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전시회를 다녀와서

2023.04.01 12:01

Sonny 조회 수:345


평소에 보고 싶었던 박생광 화백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박래연 화백과 박생광 화백 두 사람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한 전시회였는데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박생광 화백의 두 작품에 대해서만 좀 소회를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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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연 화백의 그림들을 보고 난 뒤 박생광 화백의 그림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림들을 실물로 접하니 다른 차원의 체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박생광 화백의 작품들 중 반복되는 테마인 학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의 정서상 신성하거나 고귀한 동물로 인식되는 학이 거의 불길할 정도로 기이하게 느껴지는 그림은 처음이었습니다. 박생광이 그린 학은 괴조같습니다. 굵고 뚜렷한 선들은 형체를 매우 분명하게 구분지으면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림 안에서 다른 십장생들은 그 선이나 색이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채워져있으면서 학의 존재감을 장식해주고 있었습니다. 학의 형태를 이루는 에너지가 위태로울 정도로 뿜어져나오는 듯 했습니다.

박생광의 다른 그림에서도 배경을 수놓는듯한 구름들은 반복됩니다. 저 구름들이 이미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역동적인 세계의 바탕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마치 불길위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프레임 안의 모든 것들은 저 꿈틀거리는 에너지 덩어리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

엄청나게 쨍한 색들을 지독한 채도로 채워넣은 이 채색의 부분에서 박생광 화백의 그림들은 이미 추상의 영역, 현실을 초탈한 영역에 들어가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그림에 "사실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림을 채우는 공간 곳곳은 시뻘겋거나 시퍼렇거나 싯누렇거나 새하얗거나 합니다.

특이한 건, 그가 칠한 색들은 진한 가운데에도 탁합니다. 밝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의도적인듯한 검은색 얼룩들과 어떤 빛의 반사도 끼어들지 않는 독단적인 색이 작품을 더욱 더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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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으로 배치된 눈과 과장된 입, 배경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호랑이의 형태는 그림 안에 서 이지러지는 에너지를 실감케합니다. 그 에너지는 호랑이라는 주제마저 무너트릴 태세입니다. 세 호랑이가 뒤엉키면서 발산하는 그 내부의 에너지는 상대를 해하고 승리를 움켜쥐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호랑이라는 자기 본연의 존재마저 흐트러트리며, 그 형태를 와해시켜가며 세계를 뒤덮습니다.

박생광은 존재를 이루는 것이 기존의 뼈대나 고유한 형태가 아니라 어떤 힘이라고 정의내리는 듯 합니다. 형태는 힘의 감옥입니다. 존재가 존재로서 약진할 때 그 선과 색의 선언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뿜어져나옵니다. 힘이 깃들 때 근육의 선이 분명해지고 더 굵어지듯 박생광의 그림 속 존재들은 "있음"의 상태를 훨씬 더 강력하고 커다란 움직임 자체로 바꿔놓습니다.


정말 대단한 그림들이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라는 건 역설적으로 이렇게나 이질적이고 낯설다는 걸 느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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