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2 14:24
Aftersun, 2022
소피가 20년 전 11살 때 같이 살지 않는 아빠와 둘이 갔던 여름 휴가를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그때 찍었던 캠코더 영상이 이 회상의 바탕이 되어 도움을 주고요.
회상하는 성인인 소피는 영화에 순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잠깐씩 드문드문 등장하고 영화는 과거로 채워져 있어요. 아빠와 딸의 튀르퀴예 여행을 따라가며 전개됩니다.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차를 타고 계속 이동하는 여행은 아니고 휴양지 호텔 한 곳을 정해 그곳 풀장에서 살을 태우고 게임센터 같은 부대 시설에서 놀거나 근처 바다에서 수영하고 다이빙하며 보내는 일정입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성격의 내용이 포함됩니다.
오빠로 오해받는 젊은 아빠와 우울감을 정의하거나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시간에 대한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11살이라기에는 생각이나 표현이 성숙한 딸의 조합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보게 된 관객으로선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목인 애프터썬은 썬탠을 하면서 바르는 로션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로션을 아빠가 소피에게 발라주는 장면이 두 번은 나왔던 것 같아요. 아빠는 좋은 사람일까. 이 두 사람을 위협하는 다른 사건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아빠는 너무 이른 나이에 아빠가 되었을 뿐 딸에의 사랑과 책임이 충분한 좋은 사람이었어요. 부녀가 다 불순함 없는(?) 휴가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집니다. 그러면 영화가 말하고 싶어하는 건 뭘까. 소피의 20년 전 개인적 회상을 따라다닌 후 제 감상은 '충분치 않다'라는 것입니다. 친구집에 가서 친구의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 아 즐거웠겠구나 좋았겠구나 그런데 아빠와는 더이상 같이 살지 않으니 휴가 후의 이별이 안타깝구나...라고 느낄 때, 그것 뿐이라면. 감상자에게 돌려 주는 것은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더우기 저는 감독과 친구도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이런 설정입니다. 아빠는 영화 초반에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다가 중간에 스스로 떼어냅니다. 왜 다쳤는지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누구나 살다보면 다칠 수 있으니 다쳤겠지요. 이렇게 표현되어 버리면 너무나 (감독의)개인적인 추억이 되고 그냥 그런 일도 있겠지, 하게 될 뿐 관객이 영화와 함께할 때 이입의 여지가 없어지지 않는가 싶어요. 성인인 소피가 자신의 회상 사이사이에 그때를 성인의 시각으로 개입해서 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나았습니다. 아빠의 약함이나 갈등이 드러나 주니까요. 하지만 아빠는 성정체성 문제로 엄마와 헤어졌을까요. 모릅니다. 아빠는 우울증이 있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이 휴가 이후로 영영 만나지 못했고 아빠는 죽었을까요. 역시 알 수 없어요.
제가 언급하지 않은 아름다운 지점들도 있습니다. 부녀간의 따스한 공감의 언어들, 해변이나 수중에서 놀 때 그 시간의 특별함이나 태양 광선과 바다를 배경삼은 여름 냄새 같은 모든 풍광도 즐기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시간과 더불어 젊었던 아빠와의 좋거나 싫거나 아쉬웠지만 지금은 애틋해진 기억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는 몹시 마음에 다가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역시 부녀의 여행을 따라다닌 후 애달픈 마음이 들긴했습니다. 많이는 아니었지만요.
샬롯 웰스 감독의 첫 장편이라고 하는데 아주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상도 많이 받았고요.
딸 역의 프랭키 코리오 아빠 역의 폴 메스칼, 두 사람의 연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폴 씨는 오스카에 후보로 올랐다고 하네요.
2023.02.02 14:57
2023.02.02 15:12
그렇죠. 성인인 소피를 보면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 했어요. 항상 어둡고 울적한 이미지로 등장하더군요.
결국 무슨 일이 있었는데,라는 의문을 빼버리자 영화가 너무 개인적인 기록물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2023.02.02 15:05
2023.02.02 15:14
저야 인상 위주로 짧게 적었지만 영화 보신 후에 본문과 비교하시기 바랄게요. 울게 되신다면 감상이 궁금합니다.
