙하더라니. 저는 카운터 어스의 초반 묘사가, 외계인-지구인의 우주 침공을 정반대로 묘사해 놓아서 그렇게 스팩타클에 학살 당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특히 방문한 집의 액자 묘사 등. 이제 와서는 그저 뮤직비디오 식 기묘함 만을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인가 싶고.) 마블 영화들 중 말이 안 통하는 언어가 가장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개인적으로 흉측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의인화 된 동물 머리를 가진 인간유사 이족보행 생물들의 세계구나 싶었죠. 박쥐 머리를 하고도 눈으로 보고 전부 비슷한 말을 한다는 게 매우 신경 쓰였지만... ([보잭 홀스맨] 세계보다 더 동물 특성이 완전히 지워져버린 세계.) 혹시 앤트맨 최신화도 보셨습니까? 저는 MCU 세계 어딜 가도 지구적 자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절망감을 먼저 맛보고 봐서 약간 그 타격에서 비껴나간 것 같습니다.
2023.05.08 11:33
네 앤트맨 최신화를 보고 어이를 상실했다가 이번 가오갤 3를 보고 어이를 한번 더 상실한 경우입니다... 우주에 대한 아이들의 미국적인 꿈과 환상을 지키는데 굳이 저까지 이렇게 투입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2023.05.08 12:11
저는 1편에서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던 이 감독 특유의 개그가 2에서는 좀 레드플래그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었어요. 이후에 터진 페도필리아 의심되는 각종 과거 발언들을 보니 역시 그렇구나 싶었고
그와 별개로 특유의 선곡센스도 그렇고 엔터테이닝한 영화를 만드는 재주는 확실히 인정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 3편 모두 1에 비해서 전체적인 완성도는 흠집 잡을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1은 다시봐도 어이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어요.) 또 막판에 감동 이끌어내는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뒷맛이 절대 나쁘지가 않단 말이에요 ㅋㅋ
2023.05.08 13:12
제임스 건의 엔터테인먼트 취향은 그의 네 작품을 보니 일관되게 나타는 것들이 있더군요. 고어 수준의 잔혹한 인체 훼손과 무책임한 살상 그리고 캐릭터 코메디인데 저는 이런 것들이 크게 먹히지 않더라구요. 약간 데드풀 같은 영화의 느낌입니다. 일반 히어로물에서 보기 힘든 고강도의 자극을 주면서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저도 1편은 재미있게 봤는데 그 작품의 성공 역시도 그 전까지 진지한 마블 세계관에 이입한 관객들이 많은 덕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작품을 즐겁게 보셨다니 그건 또 다행이군요. 어쩌면 제가 SF 장르 영화의 한 분기점이 되는 [블레이드 러너]를 최근에 봐서 그런지도 모르죠.
2023.05.08 15:59
Sonny님이 지적해주신 그런 부분들이 맘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2에서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 쪽으론 별 기대치가 없었고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친숙해진 캐릭터들의 마지막 여정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부분에서는 점수를 좋게 줄 수밖에 없더라구요.
2023.05.08 20:12
작별드라마로 즐기셨다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그 끔찍했던 2편보다는 더 낫더군요. 글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실험동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했고(눈 뜬 장님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PC 운운이 없더군요). 그리고 '남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조작 가능한 외계인'인 (아무리 봐도 동양 여성의 은유인....) 맨티스의 묘사가 훨씬 나아져서 전에는 의자에 앉아 고문받는 기분이었는데 훨씬 홀가분하더군요. 가오갤 말고 다른 작품에 나올 때도 기억 조작 기계로 대체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온갖 여성 혐오 개그도 다 받아냄) 정도에서는 벗어났어요. 액션에 일부러 체술도 많이 넣은 것 같고.
영화 자체의 태생적 한계에 동의합니다. 동물들의 진화를 가속시켰더니 결국 도달하는 곳은 이중보행 유사인간이란 것도 너무 뻔뻔하고요. 은발 여자아이들은 어떻습니까? 거대하고 뻔뻔한 뮤직비디오 묶음입니다 ㅋㅋ. (카운터 어스 행성 사람들을 어느 정도 구하나 싶었더니 그냥 다 날려버리더군요. 그 정도는 괜찮다는 것인지.) 대중적인 취향의 애인은 그 뻔뻔함에 편안함과 어처구니 없음을 느끼고 잘 수용하더군요. 그런게 세일즈 포인트인가 싶었습니다. 복고풍이라는 것도 이제 2010s도 끝나고 다음은 2020s일텐데, 그래서 가오갤 날리고 스타로드로 돌아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