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02:39
- 1998년작이네요. 런닝타임은 85분. 장르는 뭐 대략 홍콩 범죄물이라고 해 두고요. 스포일러는 안 적겠습니다.
(포스터는 둘이 꽤 근사하게 나왔습니다만. 포스터에 보이는 이런 관계(?)가 전혀 아니라는 거.)
- 과도하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나레이션으로 한참 배경 설정을 하며 시작합니다. 일단 배경은 홍콩이 아닌 마카오구요. 간단히 말해서 두 조직이 아웅다웅하면서 긴장 관계인 나와바리가 있는데. 여기에 더 큰 물고기 하나가 나타나서 구역 평정을 노린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은 양조위 형사님이구요. 둘 중 한 조직과 붙어 먹는 대놓고 부정 부패 경찰인데, 결국 그 큰 물고기의 음모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됩니다. 덧붙여서 그렇게 양조위에게 함정을 파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유청운이 맡았고... 에... 뭐 그렇습니다.
(우리 잘 생긴 양조위님이 나오시긴 합니다만 맡은 캐릭터가...)
(조폭에게 뒷돈 받고 빠샤! 빠샤!! 하고 위험 요소 제거해주는 성실한 부패 경찰입니다. ㅋㅋ 그냥 나쁜 놈. 사연 같은 거 없음!)
- 사실은 두기봉 때문에 본 영홥니다. 감독은 아니고 프로듀서로 올라 있긴 하지만 두기봉 아저씨 전적을 보면 뭐라도 이름 얹어 놓은 영화들엔 어느 정도 연출 지분도 잡아 먹는 경우가 흔해서 혹시나... 하는 기대로 봤죠. 근데 뭐 실제로 어쨌는지는 제가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냥 영화 얘기만 해야겠는데...
일단 그렇게 말끔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것부터 얘기해야겠군요. 저 무성의한 도입부 요약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ㅋㅋ 정보가 툭툭 튀어나오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계속해서 이런저런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그게 뭔 의민진 모르겠지만 되게 과장되고 정신 사납게 거칠어서 영화가 저렴해 보여요. 양조위는 멋짐을 논하기엔 캐릭터가 너무 쓰레기 인간이고 유청운은 아무 말도 없이 폼만 잡고 있어서 안 멋져요. 이게 뭐에요 저는 이거 왜 보는 거에요.... 그러다가요.
(폼을 잡는데 자꾸 얼굴을 이렇게 잡아서 말입니다. 이게 그나마 잘 나온 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충 런닝타임 절반쯤 되는 시점의 어느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문득 재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보통의 홍콩 느와르 같은 게 아니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머리를 굴리는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였던 거죠. 어느 순간 초반의 그 산만한 장면들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좀 오바였던 장면들이 알고 보면 오바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암튼 그래서 결국엔 다 이유가 있고 말이 되는 이야기였던 것이고...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렇게 양조위와 유청운의 머리 싸움 대결로 흘러가요.
(그리고 모든 일의 배후엔 이런 어르신이 도사리고 계시구요.
그리고 그 머리 싸움이 끝나면 이제 당연히도 홍콩 범죄물!! 답게 액션이 펼쳐지는데요. 이 부분도 나름 괜찮습니다. 원래는 나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듯 개싸움 모드로 가다가 클라이막스의 1 vs 1 대결이 되면 홍콩 느와르식 무한 탄창 장렬 비장 총싸움이 벌어지는데요. 이 때 쌩뚱맞게 모 헐리웃 영화를 연상시키는 거울 액션이 펼쳐지는데 나름 괜찮습니다. 거기까지 보여진 영화 내용과도 어울리구요.
또 마지막의 살짝 허망한 듯한 마무리도 영화 초반에 쌓아 놓은 시궁창스런 분위기랑 잘 어울려요. 그렇게 괜찮게 마무리 되긴 하는데...
(한국 영화에 K-조폭 st.이 있다면 홍콩 영화에는 삼합회 st.이 있죠. 그 와중에 두기봉 단골 임설씨 반갑!!!)
- 어쨌든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많이 거칠거칠합니다. 어느 정도는 의도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만든 사람 역량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별 복잡할 것도 없는 전반부가 그렇게 따라가기 힘든 건 그냥 이야기가 산만하게 풀려나가서이고. 몇몇 장면들의 명백한 오버 액션들은 다 보고 나서도 그냥 이해불능 오버액션으로 남구요. 또 막판에 밝혀지는 '큰 그림'도 사실 그래요. 이렇게 악당이 머리 굴려서 누구 하나 맘대로 조종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결국 엄밀히 따졌을 때 빌런이 정말로 천재라기 보단 그냥 운이 되게 좋구나...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그냥 낚여서 '와!' 하고 보고 끝내면 괜찮은데 따지고 들면 구멍이 많아요.
(나중에 큰 반전을 준비해주는 분입니다만. 다 알고 생각해봐도 역시 뭔가 앞뒤가 안 맞으시구요. ㅋㅋ)
- 대충 마무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초반은 징글징글 부패 타락한 범죄자 형사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는 척 하구요.