2023.02.02 15:21
독립영화 기준으로도 굉장히 작고 간소한 규모의 작품인 것 같은데 당연히 관객들에게도 크게 알려지진 않았었죠. 그런데 여러 매체나 평론가들의 작년 탑 텐 리스트에 자주 이름이 보이더라구요. 저도 곧 보러 갈 예정이라 서문만 간략히 읽었습니다. 폴 메스칼은 '노멀 피플'이라는 미니 시리즈로 혜성같이 떠오른 아일랜드 배우인데 이번에 오스카 후보지명까지 되다니 놀랍네요.
2023.02.02 15:49
아빠 배우를 어디서 봤더라 하고 집에 와서 찾아 보니 그 드라마더군요. 저는 1회만 보고 중단했던 드라마였어요.
이 영화에서 연기는 참 좋았지만 그래도 오스카 후보지명까지 된 건 놀랍습니다.
2023.02.02 18:51
여백을 남겨두고 관객들의 상상이나 공감을 유도하는 스타일의 영화인 건가요. 이런 스타일도 잘 만들면 좋긴 한데 저처럼 불평 불만 많은 관객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ㅋㅋ 게다가 아버지랑 그런 아름다운 추억도 거의 없는 인생이라 일단 미뤄두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2023.02.02 21:05
그런 것 같습니다. 빈 틈이 많아 보는 사람이 채워 넣거나 자신만의 추억으로 메워 넣거나... 그게 잘 되면 아주 좋아할 수 있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의문이 남는 쪽이지만요.
2023.02.02 22:29
아버지의 세 가지 행동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1. 아버지가 길을 건너는데 노란색 큰 버스가 나타나서 아버지의 모습이 한동안 보이지 않습니다.
2. 숙소 난간 위에 위태롭게 한참 서 있는 아버지
3. 밤의 해변에서 바다 속으로 혼자 걸어들어가는 아버지
기대가 컸던 작품인데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작가이자 감독의 마음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2023.02.03 10:25
이 장면들은 성인이 된 소피가 되살려낸 기억이거나 관객이 모르는 어떤 이후의 일로 소피의 기억에 덧칠된 기억일 듯하지만 확실하진 않네요. 여튼 아버지 이미지에 불안정한 뒷면을 보여 주는 장면들이었습니다.
2023.02.04 09:10
어제 필름클럽에 올라온 김혜리 기자의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들었습니다.
제가 위에 충분하지 못한 정보에 대한 불만을 썼는데 그런 '알 수 없음'이 영화에선 필요한 것이었어요. 아빠가 하고 있는 깁스 예에서, 이건 아빠의 불안정한 일상을 말해 주는 역할도 할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을 보여 준 것이란 점에서 생각해 보니 기억이란 건 곳곳에 구멍이 나 있고 이유 없이 눈에 들어오고 어떤 것은 빠져 있기도 하니까요. 의도한 불친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억 자체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억을 다루고 영화적으로 그것을 고민하여 잘 풀어냈다는 점이 평론가들의 극호감을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저는 우연과 설명없음에서 개인적인 기록물 같다고 느꼈지만 모두에게 통할 수 있는 나아간 지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제가 부녀의 여행을 어떤 사건의 구조로 받아들이고 기승전결을 기대한 접근이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영화를 충분히 이해 못 한 변명이 있다면 저에게 이 영화를 이모저모 다시 생각해 볼,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킬 개인적인 터치가 이 영화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마음먹게 되는, 단초가 되는, 작은 인연이 되는 장면이.
어떤 이에게는 20년 전의 음악이나 퀸의 노래가 그런 단초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젊은 아빠의 애처로운 노력이 어떤 이에게는 가족의 여름 휴가가 그런 단초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렇지 못했지만요. 처음 만나 별 느낌 없었던 사람이 나중에 특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도 나중에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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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하는 의문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아빠가 왜 그런지, 소피는 뭘 나중에야 깨달았는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공항에서 바이바이한 아빠랑 다시는 못보았다고 믿습니다. 아빠가 불치병이 있었을 수도 있고,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수도 있고, 그냥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지만, 결국 성인이 된 소피의 마음에 큰 공백을 남겨주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