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7 21:49
-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89분. 스포일러는 특별히 없요.
(주근깨!!!! 아... 죄송합니다. ㅠㅜ)
- 보기 드물게 코로나 판데믹이 진행 중인 현실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음성 인식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키미'로 억만장자 대열에 오르기 직전인 한 사업가 아저씨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시작하죠. 인터뷰 분위기로 봐선 알렉사나 시리 같은 건 가볍게 씹어 먹는 성능의 서비스인가 본데, 그 비결로 고객들의 음성 인식 실패 사례들을 사람이 직접 분석해서 수정하는 시스템을 드네요. 그리고 장면이 바뀌면 이제 진짜 주인공 '안젤라'가 등장합니다. 이 분은 방금 전에 사업가 아저씨가 말한 바로 그 음성 데이터 분석, 수정을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요. 벌이가 좋으신지 엄청 넓은 집에 혼자 살아요. 한쪽 벽 전면이 다 유리창인 걸 보면 별로 살고 싶은 집은 아니지만 뭐 암튼, 가만 보니 이 분은 공황 장애 같은 게 있는 모양입니다. 집의 구조를 활용해 맞은 편 건물 사람들을 관찰하다 어떻게 데이트 상대로까지 발전한 남자가 있는데, 자기가 먼저 연락해서 밖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는 문을 못 열어서 벌벌 떨다가 포기하거든요.
암튼 뭐, 앞으로 벌어질 일은 뻔하죠. 이 분에게 할당된 데이터 샘플에서 어떤 남자에게 공격당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성범죄인 것 같은데! 경찰에 신고하고 싶지만 회사에선 당연히 말리겠죠. 철저하게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했는데!! 당장 다음 주가 주식 상장인데!!!! 그래서 결국 안젤라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어떻게든 해 보기로 결심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조이 크라비츠쯤 되면 이렇게 집에만 처박혀 창가에 서 있기만 해도 애인이 생기고 그런단 말입니다?)
- 가만 생각해보면 소더버그 이 영감 좀 얄밉습니다? ㅋㅋ 언제부턴가 계속 이렇게 초저예산으로 만든, 야심도 없고 뭐 대단한 거 할 생각도 없다고 외치는 듯한 소재와 스토리의 영화들을 뚝딱 만들어 내놓고선 '나 정도 되니까 이런 가벼운 이야기도 돈 없이 이렇게 매끈하게 잘 만들지?' 라는 행적을 이어가는데요. 계속 그렇게 감탄하며 잘 보고 있지만 문득 '이젠 좀 각잡고 만들면 더 대단한 것도 만들 수 있다고 증명해 보시지?'라고 갈구고 싶은 기분이... ㅋㅋㅋㅋ
(살고 싶진 않지만 참으로 넓고 좋아 보이는 집에 이어 사용하는 장비들도... 대체 이 부의 근원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안 알려주더군요.)
- 암튼 뭐 이 영화도 그런 시리즈(?)들 중 한 편이고, 딱 그 정도의 완성도와 재미를 보장합니다.
런닝타임이 90분도 안 되는데 위에서 말한 '사건' 떡밥이 투하되기까지 대략 25분이 소요되구요. 그동안 키미의 일상을 보여주며 이 캐릭터를 이해시키고 상상을 하게 만들며 앞으로 펼칠 전개에 대한 밑밥을 까는데 정말 별 내용 없지만 안 지루합니다. 그만큼 리듬도 좋고 캐릭터도 흥미롭고 뭐... 잘 찍었으니까요? ㅋㅋ
그리고 안젤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사건이 전개되고 나면... 그것도 참 그렇습니다. 정말 별 일 안 일어나거든요. 거의 다 짐작할만한 일들만, 그것도 걍 군더더기 없이 툭툭 펼쳐지며 진행이 되는데 그게 그냥 깔끔하고 적절해서 재밌습니다. 앞서 말한 그 '25분' 동안 깔아 놓은 밑밥들이 우루루 달려나와서 착착 맞아떨어지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걸 보는 재미는 덤이구요.
(근데 참 어디 도망다니기 힘든 차림새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럼 저 머리는 셀프로 염색하고 자른 결과물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감탄을.)
- 좀 특별한 점이라면... 정말로 '요즘 세상'의 이슈들을 와다다다 때려 박고 스토리에 활용하는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 일상, AI 스피커와 범죄, IT 시대의 정보 취급 윤리, 여성에 대한 폭력, 그리고 격리되고 분절된 삶을 사는 요즘 세상에 더더욱 절실해지는 타인과의 연대와 대가 없이 베푸는 호의의 소중함 등등.
그래서 다 보고 나면 의외로 따뜻한 이야기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네요. ㅋㅋㅋ
(마스크 쓰고 후드를 올리면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합니다. 그거슨 어쌔신 크리드...)
- 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소더버그제 '심플 날렵 깔끔한 소품 장르물' 리스트에 목록이 하나 더 추가됐다. 뭐 이런 정도에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딱 그 정도 영화입니다.
그러니 그간 그 영화들 재밌으셨던 분들은 이것도 보시면 되구요. 그게 대체로 별로였던 분들은 스킵하시면 되고... 그렇습니다. ㅋㅋ
어쨌든 깔끔하게 잘 만든 소품 스릴러라는 건 분명하고 웨이브에선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니 관심 가시는 웨이브 유저님들은 한 번 틀어보셔도 좋을 듯.
