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00:16
- 이게 벌써 4년전 영화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한동안 영화 가뭄을 겪어서 그런지 그만큼 묵은 영화 같지 않아요. ㅋㅋ 암튼 장르는 코미디. 런닝타임 1시간 56분. 스포일러는 뭐... 많이 중요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진 참 잘 찍은 것 같아요 이거.)
- 먼저 1984년의 속초가 나와요. 겨울이고. 꽝꽝 언 호수에서 남자애들이 뭘 하고 있고. 월식 구경을 하고 어쩌고 하는데... 솔직히 그냥 사족 같습니다.
암튼 갸들이 다 자라서 40대입니다. 가정 꾸리고 애 다 키운 놈도 있고 덜 키운 놈도 있고 이제 결혼할 놈도 있고 그런 일 없는 놈도 있고. 갑부도 있고 그냥 잘 사는 놈도... 뭐뭐뭐. 암튼 이 중 가장 부자인 놈네 집에서 집들이 삼아 커플 모임을 하게 되고. 그러다 한 놈의 제안으로 '지금 이 시각부터 모임 파할 때까지 핸드폰으로 오는 문자, 전화, 파일 등등 전부 공개하기!'라는 무리수 게임을 시작하면서 각자의 비밀이 폭로되고 가정이 해체되고 나라가 무너지고... 뭐 이러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곧, 다 무너집니다. ㅋㅋㅋㅋㅋ)
- 다 적고 보니 이걸 왜 적었나 모르겠어요. 어차피 다들 아시잖아요? ㅋㅋㅋ 보신 분들은 당연히 아시고 안 본 사람들도 설정은 다 알죠.
그게 이 영화의 핵심 같습니다. 컨셉을 되게 잘 잡았어요. 심플하면서도 임팩트 있어서 한 두 줄짜리 소개만 읽어도 기억에 남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성(?)에 공감하며 관심을 가질만한 설정이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전개도 무궁무진하죠. 작가 입장에선 일단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엔 각본 쓰기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브레인 스토밍하듯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막 짜낸 후에 거기에 맞춰 캐릭터들 만들어내고... 물론 그걸 '잘' 짜맞춰 내는 건 이제 당연히 능력자의 영역이겠습니다만.
(김지수씨 연기도 좋고 비주얼도 아름다우신데, 얼굴 뵐 일이 너무 띄엄띄엄 있다는 느낌이네요.)
- 그래서 그 결과물은 썩 괜찮습니다. 이 아이디어에서 생각해낼만한 것들로 특별히 참신할 건 없지만, 그래도 써먹으면 재밌을 것 같은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그걸 사악하게 짓궂은 유머들로 잘 연결을 시켰어요. 핸드폰을 까는 등장 인물이 일곱명이나 되고 이들을 다 다른 성격, 다른 배경, 다른 상황의 인물들로 다채롭게 설정해 놔서 나름 다양한 상황들이 줄줄이 이어지니 지루하지도 않구요.
그리고 이런 실내극스런 이야기에 맞게 배우들도 참 잘 캐스팅을 해 놓았죠. 다들 이미지도 잘 맞고 연기도 참 잘 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보다보면 '저 양반들 즐기고 있다!!' 라는 느낌이 드는. 딱 그런 기운이 느껴져서 웃김과 별개로 그냥 보는 게 즐거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보면서 웃었던 장면들 중 꽤 많은 부분들은 배우들 파워로 웃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좌측부터 1980, 1976, 1971년생이 동갑내기 친구로 나옵니다. 좀 심한 것 같은데 영화에선 위화감이 없다는 게 함정.)
- 다만, 이게 좀 이상한 이야기인데요. 과연 감독은 이 영화를 잘 만들었나? 라고 생각을 해 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나오는 소동극이면 상황과 상황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느낌이라든가. 유머와 이야기의 리듬감이라든가...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은근히 덜컹거리는 느낌이 많습니다. 실컷 웃기다가 갑자기 아주 K-건전 드라마 갬성이 폭발하며 흐름을 깨는 부분들도 있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도 분명히 이야기가 늘어지는 장면들도 적지 않구요.
좀 수상해서 런닝타임을 확인해 보니 오리지널인 이탈리아판이나 다른 버전 중 하나인 프랑스판과 비교했을 때 한국판이 20여분이 더 길어요. 아마 이게 원흉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사실 전 이거 보기 전까진 송하윤이란 사람을 아예 몰랐는데요. 잘 하시더군요. 역시 역할에 맡게 잘 캐스팅되기도 했구요.)
