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1 18:12
제 사촌동생이 저희 집에 놀러옵니다. 정확히는 롯데월드를 가고 싶어합니다. 저는 오히려 에버랜드를 더 가고싶은데, 일단 동생은 롯데월드가 더 구미가 땡기나 봅니다. 여차하면 다 가버려도 되겠죠. 놀이동산 가본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마치 그 때가 제 인생의 전성기 같아요. 그 때 정말 재밌게 놀았었는데. 싸이월드에 가보니 그 때 찍은 사진들이 되게 많더라구요. 유학생 신분으로 와서 겜방에서 알바하던 동숙이도 생각이 납니다... 사장님이 지어준 이름이라는데, 본인은 되게 좋아하던 한국이름이었어요. 툭하면 연습장에 동숙, 숙숙, 숙숙숙숙숙 하고 한글을 적어놓았던...
별 수 없이 저희 집에서 사촌동생을 재워야 합니다. 그런데 집이라는 게 참 묘한게, 저는 사귀는 사람이 있을 때도 저희 집에 데리고 가진 않았거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럽고 누추해서... 뭔가 저의 가장 내밀한 내면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썸이 한번 박살난 적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먹고 자고 산다, 는 걸 보여주는 건데 야생동물이 자기 둥지를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어디까지나 저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집이 아무리 내성적인 공간이라 해도 저는 얄짤없이 제 사촌동생을 재워야 합니다. 매트리스는 1인용이고 장판은 고장나서 안쓰고 있는데 당장 추우면 어떡하죠. 옷도 산더미같이 널부러져있고...
사실 돈만 더 있었으면 일본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ㅠ_0 그래도 제가 순수하게 뭘 베풀 수 있는 존재라서 전 제 사촌동생이랑 노는 게 좋습니다. 저는 어릴 때 형이 없어서 약간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제 사촌동생은 하필 또 외동입니다. 어쩔 때는 외롭겠죠. 안그래도 이번에 좀 노는 형들이랑 어울리다가 헛바람 들어갔다면서 고모가 속상해했는데 저한테 "좋은 형"의 책임이 주어졌네요. 부담스럽습니다만 끽해야 일박이일이니... 지난 번에는 겨울왕국2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 땐 제가 좀 심란해서 제대로 놀아주질 못했어요. 이번엔 제가 딱히 힘을 안내도 놀이기구가 알아서 놀아주겠죠.
어디 가서 뭘 먹여야 할까요? 롯데월드에서 홍대는 너무 멉니다. 그런데 건대는 또 데리고 가고 싶지 않네요. 뭔가 그 한국적인 분위기가 싫습니다. 별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좀 "힙한 곳"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또 아웃백을 데리고 가긴 싫습니다. 그렇게 비싸진 않은데 예비고1 남학생이 오오 쩐다 하면서 감탄할만한 곳은 어디일까요. 역시 고기를 먹여야 합니까? 그렇다면 또 맛있는 고깃집은 어디가 있을 것이며... 그는 해산물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회를 안먹는 제가 매운탕이나 구운 생선을 먹을만한데는 또 어디 있을까요.
놀이동산 전과 후에는 뭘 할 것인가. 이것도 좀 고민입니다. 어딜 가도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어지간하면 본인 고향에는 없을만한 그런 곳을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영등포 스타리움 관은 어떨려나요. 그런데 이런 것도 참...놀 줄 모르는 서울 비토박이 인간으로서 갖는 약점이네요. 전 서울을 잘 모릅니다. 어딜 가도 "무슨 극장 가러 와봤던 곳" 이라는 생각이나 하죠 ㅋㅋ 음, 좀 크고 분위기 좋은 까페는 어떨까요. 서울의 추위에 깜짝 놀랄 사촌동생을 데리고 오갈 곳이 마땅치가 않네요.
아마 재미있게 놀고 난 다음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제가 꼰대같이 굴까봐 걱정입니다. 최대한 대답은 자제하고 "그래?" 와 "호오~" 같은 리액션만 해주는 편인데 그래도 이 놈은 저랑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기 엄빠는 잘 모르는 걸 저는 잘 안다고 생각하나봐요. 미안하지만 나도 롤 안해... 잘 몰라... 하기사 자기 엄빠한테 힙합전도사 할 일은 없으니까요. 작년 이맘때쯤 제가 "띵"이란 노래 쩌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니 신이 나서 설명해줬거든요. 그런데 제가 추천한 BB는 또 안듣습니다. 망할 놈... BB 노래 좋은데.
