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 22:41
'나의 해방일지'를 달렸습니다. 회당 60분이 넘는 16부작입니다!
앞서 본 '사랑의 이해' 보다 재미있게 봤어요. 연출도 배우들 연기도 나았고, 같은 작가의 '나의 아저씨'에 비해 여러모로 보기가 편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느꼈던 점인 거 같은데 대사가 독백은 물론이고 대화까지도 아포리즘의 연속이 많아서, 정말? 대화를 저렇게 한다고? 싶은 장면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 대사들 중엔 생뚱맞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인물들이 삼사십 년 살며 깨달은 그들 나름 인생의 진리를 대화 중에 준비한 듯이 딱딱 꺼내놓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버버하다가 나중에 일기장에나 쓸 수 있을 법한 경구들요. 굵은 사건이 끌어가는 드라마가 아니고 각각의 인물들 개성을 설계한 다음 대사로 재미를 주는 드라마라 이렇게 되는 것도 할 수 없지 않겠냐며 봤어요. 하여튼 경구 성격의 대사가 많아서 조금 조절을 했었다면 나았지 않을까 과하다 싶은 부분은 있었어요.
드라마를 보기 전에 여기 나오는 대사로 들어서 알고 있던 '나를 추앙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선 깜짝 놀랐습니다. 뭐시라? 웃기려는 거 아니고? 저 말부터 들이대며 관계가 시작되더군요. 웃음을 터트리지 않는 구 씨의 무딤의 경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어요. 실제로 들으면 귀를 의심하거나 웃음이 나오지 않겠나 말이죠.
드라마의 앞부분에 주로 제기되는 문제는 집이 경기도라 연애도 힘들고 직장에서도 자의타의가 섞여 따돌려지곤 한다는 것으로,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사람들 계급 문제라도 얘기할 기세였는데 뒤로 가면서 흐지부지됩니다. 그냥 강북 어느 동네 허름한 빌라로 편입한 걸로 타협. 제가 보기에는 삼남매가 외모 멀쩡하고 직장 멀쩡한데 강남으로 출퇴근하며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서 기가 죽어 지냈나 싶지 말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요. 경기도의 촌이라 해도 땅과 집과 수공업장이지만 벌이가 되는 싱크창고까지 소유하고 있고 아버지가 아직 정정하게 돈을 버는 집안이잖습니까. 회식문화에 술먹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긴 하겠지만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걸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처럼 다루니 공감이 덜 되더라고요. 이웃에 사는 둘째의 친구, 초등학교 방과후 축구 코치이며 전직 카페 주인이야말로 답이 없어 보이는데 이 사람은 출퇴근 자체를 하지 않으니 비교할 일도 없고 그럼 문제도 없음이 됩니다. 아예 열외로 양념으로 나오고요... 한드의 모든 주인공 친구들은 언제쯤 대접이 좋아질지.
일종의 성장 드라마 같았네요.
염미정은 구 씨가 실제로 하는 일을 보면 저렇게 도닦는 얘기 나누며 곁을 내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술값 받으러 백화점 판매원에게 가서 욕하는 장면 같은 거 실제로 본다면요. '추앙'이란 말은 감이 잘 안 잡혀서 '존중'으로 써 보자면, 존중의 감정은 존중하고자 마음먹어 생기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네요. 어떤 인물을 알아서 또는 알수록 존중하게 되기는 힘들고, 염미정 대사처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고 아묻따 존중하겠다고 덤벼서 가능해진 경지 같은 것. 그렇다면 그 인간의 실상이 크게 문제되진 않겠습니다. 그러고자 할 때도 상대가 어느정도 싹수는 있어야 되겠고 염미정이 이번엔 사람을 잘 본 걸로.ㅎ
둘째인 염창희의 성장 드라마로 보이기도 합니다. 말도 많고 철도 없더니 제일 크는 거 같더군요.
말없고 카리스마 있는데 절망한 듯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의 정체는 이 우주에 결국 건달밖에 없는가, 라고 설정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어요.(저는 처음에 코피가 나길래 불치병으로 미리 세상을 등지고 숨었나 헛다리를 짚었네요...) 다른 직업이나 설정 생각을 더 해보려다 말았습니다. 작가들이 해 주시길.
