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7 23:31
마음이 뒤숭숭하여 몇 자 적고 있습니다.
얘를 집에 들이기 전엔 동물을 특별히 귀여워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개나 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낯선 생명체라고 생각되어 근처에 있어도 쓰다듬거나 안는 것을 꺼려했어요. 안았을 때 그 호흡하는 몸이 닿는 게 어색해서요.
어린 개가 집에 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없이 시작해서 너무나 잘 해 주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이것저것 찾아보고 책도 봤지만 좋은 습관을 들일 타이밍은 놓친 게 많았죠. 종일 빈 집에 혼자 두던 기간도 길었고 산책을 시키지 않은 날도 부지기수.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개념이 부족했어요. 피곤하다는 핑게로요. 생각하면 미안함 뿐입니다.
개를 들인 이후 차츰차츰 가족 중에 제가 주로 돌보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저도 늙고 나도 늙어갔네요. 개의 몸에는 부스럼 같은 것도 생기고 너무나 총기 있던 눈빛도 흐려졌습니다. 근육이 빠졌고 최근에는 일어나 걸을 때 비틀거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기운이 저조하다 다시 활기를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기운없는 정도가 전과 달랐습니다.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는 겁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비장에 종양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두면 갑자기 어찌 될지 모른다 해서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끝나고 먼 발치에서 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한시름 놨지만 이후 회복이 잘 되어야 겠지요.
몇 년 전부터 개가 시력, 청력이 안 좋아졌다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 간혹 개가 없는 시간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친족이 세상을 떠서 이별한 경험은 있는데 그 경험과 좀 다른 것 같아요. 나보다 어린 이를 먼저 보내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개가 떠나고 나면 항상 있던 자리와 수시로 내 옆으로 와 신호를 보내던 그 공간과 시간의 습관들이 어떤 타격을 받을지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어떤 식으로 견뎌낼지 상상이 안 됩니다. 흔히 먼저 보낸 개가 나중에 집사를 기다리다 맞이하러 나온다는 마음 달래는 말을 하는데 저는 죽음 이후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럴 때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이 위무가 됩니다. 토마스, 너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게 될 거다, 네가 떠났다고 지나치게 상심하진 않을게, 그러는 건 내가 마찬가지로 맞이할 그 일과 관계없는 양, 거리가 먼 사람인 양 구는 것이니까. 이런 생각. 같은 과정을 겪을 거라는 생각만 고통스런 마음에 도움을 주더라고요. 실제로 그 일이 닥쳤을 때도 도움이 될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나 함께하는 동안 할 수 있는 데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2022.10.28 00:15
2022.10.28 09:40
닉네임은 그렇게 지은 거 맞아요. 한글, 영문 이미 다 사용되고 있어서 짓다 보니 지금 닉네임이 되었지만요.
아침에 병원에서 동영상을 보내주었네요. 별일없이 밤을 잘 보낸 거 같아요. 말씀 감사합니다.
2022.10.28 06:58
2022.10.28 09:44
사람과 마찬가지였어요. 나이들면 여기저기 탈이 생기고. 다만 말을 못하니 집사의 세심한 관찰이 중요한데 제가 종괴가 커질 때까지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아요.
병원서 보낸 동영상을 보니 마음이 많이 좋아지네요. 멍이 가족들은 다 비슷할 거예요. 말씀 감사합니다.
2022.10.28 08:22
정말 많이 정을 주면서 가족처럼 보살폈던 토마스라서 마음에 슬픔이 크시겠어요.
그래도 수술을 받았으니까 회복이 잘되서 thoma님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2.10.28 09:47
늙고 아픈 걸 지켜보려니 그렇습니다. 편안한 여생이 되도록 잘 보살펴야겠습니다.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2022.10.28 10:22
제가 좀 개랑 인연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는데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늘 한 마리씩 키우기도 했고 심지어 군생활도 군견반... ㅋㅋ
그래서 제가 결혼하고 독립한 후로는 반려 동물은 못 키우겠더라구요.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 너무 힘들어서. ㅠㅜ
암튼 이렇게 사랑 받고 있으니 토마스는 행복할 겁니다. 그건 늙고 아픈 거랑 별개잖아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마지막까지 토마스 많이 아껴주시길!!
2022.10.28 11:38
군생활까지 그러시다니 인연이 깊네요. 아이들 다 크면 로이배티 님도 다시 들이시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을..
같이 있을 때 충분히 잘 해 주라는 건 만고의 진리 같아요. 늙고 아프고 이별하는 걸 어떻게 해 볼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감사합니다.
2022.10.28 12:11
2022.10.28 14:51
맞아요.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야 행복을 인지하게 생겨먹었나봐요.
개는 자기 형편이나 요구나 감정들을 구구절절 말로 설명은 못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하는 인간에게 의탁하고 변덕없이 인간을 대해주기 때문에 애틋한 마음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2022.10.28 12:42
2022.10.28 15:10
확실히 개를 키우게 되면서 인간 바깥의 다른 동물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보다 오래 함께하셨나봐요. 그리고 여러 멍이를 경험하셨군요. 다가오는 일을 대하시는 마음의 폭도 넓으실 것 같아요. 저는 오직 '우리 둘이' 보낸 시간이 많고 나이든 개를 바라보는 경험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움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을 잘 챙기고 토마스도 잘 챙기겠습니다. 감사해요.
2022.10.28 13:07
나도 곧 그렇게 될거다. 저한테도 위로가 되네요. 신이 있다면 그가 만든 가장 자상한 배려가 아닐까 싶네요. 누구나 언젠간 떠난다는 것.
2022.10.28 15:14
최선의 공평함인 거 같고 때로는 너그러움을 때로는 위로를 주고 그럽니다.
지금 이 순간 힘내고 싶어요. 가봄 님도 주말 잘 보내시길.
2022.10.28 18:01
2022.10.28 20:04
잠시 떨어져 있어 보니 하루를 보내며 하는 일이나 계획에 언제나 개가 상수로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 난감합니다. 저에게 개가 있는 자리를 오가며 힐끗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ㅎ 하루하루 쌓인 시간이 무섭네요.
2022.10.28 23:22
아픈 노묘를 봉양 중이라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에요. 한번씩 상태가 확 나빠서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가, 병원에서 처치 후에 약을 먹이는 걸로 조절이 되었다가, 또 다른 데가 아팠다가 약으로 조절해가는 식으로 먹이는 약이 하나씩 늘어가는 경험을 19년 이래로 4년째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피하수액 2번 약 8번이 정해진 하루 일과입니다. 저희 어르신은 뇌, 심장, 신장, 방광, 대장, 치아에 문제가 조금씩 있어요. 비록 약빨로 버티는 골골 노년이지만 본인 아니 본묘는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남은 시간에 대한 기대를 하는 중입니다.
토마스도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어 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처음 큰 수술 하게 되면 안쓰러운 마음이 크지요. 그렇지만 그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관계가 더욱 밀접하고 돈독해지는 경험이 소중하답니다.
2022.10.29 10:49
참으로 수고 많으십니다. 그 노고를 알아서 본묘도 행복해 하는 것이겠지요. 해삼너구리 님 글을 보니 저도 수발을 잘 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게 됩니다.
집마다 나이든 동물들이 약빨과 사랑빨로 불편을 다스려 가면서 아무쪼록 오래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엔 그러셨을지 몰라도 지금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는 걸 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애정을 주며 키우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토마스도 그런 진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 것 같구요. 그런데 thoma님 닉네임도 설마 토마스에서 따오신 건가요?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회복이 잘되서 서로 함께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