가끔씩은 제가 <보이 후드>에서 이썬 호크 역을 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죠. 그런데 이것도 참 편한 일입니다. 유사 아빠도 아니고 유사 삼촌 노릇이라니. 저야 아무 책임질 일 없이 하루 이틀 놀아주면 그만이지만 실질적으로 생계와 교육을 책임지는 엄빠에 대해서는 영 무심한 녀석이에요. 그래도 제가 어찌 감히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도 그랬던 것을. 그냥 이 내리사랑이 싸고 간편하게 먹힐 때 이 놈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고는 싶네요.
2020.01.11 18:27
2020.01.11 20:49
아무래도 그렇죠...? ㅋㅋㅋ
해산물 뷔페... 서울에서만 갈 수 있는 곳 있을까요
이 아이는 기우가 아니라서 계획이 없습니다 ㅋ
그리고 진학 문제나 인생 같은 걸 이야기하는데 저로서는 약간 정답을 제시하고 싶은 함정에 빠지기 쉽더군요. 뭐든지 존중해주고 싶지만...
2020.01.11 18:28
2020.01.11 20:49
근데 맥주도 파는데... 괜찮겠죠? 추천 감사합니다 일단 리스트에 올려놓았어요
2020.01.11 18:42
2020.01.11 20:50
성수동이라~ 한번 고려해볼게요! 코엑스는 도대체 뭘 먹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갈 때마다 그냥 헤매기만 합니다 ㅋㅋ
2020.01.12 00:51
코엑스는 인도음식 거부감 없으면 훔머스 가서 치킨커리 먹어도 괜찮아요
2020.01.11 18:57
나혼자 있는 집에 그게 누구든 와서 며칠 지낸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죠. 지금 계획하고 계신 것들 괜찮은 것 같은데요.
사촌동생이 오면 그 때 음식이든 놀러가는 곳이든 물어보시고 사촌 동생 취향에 맞춰주시면 좋을거 같아요.
2020.01.11 20:50
취향 물어보면 편의점 훈제 치킨을 말하는 놈입니다 ㅋㅋㅋ 제가 계획을 짜야해요 :)
2020.01.11 23:24
우리나라에 맛있는 치킨이 많거늘 하필 편의점 치킨을 좋아하는군요^^;;
그래도 이렇게 Sonny님이 많이 마음을 쓰시는걸 보니 사촌동생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사촌동생과 좋은 시간 보내실거에요^^
2020.01.11 23:17
2020.01.11 23:37
작년 5월에 데뷔한 드렁큰 타이거 소속사의 여자랩퍼입니다! 노래 부르는 게 정말 개성있어요
2020.01.12 05:13
2020.01.12 08:59
엣... 그런가요 가독성 좋다는 게 요즘은 제일 기쁩니다 ㅋ 감사합니다
2020.01.12 20:26
2020.01.13 22:58
흠 그런가요 어쩌면 제가 사촌동생을 만나면서 동심을 회복하는지도 모르죠 ㅎㅎ
2020.01.13 21:32
2020.01.13 23:31
롯데월드 노래를 불렀어요 개가 ㅋㅋ
어디에서 오는 놈인가요?
본인이 롯데월드를 선택했으니 롯데월드를 가면 되니 한가지 고민은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롯데월드가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버랜드는 기동성과 체력이 좋아야 해요, 요즘 날씨 생각하면 롯데월드죠.
원하는데로, 허락되는데로 놀이기구를 이용하면 되니까 시간은 잘가요.
고1이 되는 거면, 질보다는 양, 그중에 해산물 뷔페면 되겠네요.
계획이 다 있는 아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의견이 없는 아이면 그때 리더십을 보여주세요.
사촌형도 부모는 아니니 너무 책임감은 갖지말고, 같이 놀면 될것 같아요.
꼰대가 되는 것을 염려하지말고, 무엇을 하게되든 왜인지 설명가능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