몇 년 새 본 한드 중엔 꽤 만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대사도 좀 있었고 끝에 억지 결말 보여 주지 않고 깔끔하게 매듭지은 것도 괜찮았습니다.
중심 배역 중엔 손석구와 이민기는 알고 김지원과 이엘은 처음 보았어요. 김지원도 괜찮았고 이민기는 이전에 보여줬던 자기식 연기를 합니다. 손석구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보고 두 번째로 봤는데 연기 잘 하네요. 대사의 감도 좋고 못 생겨 보일수록 나아 보이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네요. 앞으로가 기대 됩니다.
끝까지 봐서 후련합니다.
2023.12.29 22:52
2023.12.29 22:58
좀 마음가는 대로 마이웨이로 살아보겠다는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압구정, 청담동에 부자들이 사나욤... 한동*같은 이들이 우글거리면 너무 싫겠습니다. 껍데기는 세련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구설수가 있나요. 역시 알수록 존중이 힘드네요...
2023.12.30 00:14
김지원 비주얼을 좋아해서 사람들 반응도 좋길래 한 번 볼까... 하다가 그 '추앙' 대사 얘기 듣고 포기했던 드라맙니다. ㅋㅋㅋ 제가 워낙 그런 '명대사 퍼레이드'류의 작품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눈 앞에서 실물 김지원이 그렇게 말하면 비웃거나 할 생각 할 틈도 없이 덥썩 '알겠습니다!' 할 것 같기도 하구요. 비주얼이 설득력이자 개연성이랄까요(...)
2023.12.30 10:11
명대사 퍼레이드 맞아요.ㅋ 작가가 평소 수첩에 적어둔 몇 년치 지혜의 말씀을 다 풀어놓은 느낌?
오 잘 알려진 연기자인가요. 미소짓는데 이영애 느낌도 나고 저의 어린시절 얼굴도 보이고(솔직하게 적지만 죄송하네요.ㅋㅋ) 분위기랑 연기가 다 괜찮던데요.
2023.12.30 09:10
그 삼남매에서 다 제 모습이 보여서 재미있게 봤어요. ㅋㅋㅋ
가끔 미친 짓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건 저뿐인가요.;; 물론 그걸 옆집에 가서 추앙 발언으로 실행에 옮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요.
저는 일종의 자해 행동으로 봤거든요. ㅎㅎ 폭식이라든가 충동구매처럼 흔하고 가벼운 자해였는데 , 그 남자 출신이 그런 줄은 시작할 땐 몰랐을 거고 그 다음은 창작물에 흔한 사랑 판타지고요. 말씀대로 남자 잘 본 건 맞는데 셋째 하는 짓을 보면 이번엔 그냥 운이 좋았지 싶습니다.
말 잘 듣는 막내, 묵묵히 일하는 착한 사람으로 사는 스트레스를 이 사람은 이런 자해로 푸는갑네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인상깊게 본 건 전체 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 집안 두 세대가 갈등 일으키는 밥상머리 장면이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퇴근길에 시달리다 들어온 성인 자녀를, 어머니가 빨리 밥상앞에 앉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장면이었죠. 마흔이 다 된 자녀인데 옷부터 갈아입을 것이냐 밥부터 먹을 것이냐 판단할 주체로 존중해주질 않습니다.
둘 다 이해가 가죠. 이 어머니는 그 나이에도 다섯 식구 밥상을 차려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합니다. 밥상으로 주제를 축소해도 착착 와서 밥을 먹어야 상 치우고 그날 일이 끝나 누울 테고요. 이 어머니는 아마 과로사했을 겁니다.
딸의 입장에선 집까지 끌고 들어온 바깥 스트레스가 털리기도 전에 사실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닌데 밥 타령이 짜증났을 겁니다. 옷 벗고 손 씻을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데 어머니는 인상부터 씁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비슷한 갈등을 밥상머리에서 계속 일으키죠.
삼남매의 경기도 타령이 그래서 경기도 주민이 아닌데 실감났습니다.
이 가족의 평화는 물리적인 해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요.