저는 즐겁게 잘 봤습니다.
+ 우리의 주인공 안젤라는 대체로 작가님의 가호를 받아 운 좋게 사건을 따라갑니다만, 그래도 나름 현실성은 꾸준히 유지를 하거든요.
근데 클라이막스에선 그게 좀 어그러지는 느낌이 있는데... 뭐 전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그 정도는 해줘야 다 보고 나서 기분이 시원해지죠. 하하.
++ 이야기 만들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니 왜 FBI한테 그냥 전화를 안 하지?' 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꼭 FBI일 필요도 없잖아요? 일반 경찰로도 최소한 위기 탈출은 충분했을 텐데. 뭐 그 덕택에 나온 장면들은 훌륭했으니 용서합니다만. 어쨌든 답답했다구요!!! ㅋㅋㅋ
+++ 또 한 가지 쓸 데 없는 개인적 결론. 그러니 여러분 판데믹이든 뭐든 집안에만 있어도 좋으니 운동을 합시다. 튼튼하고 날렵해야 사람도 구하고 자기 목숨도 구하고 할 수 있는 거죠. 뭐 과하게 할 필요까진 없고 그냥 조이 크라비츠만큼만...?
++++ 그러니까 이 분이 제가 얼마 전에 다시 본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그 분 따님이자 레니 크라비츠의 딸이란 말이죠. 하하 세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지만 우리의 주말은 끝났읍니... (쿨럭;)
2023.05.08 01:12
2023.05.08 08:44
그래도 언제나 저엉말로 깔끔 매끈하고 컨셉 하나는 확실히 살리며 만들기 때문에 로튼 토마토 같은 데선 툭하면 90% 찍고... 그래서 더 얄밉습니다? ㅋㅋㅋ
뭐 본인이 은퇴 선언도 두어 번(?) 하고 그랬던 게 그런 거랑도 관계가 있지 않나 싶구요. 언제부턴가 젊을 때만한 작품이 안 나오긴 했었죠. 그래도 오락물 쪽으로도 '오션스' 시리즈 같은 건 꽤 크고 분명한 족적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즘의 심플 저렴 날렵한 스릴러 양산 감독도 거의 전례가 없는 독특한 케이스 같기도 하구요.
2023.05.08 16:01
오락물도 되게 다양하게 시도하죠. 격투기 선수 출신 지나 카라노가 나왔던 액션물 '헤이와이어'도 있었고 남성 스트립 댄서들이 나오는 '매직 마이크'도 있었고 정말 작품 예산 규모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섭렵한 것 같아요.
2023.05.08 20:41
아 매직 마이크도 이 양반이었습니까. 정말 그냥 다 만들었군요. ㅋㅋㅋㅋㅋ
2023.05.08 19:10
내가 이포스터를 분명 어디서 봤는데....하면서 읽었는데 다시보니 제목에 답이 있었군요.
티빙구독하면서 웨이브는 끊을까하다가 가족들 주말 드라마 감상용으로 살려두었는데 이거 봐야겠어요 ㅎㅎ
소더버그는 어떤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생각해요. 진짜 마블영화말고 다 만드는 분인듯.
젊었을 때는 어쩐지 섹스중독 예술영화감독 같았는데 말이에요.
2023.05.08 20:43
대단한 사람 맞죠. 다들 본인 스타일로 소화하긴 해도 자기가 건드리는 장르 특성은 그대로 살리면서 어쨌든 재미까지 확실히 뽑아내니까요. ㅋㅋ 말씀대로 분명 예술 감독 테크 타던 사람이 이렇게 변신해서 능력을 발휘하니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하구요. 세상은 넓고 괴물도 많습니다. ㅋㅋㅋ
2023.05.08 21:19
저도 이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깔끔쌈박했어요. 앞 부분의 심약함에 비하면 클라이막스 부분이 말씀대로 튀지만 저도 그럼에도 좋았습니다. 안젤라가 할 때는 확실하게 해서 과거의 트라우마까지 싹 정리하는 걸로!
2023.05.08 23:22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텐션유지가 되고 짧은 러닝타임동안 참 알차게 자알~봤다! 했는데 보고나서 바로 잊혀진 뭐 그런 킬링타임용으로 딱 좋은 소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소더버그 본인은 나름 각잡고 있는건데 이제 진짜 대단한 그런 작품들은 더이상 만들고 싶어도 안되는건가 싶기도 하구요. 예전에 비슷한 댓글을 어디서 달았던 것 같은데 미국 독립영화 역사에 영원히 남아있을 '섹스, 거짓말...' 같은 작품도 남겼고 전성기 때는 트래픽, 에린 브로코비치 같은 아카데미 스타일도 잘하고 오션스 시리즈 같이 스타배우 앙상블을 활용한 오락영화도 잘하고 체 게바라를 다룬 '체' 같이 별로 돈은 안되도 본인이 하고싶은 열정 프로젝트 같은 것도 맘대로 만드는 나름 독보적인 입지의 감독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평작~수작 정도로 꾸준히 다작하는데 존재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가장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싶었던 작품이 '로건 럭키'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