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1 13:06
- 2014년작입니다. 1시간 38분. 장르는 제목을 보시면... ㅋㅋ 스포일러는 없을 거구요.
('매드맥스가 시체들의 새벽을 만나다'라는 카피가 참으로 정확합니다.)
- 그냥 다짜고짜 '매드맥스' 스타일로 중무장한 남자들이 차고 밖으로 뛰쳐 나가 좀비들을 상대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마다 다 다른 게 좀비들이니만큼 여기 애들 특징을 말하자면 대체로 무난한 가운데 입에서 초록색 김을 뿜어요. 그 외엔 그냥 멀쩡한 평범 좀비들이고... 암튼 그러다가 장면이 바뀌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만. 아, 사실 본격적이진 않아요. 주요 등장 인물들의 하루 전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며 시작하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이야기는 두 가지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차고에 갇혔던 남자들이 장비를 수급하고, 파워업한 매드맥스풍 차를 몰고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좀비 습격에선 살아 남았는데 그 순간 들이닥친 수상한 군인들과 미친 과학자에게 붙들려 영문을 모르고 생체 실험을 당하는 여자 얘기요. 전자의 생존자들 중 하나가 후자 주인공의 오빠이기 때문에 이 두 이야기는 클라이막스 즈음에서 만나요.
(무시무시한 황야의 무법자들!!!!)
(...이 아니라 주인공들입니다. ㅋㅋㅋ)
- 놀라운 건 이 영화의 좀비 아포칼립스는 고작 하루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전날 밤에 하늘에서 갑작스레 예고 없는 유성우가 콰콰콰 쏟아지구요. 다음 날 일어나니 이 모양인 거에요. 사실 그래서 개연성은 많이 떨어집니다. 고작 하루 내지는 한 나절 치곤 세상이 너무 한 방에 맛이 갔고 또 우리 생존자님들 준비가 이미 너무 철저해서 종종 어색합니다. 뭐 그냥 돈 없이 만든 영화라 '대충 눈 감아 달라!'는 거, 이해 못 할 건 아닙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2014년에 나온 영화에서 사람들이 아무도 컴퓨터, 핸드폰을 안 쓰는 건 좀 심했죠. 티비 조차 안 나옵니다. ㅋㅋㅋ
좀비 번식 방법도 좀 독특합니다. 당연히 물리면 감염되는데, 애초에 그냥 갑작스레 좀비가 된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건 설정 떡밥으로 나중에 다 (대충) 풀리구요. 물론 납득이 가진 않습니다만. 애초에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만든 영화라... 전형적인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에 집중해주세요' 스타일의 가난한 영화인 게죠.
(어떻게 하루만에 이렇게 장비 풀셋을 맞추냐... 같은 데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지는 겁니다!)
- 사실 전 좀비물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제가 올리는 영화 글들 보면서 눈치 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맨날 호러/스릴러만 보는데 그 중에 좀비 영환 거의 없죠. ㅋㅋ 그냥 뭔가 좀 물렸습니다. 아주 초창기엔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너무 많이 나온다 싶었고, 그러면서 오만가지 가능한 소재들이 광속으로 소진되었죠. 하다 못해 좀비 청춘 로맨스물까지 나왔잖아요. 게다가 그냥 이 좀비라는 것들 자체가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에요. 무섭지는 않고 걍 불쾌하기만 하달까. 그래서 이 영화도 볼까 말까 하다가 그냥 포스터가 괜찮아 보여서 봤는데... 음. 의외로 재밌습니다. 즐겁게 봤어요.
(개인적으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이리 지저분하고 멋 없는 놈들을 좋아하시는지 의문입니다.)
- 그러니까 대충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원제는 걍 'Wyrmwood' 이고 부제인 '분노의 좀비 도로'는 한국판 번역제 만든 사람이 갖다 붙인 건데, 그게 아주아주 적절해요. 그러니까 '매드맥스'의 좀비 버전을 만든다는 게 최우선입니다. 영화 국적도 호주이니 뭐 매드맥스 보유국의 권리인 걸로? ㅋㅋ
그래서 등장 인물들은 내내 '매드맥스'에서 보던 차림새를 하고서 '매드맥스'에 나올 법한 모양으로 꾸민 개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거의 모든 사건이 도로와 차 안, 차 앞에서 벌어집니다. 심지어 붙들려서 실험 당하는 여주인공도 그 실험실이 트럭 짐칸이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자동차 연료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구요.