그리고 이게 그냥 웃길 땐 재미나고 좋은데 중간중간 심각해질 때마다 좀 진부해집니다. 좋은 배우들이 안간힘을 써서 어떻게든 살려내긴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종종 티비 연속극의 감동 타임, 내지는 눈물 타임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덧붙여서 한국 버전으로의 번안도 그렇게 깔끔하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상황들이나 대사들이 뭔가 한국 사람들 이야기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 종종 들더라구요. 역시 전체적으론 그렇게 튀지 않는데, '종종'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ㅋㅋ
(이서진은 제겐 연기보단 예능 캐릭터로 더 기억되는 양반인데, 여기선 괜찮습니다. 기존 이미지 활용을 잘 한 듯.)
- 어쨌든 배우들은 모두 제 몫을 다 합니다. 대체로 본인들 이미지에 어울리는, 혹은 그런 기존 이미지를 활용해서 써먹는 캐릭터들로 아주 잘 캐스팅 되어 있구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윤경호나 송하윤 같은 배우들도 잘 했어요. 오히려 그 낮은 인지도 덕에 '원래 저런 느낌' 이란 생각이 안 들어서 더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이 둘은 이 이야기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결백한, 좀 피해자에 가까운 포지션들이어서 상대적으로 정직한(?) 연기들을 보여주는데 그게 역할에 잘 어울렸다는 느낌.
하지만 역시 제 사심 때문인지 전 염정아가 가장 좋았어요. ㅋㅋㅋ 전 이 분이 약간 어린애처럼 울먹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딱 그런 연기를 아주 실컷 볼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런 시간이었네요.
(내용상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이 두 분입니다. 조진웅-김지수 주인공처럼 시작해서 중반 이후론 내내 이 두 분이 거의 다 해먹어요.)
- 많은 분들이 하시는 얘기지만 결말은 좀... 그랬네요. 순간 제가 뭘 놓쳤나 싶어서 되감기를 했을 정도. ㅋㅋㅋ
뭐 이해는 합니다. 마지막에 모 캐릭터가 본인 입으로 영화의 주제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잖아요. 사람들에겐 누구나 비밀이 있고 또 사람은 누구나 생각보다 쉽게 상처 받으며 그런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핸드폰이란 너무 완벽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결국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그 비밀은 적당히 묻어두고 살아가는 게 인간적인 거다... 그런 얘긴데요. 그 메시지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겠으나 이 결말은 이야기상 그 난장판 덕에 그나마 일생의 위기에서 벗어난 모 캐릭터의 상황을 다시 시궁창으로 처박아 버리는 것이어서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사실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당하는 봉변은 거의 자업자득에 가까운 것들인데, 거기에서 거의 벗어나는 캐릭터를 그렇게 해 버리니 음. 뒷맛이 불쾌했어요. 그렇게 불쾌하게 만들면서 '그냥 이러고 사는 게 좋은 거야' 라고 말을 하니 도저히 공감이. ㅋㅋㅋㅋ
(설마설마 했었죠. 굳이 뭐 이럴 것까지 있었나... 싶었구요.)
- 대충 정리하겠습니다.
강력한 아이디어 하나와 적절하게 엮인 이야기, 그리고 적절하게 캐스팅된 좋은 배우들 덕에 충분히 재밌게 완성된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뭐 되게 완성도 높은 영화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좀 아닌 것 같았구요.
특히 잘 나가다가 독기를 다 빼 버리고 '좋은 게 좋은 거!'를 외치는 결말은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보는 내내 피식 낄낄 허허 거리며 즐겁게 봤으니 많이 나쁜 말은 하지 않겠어요. ㅋㅋ
다른 나라 버전들은 어떻게 바꿔놨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뭐 적어도 연이어서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보는 수고를 해가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진 않네요. 먼 훗날 언젠가 보는 걸로!!! 그리고 염정아 만세!!!! 입니다.
+ 듀나님 말씀대로 영화보단 연극이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연극으로 봤다면 뭔가 어색한 한국 현지화 패치도, 사실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게임 설정이나 전개도 다 그러려니 하며 보고 넘어갔겠죠.
++ 스포일러 피하려고 일부러 설명 안 하겠습니다만, '12살 연상' 이라는 극중의 어떤 설정과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 간의 괴리감이 영 괴상했는데요. 찾아보니 원래는 연하였군요. 배우의 애드립이었는데 너무 웃겨서 걍 그대로 넣었답니다. 근데... 그걸 그대로 넣을 거면 나중에 그런 장면(?)을 넣으면 안 되죠. ㅋㅋ
2022.11.17 10:40
2022.11.17 12:00
ㅋㅋㅋㅋ 이런 식으로 대충 아무 계획(?)이나 하나 잡으면 다음 거 고민할 수고가 덜어져서 좋더라구요. 제가 뭐 아는 게 많으면 트릴로지를 넘어 계속 가보겠으나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 걸로...
