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펑펑 울어버렸죠

2013.05.05 21:10

Koudelka 조회 수:5664

    예전의 저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많아서, 주변의 쿨하고 드라이한 족속들에게 '그 눈물 참 흔하기도 하지' 라는 비아냥도 숱하게 들어봤고, 적시에 귀하게 터져 나와 효과적이어야 할 눈물이 아무 값 없이 아무 때나 막 흘러나와 그냥 내 감정이 헤픈 증거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으로 고민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근 몇 년 사이 저는 철저하게 제 감정을 단속하고 마음을 숨기며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찔러야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 같다' 는 말 들으면 내심 기쁘고, 저를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선 '너 좀 강하고 건조해진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상황과 상태에서도 이젠 정작 울 지 몰라 쭈뼛거리는 스스로를 느끼며, 이게 그렇게 내가 원하던 냉철한 감정절제를 획득한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어젯밤엔 그냥 갑자기 펑펑 울어버렸죠. 특별히 그럴 일도 없었는데, 내 인생 남 인생 상관없이  인간으로 사는 삶이 너무 덧없이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고 짠하고 가엾어서요.  좁게는 자기연민에서 타인을 향한 주제넘은 동정심으로의 감정확대 라고 해도 반론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저 같이 매사에 감정적 에너지가 넘쳐 모든 신경이 야생마처럼 살아 펄떡거리던 인간이 이젠 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세상에 놀라울 일, 어느 것 하나 궁금한 일도 없이 잘도 살아간다... 그런 자신이 덤덤하게 익숙해지며 그냥 품위있고 점잖게 나이 먹어간다는 데 대한 안도감, 타인들이 나를 함부로 할 수 없고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근엄함을 훈련하며 별 일 없이 산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나름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아니면 이 늦은 봄이 너무 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어깨를 떨며 그냥 펑펑 울어버렸죠, 정말 몇 년만에.

 

   어제 그렇게 울다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니 몇 년의 시간이 금세 관통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득하고, 그래서 오늘은 달리지도 않고 몸을 쓰지 않으며... 그냥 새로 지은 밥에 따뜻한 국에 갓 부친 전에 정갈한 식사를 하고, 조용히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여 버린 뒤, 목욕을 갔다가 한동안 쉬고 있던 손발톱을 단장하고 돌아와 주말극을 보며 무상하게 앉아 있습니다. 언제 울었나 싶게 이젠 또 아무렇지도 않아요.

 

   운다는 건, 눈물이라는 건 이렇게 놀라운 자정 효과가 있는 거라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네요. 모두 편안한 일요일 저녁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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