경기도고 강남역이고간에 이 셋은 기성세대로부터 분리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지역, 공간으로 은유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중의 어머니는 참...아니 어머니보다 새어머니 캐릭터가 더 안됐습니다.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소품용 로봇 같기도 하고요.
2023.12.30 09:11
토마님 써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2024년에도 부탁드립니다. ㅎㅎ
2023.12.30 11:03
밥상머리 장면 말씀은 참 동감입니다. 따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같이 사니 그냥 따로 살기만 해도 많은 부분이 해결이 될 텐데. 두 세대가 다 이해는 되니까요.
어머니는 막판에 퇴근도 휴일도 없다고 퍼붓고는 바로 그렇게 되어버리고...남편 눈치는 왜 그렇게도 보던지. 자식들 가슴에 두고두고 남겠지만 그리 살 일은 아니겠죠. 예전 농사짓는 집 어머니들 삶과 다를 바가 없더군요.
시간이 흐른 다음 세대가 분리되고 나서 구 씨가 찾아간 그 집은 쇠락의 느낌이 났습니다. 주인도 늙고 시간의 때로 잘 돌보아지지 않은 집이 썰렁하여 기운이 다해가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찬가지로 강북 빌라라는 공간에서 남매들도 기가 빠진 느낌, 남루해진 느낌이 들었고요. 보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져 그럴 것이겠으나 새 공간으로 이식되어 아직 허약하다거나 이젠 이 남매들이 평범해졌다는... 이런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라면 이걸 느끼게 한 연출자든 작가의 힘이든 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님 글도 읽고 싶습니다만...ㅠㅜ(왜 우냐)
2023.12.30 12:38
저도 로이배티님처럼 나를 추앙하라는 대사에 시청을 중단했어요. 그 전에도 김지원의 끝없는 혼잣말에 더 봐야 하나 계속 고민했었지만요.
예전에 같은 작가가 쓴 또 오해영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다가 말았었거든요.
또 오해영에서는 주인공이 '나는 내가 참 애틋해요'라고 했었던 것 같네요. 으악.
뭐랄까.. 끝없는 자기 연민이 좀 지겹고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달까요. 1절만 하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 경기도 노른자 흰자 타령도 이해가 잘 안되었던 것이, 셋 다 괜찮은 회사 다니지 않았나요? 그 정도면 삼남매가 서울에서 적당한 집 월세나 전세로 구해서 살면 될 것을.. 현실에서는 중소기업 다니면서 혼자 자취하는 사람도 널렸습니다.. 이름만 서울이지 경기도나 다름없이 먼 곳도 많고요. 그래도 대부분 '출퇴근 너무 힘들다, 빨리 돈 벌어서 이사가야겠다' 정도지 매일 '계란 흰자 동네에서 태어난 인생' 같은 생각은 안 할 거란 말이죠...
택시비로 유추해보면 서울 근교인 듯 한데 신도시 개발로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네요. ㅎㅎ
헛소리는 이쯤할게요.
암튼, 그 추앙하라는 대사는 표현 자체도 그렇지만 구씨를 갑자기 좋아하게 된 과정이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제가 뭘 놓친 게 있었던 걸까요?
반말 찍찍거리는 지저분한 알코올 중독자를 갑자기 왜.. 좀 무서울 것 같은데.. '추앙해요' 이후에는 안 봤는데 구씨의 과거는 더 심했다면서요? 호빠 선수... ㄷㄷ
저는 아무래도 이 작가와는 감성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다들 명작이라고 하는 나의 아저씨는 시작도 안 했네요.
2023.12.30 13:46
적어 주신 부분들이 다 좀 무리수 맞아요. 구 씨와는 추앙을 결정하고 시작한 관계라 과정이랄 게 없는 거 같고, 한 반 년을 옆에서 일하는 거랑 술푸는 거 관찰하니 자기랑 비슷하게 느껴졌나 보죠. 세상 싫고 인간 싫고 그래도 살긴 살아야 하고 ㅎㅎ 내가 아는 추앙 맞나 사전 찾아 보기도 했습니다. 근데 작중에서도 구 씨가 혼자 있을 때 검색해 보더라고요.ㅋ 아마도 작가가 서로 기 좀 살려 줍시다, 계약연애합시다... 같은 이런저런 표현을 고민하다가 저 단어를 쓴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런 표현 보다 충격적으로 오그라들지만 낡진 않았네요. 사람들한테 저게 뭐야 지탄도 받으니 관심도 끌고 말이죠. ㅋㅋ
'나의 아저씨'는 저도 싫어하는 쪽인데 이 드라마는 말씀하신 부분들 모르는 척하면서 볼만했어요. 근데 굳이 그러면서 시간 투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는 김지원이 마이웨이로 흑화되더라도 싫은 건 싫다는 자세는 괜찮았어요.