중반은 두 남자의 치열한 두뇌 싸움과 약간의 몸싸움으로 엎치락 뒤치락 전개되구요.
종반은 나름 성심성의껏 연출된 화려한 액션 후에 꿈과 희망리스한 분위기로 턱. 하고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세 파트가 사실 서로 잘 안 맞아요. ㅋㅋㅋ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니 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칭찬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초반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성의도 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추천하기 가장 좋은 대상인 양조위 러버님들 입장에선 이 분이 정말 안 멋진 캐릭터로 나와서 그게 좀... 그렇군요.
걍 홍콩 영화 아주 좋아하는/했던 분들만 보세요. 그게 가장 무난한 추천사(?)인 것 같습니다.
(양조위라면 이런 비주얼에 개차반 캐릭터까지도 사랑하실 수 있다면! 보세요. ㅋㅋㅋㅋ)
2022.12.20 10:06
2022.12.20 11:25
아무래도 국내에 (덜 유명한 영화들) vod 수입되는 걸 보면 무슨 영화제나 행사에서 상영된 작품들 위주라서 말씀하신 그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양조위가 직접 골랐다니 좀 놀랍네요. 흔치 않은 진짜 그냥 악당 캐릭터를 연기한 경우라 그랬던 걸까요. ㅋㅋ
아 역시 본체는 두기봉이었군요. 사실 초중반까진 긴가민가하다가 막판의 그 거울 액션씬을 보고 '이건 두기봉이 찍었거나 최소한 시켜놓고 옆에서 잔소리라도 했을 거야!'했거든요. 어림짐작이 맞아들어가니 신이 납니다. 하하.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좀 쌩뚱맞고 말도 안 되는 장면이었는데, 연출을 극한까지 폼나게 밀어 붙이니 그냥 그 자체로 멋지더라구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비주얼에다가 '페이스 오프'의 캐릭터 관계를 결합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두 남자의 관계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세워져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와 맥락을 생각하면 잘 만든 장면이라고 생각했구요.
'신탐'은 두기봉에 관심도 없던 그 당시에 재밌게 보고선 잊고 있었다가 아주 뒤늦게 두기봉에 꽂힌 후 다시 보고 싶은데... 라고 생각만 하고 있어요. ㅋㅋ 몇 년 전에 티비 시리즈로 나왔던데 그건 안 보고 싶고. 검색해보니 '시네폭스'라는 첨 들어보는 서비스에서 천원에 볼 수 있긴 하네요. 암튼 봤습니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봤어요!
+ 듀게 검색 기능이 망한 것 같더라구요. 영화 잡담 쓰면서 가끔 예전에 쓴 글을 찾아볼 때가 있는데 듀게 검색으로 안 나와서 내용 억지로 떠올려가며 구글 검색으로 찾고 그럽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본문보다 훨씬 유익한 댓글 감사드려요!!
의심하신 바대로 사실상 두기봉 연출작으로 받아 들여지는 작품이에요. 두기봉과 유가휘는 밀키웨이 이미지를 설립한 이후 자기들 작품을 만드는 것 말고도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했는데, [암화]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유달지도 그렇게 데뷔했지요. 그런데 [캘리포니아 / The Odd One Dies / 兩個只能活一個](번역하면 '둘 중 하나만 산다'일까요)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데뷔작을 내놓은 이후 곧바로 [암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촬영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유가휘가 계속 각본을 뜯어 고치더니 결국 유달지는 다섯 장면 연출하고 물러났고 나머지는 다 두기봉이 연출했다고 하더라고요. 적어도 두기봉과 위가휘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어요. 정작 유달지의 입장은 전해진 바 없고요. 유달지는 [암화] 이후에도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비상돌연]이라는 임달화랑 유청운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어 호평 받았습니다만, 그 뒤로는 밀키웨이와 작업한 적은 없는 모양인데... 사정을 알 길은 없지만 아무래도 깔끔한 이별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만들죠.
아무튼 워낙 오래 전에 봐서 딱히 기억 나는 장면이 많지는 않은데 역시 마지막의 그 대놓고 명장면을 노린 대결 만큼은 지금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거울도 거울이지만 환영을 담은 거울이 연달아 터져 나가면서 새하얀 빛이 쏟아지는 게 어쩔 수 없이 '시네마!'하게 되기도 하고요. 로이배티 님 한창 두기봉 영화 몰아서 보실 때 [매드 디텍티브 / Mad Detective / 神探]도 보셨던가요? (게시판 검색 기능이 좀 이상한지 "두기봉"으로 검색해도 로이배티 님 글이 네 개밖에 나오지 않아요!) 그 영화가 틀림없이 모든 면에서 [암화]보다 훨씬 원숙하고 훌륭한 영화이고 클라이맥스 연출도 그렇지만... 왜, 쿠엔틴 타란티노가 '폴 토머스 앤더슨이 [There Will Be Blood]로 한층 더 뛰어난 감독이 된 건 아는데 그래도 난 [부기 나이츠]의 멋부림이 좋아!'라고 말했던 것처럼, [암화] 클라이맥스의 그 지나친 화려함도 마냥 '한 수 아래'만으로 치부하진 못하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