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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향후 몇십년간은 절대 다시 안보겠다고 결심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어메리칸 허니]입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특별하고 고유한 것이라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때의 감흥을 흐트려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또 보겠지만, 그 때는 그 최초의 감동을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다시 보는 경험이 되겠지요. 제가 호주 워홀을 가있을 동안 그 불완과 설렘이 뒤엉킨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영화로 나올 수 있는지 너무 신기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잡지 파는 일을 직접 했던 사람들은 저보다 더한 기시감을 느꼈겠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고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앞이 보이지는 않고 함께 하는 시간은 그래도 즐겁고 두근대는 그런 시간을 영화로 접하면서 저는 그 시간을 다시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어떤 순간 영화는 기억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탱크]는 [어메리칸 허니]의 원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여자, 개차반 가족, 마음을 잡아끄는 다정한 남자, 그러면 안되지만 자꾸 끌리는 주인공, 시궁창 같은 세상, 그리고 주인공이 의지하는 유행가 혹은 흑인 음악들... 안드레아는 젊은 여자의 상실감과 어리석은 희망을 찍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찍은 [피쉬탱크]에 보다 본격적인 미국의 본토 힙합과 그 힙합에 휩쓸리며 열정과 불안을 뒤섞는 여러 사람들, 그리고 미국의 각 지역이 품고 있는 스산한 풍경들이 확장팩처럼 더해진 게 [어메리칸 허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꾼은 평생 하나의 이야기만 한다고 하는데 저는 안드레아 아놀드가 다시 한번 이런 상처받고 무모한 빈민 소녀의 이야기를 찍어주길 기대합니다. 그래야 저는 또 [어메리칸 허니]를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볼 수 있을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나중에 보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이 영화를 먼저 보고 [아메리칸 허니]를 봤다면 아메리칸 허니를 두번째 소녀 이야기로만 인식했겠죠. 제가 [아메리칸 허니]를 먼저 봤기에 그 작품을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완성된,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으로 인식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시간이 흘러서 [피쉬탱크]를 볼 수 있었기에 이 작품을 오히려 프리뷰처럼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매우 좋았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계급을 뛰어넘는 영화들이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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