2023.12.30 21:28
이 드라마에 대한 숱한 풍문을 주워들었었는데 지금 말씀해주시는 게 정말 신음이 나옵니다... ㅋㅋㅋㅋ
노른자 흰자 타령을 디테일하게 풀어주는 걸 지금 처음 듣는데 진짜 짜증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분 장난치나요??? 자기연민도 정도껏 해야지 진짜 ㅋㅋ
2023.12.30 21:36
'나를 추앙해요'라는 대사부터 해서 백화점 여자직원을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 주면서 외상값 받아내는 구씨의 건달스러움 때문에 숱한 호평에도 도저히 볼 생각이 안들었던 작품입니다ㅠ 솔직히 저런 폭력적인 캐릭터를 굳이 설정한거나, 사람들이 그런 걸 좋아하는 게 폭력에 대한 어떤 로망같은 게 있다고 느꼈어요. 절대 자신한테는 안뻗칠거라는 가정 하에 스크린 밖에서 잘생기고 훤칠한 남성의 폭력을 호러영화 보듯이 즐기는 느낌? 뭐 취향이겠지만... 전혀 동의가 안가더군요...
재미있게 보셨다는 작품에 자꾸 토다는 댓글만 달게 되네요. 어쨌든 감흥을 챙기셨다니 다행입니다!
2023.12.30 22:27
저는 이 드라마에 '나를 추앙해요'라는 대사가 나온다는 것 이외엔 아는 거 하나도 없이 봤는데 Sonny 님은 꽤 줍줍해 들으셨네요.ㅎㅎ 저도 보기 전에 저런 내용들을 들었다면 비슷한 반응을 했을 것 같아요.
흰자노른자 비유 참 부적절하죠. 남쪽 지방 사람들 욕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같은 수도권에서 흰자노른자가 웬 말인가, 노른자에는 콜레스테롤도 많은데... 기름기 덜한 흰자가 나을 수 있다고...ㅋ
구 씨 정체가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니고(병도 클리셰이긴 하지만) 건달이라는 것이 드러난 순간 으이그 또야 소리가 절로 나왔죠. 짜증이 나는 겁니다. 드라마가 가지는 상상의 한계랄지 그 구태의연함이랄지, 상상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니 한국 사람들 사는 모습이 이렇게 좁고 똑같아서 새로운 거 찾기가 힘드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려먹었으면 달리 찾을 때 된 거 아닌가 하고.
본문에는 존중(추앙)을 결심하고 시작한 관계라 구 씨의 실상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고 썼는데 실상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지속될 관계가 아닐 거란 생각도 했습니다. 나하고 만날 때 보이는 상대의 모습만 인정하겠다는 것이 진공 상태의 유리공 속에서의 만남도 아니고, 가능하지는 않겠죠. 그냥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만남이 아닌가 싶었어요. 뭐 드라마 끝엔 구 씨가 바뀐다고 생각할 여지를 주긴 해요. 적다 생각해 보니 어떻게 보면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추앙하면서 실상을 눈감아주는 동안 스스로 환골탈태하게 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ㅋㅋ 음...이 드라마 생각은 이쯤 하고 싶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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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압구정하고 청담동 인근을 가서도 느꼈지만, 준수도권에서 살다가 서울로 왔음에도 눈이 갈수록 높아지는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구씨 역할의 손석구는 이때 범죄도시2와 맞물려 스타가 되었지요. 다만... 얼마 전 가짜연기 구설수도 그렇고, 라이징하던 이전 강한나, 다른 배우와 연극관람도중 비매너 행위를 혼자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게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