네 재밌죠. 보통 제가 뭘 보고 있으면 옆에서 조금 훔쳐보다 마는 동거인께서도 중간부터 엄청 신나게 보시더니 다음 날 처음부터 다시 보고 계시더라구요. 흥행 잘 될만 했고, 충분히 재밌는 영화였어요.
이서진은 정말 캐스팅과 활용의 승리였죠. 이게 그 양반 대표 이미지는 또 아닌데, 대표 이미지를 가져다가 잘 써먹은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배우도 살고 영화도 살아내고 윈윈. 빅토리.
결말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네요. 근데 보니깐 뭔가 애매한 구석이 많아서 인터뷰를 찾아보니 감독은 에필로그 전까지가 진짜, (한국) 각본가는 에필로그가 진짜라는 식으로 서로 다르게 생각하면서 만들었더라구요. 결국 관객들 맘대로! ㅋㅋ
아 그렇네요. 말씀 듣고 보니 김지수 음주 인터뷰 논란 뭐 이런 기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커리어에 간만에 찾아온 이런 좋은 기회를 왜... ㅠㅜ
2022.11.17 16:45
저는 프랑스 버전을 봤는데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2022.11.17 17:00
다른 나라 버전들 보면서 차이점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무려 18개국 이상으로 판권이 팔렸다니 그것도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ㅋㅋ 혹시 먼 훗날 다른 나라 버전을 보게 된다면 프랑스 버전 먼저 보겠습니다!
2022.11.17 21:30
제가 그때 베레니스 베조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2022.11.17 19:15
2022.11.17 20:21
네 영화 흐름대로 보면 그런 해석이 맞는데, 감독은 다르게 얘길 하더라구요. 근데 또 작가는 그거랑 다른 얘길 하니 뭐 그냥 진실은 각자 마음 속에... 인가 봅니다. ㅋㅋ
사실 이서진의 자연인 이미지는 정말로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걍 예능에서 보이는 선량 소탈한 이미지도 있고 뭔가 사생활은 안 그럴 것 같은 이미지도 있고...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가 선량 훈남인 척 하면서 사실은 여자 관계 지저분한 인간이니 결국엔 어떻게 보든 그 이미지들을 잘 써먹은 건 맞아 보이구요. 하하;
뭘 볼까 고민하다가 '타인'에 꽂힌 김에 기왕에 트릴로지로 가자! 하시는 걸 상상하니 은근히 공감도 가고 웃음도 나네요 ㅎㅎㅎ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극장에서도 빵빵 터지면서 즐겁게 봤고 나중에 VOD도 보고 블루레이 사서 코멘터리 다 챙겨듣고 그랬었죠. 지적하신 대로 중간 중간 톤의 조절이라던가 고르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제 생각에도 그래서 러닝타임이 길어진 것 같지만 재밌기만 하면 상관 없으니까요 ㅋㅋ 재미없으면 한시간 반짜리도 언제 끝나나 확인을 몇번 하게 만드는데 말이죠.
리메이크 판권이 엄청나게 팔려나갔더라구요. 저 휴대폰 게임이라는 설정 하나만 가져가서 자기나라에 맞춰 다양하게 각색하기가 딱 좋아서 그렇겠죠. 나중에 원작만 한 번 찾아봤는데 확실히 훨씬 타이트한 맛도 있고 괜찮았지만 둘만 비교해보면 저는 한국판에 팔이 안쪽으로 굽는 ㅋ 한국 상업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고 적당히 발만 담궈주는 선에서 장점만 살려서 잘 이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앙상블 출연진 연기만 감상해도 기본은 하는데 그 부분에서도 만족스러웠구요. 말씀대로 하이라이트는 염정아-유해진 커플이었죠. 조경호 배우는 처음 봤는데 여기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이후 여기저기 감초조연으로 섭외가 많아진 것 같더군요. 이서진은 저도 배우로서는 전혀 존재감을 못느꼈던 사람인데 여기서는 장점만 잘 뽑아먹을 수 있는 배역으로 제작진이 완벽하게 고른 것 같아요. 확실히 연기력도 기본은 있어야겠지만 어떤 배역을 고르느냐에 커리어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도 있음을 다시금 느꼈네요.
엔딩은 저는 약간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 그냥 이러고 사는 게 좋다기 보다는 만약 작중에서 저 게임을 통해 비밀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모른 채로 그냥 살아가게 되니 그만큼 현실은 지저분하고 찝찝한 것이다라는 그런 결말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담으로 김지수 씨가 이거 기자회견 때 술마시고 사고를 친 모양이더라구요. 늦게 도착해서 아직 술이 깨지도 않은 상태라 기자들한테 이상한 소리하고;;; 안그래도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던 분이라 원래 안좋던 이미지에 타격이 배로 갔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