(좀비라면 샷건!! 더블 배럴!!!)
그렇게 '매드맥스' 풍의 분위기를 열심히 깔아 놓고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대충 액션 위주로 흘러갑니다. 좀비, 군대, 자동차, 연료. 이렇게 소재를 깔아 놓고 그 안에서 최대한 재미난 액션 상황을 뽑아내는 거죠. 그리고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부분입니다. 의외로 그 액션들이 괜찮아요. 매번 반복 되는 느낌 안 들게 상황도 정성껏 꾸며내는 편이고, 또 쌈박질 장면들의 '타격감'이 꽤 좋습니다. 퍽!!! 팍!!!! 콰직!! 하는 느낌들이 잘 살아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런 액션들을 엮어내야할 줄거리와 캐릭터는 뭐랄까... 일단 되게 전형적입니다. 정말 흔하고 평범한 캐릭터들에 유니버설하게 보편적으로 먹힐 사연들(가족을 잃음, 가족을 찾아야 함, 친구들 원수 갚아야 함 등등)을 깔아 놓고 그냥 줄거리가 있는 척을 하는데요. 그게 대체로 무난하게들 괜찮아서 흠 잡을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클라이막스 즈음에 가면 나름 비장한 기분도 느껴지고 주인공들 응원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ㅋㅋ
(우리 여주인공님도 간지 나고 좋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캐릭터에요. 왜인지는 스포일러라 비밀!)
- 의외로 개그 센스도 괜찮은 영홥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대체로 진지한 척 하면서 개그 요소는 액션 연출, 캐릭터들의 드립 한 두 마디 정도로 머물지만 그게 상당히 타이밍도 잘 잡아 들어가 있고 딱히 민망할 정도로 오버하거나, 막 '이런 타이밍에 이런 센스 있는 대사 어때?'라는 식으로 마블 작가님들 제발 좀 과시하는 느낌도 없어서 그냥 소소하게 웃기고 괜찮았습니다. 또 그런 드립들로 캐릭터 성격들을 드러내는 것도 잘 먹혀서 막판에 죽어나가는 캐릭터들은 짠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애초에 기대치가 아주 얄팍하고 허랑방탕한 좀비 액션물... 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면도 있겠지만요. '생각보다' 드라마도 있네? 뭐 이 정도라고 생각하심 되겠습니다.
(미친 과학자님도 은근히 미친 놈 느낌 적절히 나면서 불쾌하고 웃기고 괜찮았습니다.)
- 그래서 결론적으로.
걍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 좋은 좀비 아포칼립스 액션물입니다. 당연히 거대한 스펙터클 같은 건 기대하면 안 되겠죠? ㅋㅋ 소박한 분장과 스케일 때문에 가끔은 뉴질랜드 시절 피터 잭슨 생각도 나고 그렇더군요.
막 몰입할만한 스토리라든가 무게감 있는 메시지라든가 그런 건 전혀 없지만요. 소탈하게 호쾌한 액션들과 나름 짭짤하게 괜찮은 개그. 그리고 의외로(기대치 설정!!) 신선한 몇몇 설정들 때문에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좀비물에 큰 거부감 없고 B급 호러/액션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세요. 이 정도면 킬링 타임용으론 나무라기 힘들만큼 괜찮은 오락물이었습니다.
+ 7년의 세월이 흘러 2021년, 바로 작년에 속편이 나왔습니다. 나올만 하긴 해요. 이야기 자체는 깔끔하게 끝나지만 세계관(?) 같은 부분들이 뭐가 제대로 설명된 게 별로 없거든요. 속편 제목은 '웜우드: 아포칼립스'인데 한국 수입제는 '웜우드: 좀비 아포칼립스'가 되었네요. 근데 불행히도 이 속편은 왓챠에는 없어요. 대신 티빙에 있어서 오늘 저는 이걸로 이어 달리는 걸로... ㅋㅋㅋ
++ 하지만 전 역시 좀비는 별로에요.
대체 이런 지저분한 애들이 왜 그리 인기가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