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책임은 대립한다

2022.11.01 11:35

Sonny 조회 수:804

장례식을 치를 때 상주는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오는 사람들 맞이해야하고 장례식 절차가 잘 지켜지는지 산정한대로 금액은 잘 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끌면서 식을 잘 마무리해야합니다. 하물며 일반 시민들이 가장 비통해하는 친지나 다른 주변인들의 장례식에서조차 누군가는 슬퍼하면서도 할 일을 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슬픔을 공식적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것조차도 하나의 일이 됩니다. 누군가는 그 슬픔을 일로 처리하는 책임을 지고 나눕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슬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감상에 빠지는 것은 책임자의 부작위를 합리화하는 태도와 같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그 개인적인 감상을 자신의 업무에 대한 단서로, 혹은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경계심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나치게 감상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마치 슬퍼하는 것으로 할 일은 다 하고 있다는 듯이요.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책임자들은 이렇게 슬퍼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https://m.mk.co.kr/news/society/view/2022/10/968371/


서울시는 지난 10월 30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를 용산구 애도기간으로 지정하고 모든 행사와 축제를 전면 취소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입니다. 벌써부터 몇몇 소상공인들은 공문으로 내려온 "영업 자제"의 내용을 밝히며 분개하고 있더군요. 축제나 공연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같은 결정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어제 어떤 분은 어머니가 다니는 지자체 문화강의가 다 끊겨서 강사님들은 돈을 못벌고 어머니도 갈 데가 없어진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쓰기도 했습니다. 이 국가적 참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길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라져버린 셈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추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모의 범위는 개인이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할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떤 유족도 그런 비상식적인 추모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누구도 원치않는 강도의 추모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 슬픔 속에서도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상에는 보통때처럼 누리던 작은 축제나 공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슬픔의 철학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슬픔이라는 것은 개인의 모든 기쁨과 일상적 행위들을 마비시키고 하루종일 울거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가운데 그 슬픔과 애도의 감상을 함께 갖고 가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도 유족들은 친지나 지인들을 만나면 웃고 떠들면서 슬픔을 쉬기도 합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다른 시민의 참사를 슬퍼한다는 건 누군가의 생업을 중지시키면서까지 전력으로 집중해야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슬픔에 빠졌다가 서서히 빠져나오면서 일상의 작은 부분으로 결정화시키는 작업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윤석열의 이번 방침은 오히려 시민들을 더 슬픔에 매몰시키고, 그 도가 심해서 어떤 사람들은 슬퍼하는데 지장을 받는 정도의 결정입니다. 애도의 적정선을 전혀 모르는 정치적 아마츄어, 혹은 인간성이 결여된 처사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https://m.yna.co.kr/view/AKR20221031148300001?input=tw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31일 서면 브리핑에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야 할 국가애도기간,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할 일을 하는 사람이지 어떤 사건에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할 일을 멈춰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치인이 애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경우 이 사태에 책임을 지는 건 진상은 어떻게 규명되고 있고 어떤 식으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 대통령으로서 입장을 표명하고 다른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안한다는 것은 그냥 슬프다고 자기 일을 때려치우는 처사입니다. 


https://v.daum.net/v/20221031110039940


그러나 대통령실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우발적 사고였다고 보고, 책임론보다는 후속지원에 집중하자는 분위기다. 한발 더 나아가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호·경비 수요 증가가 결국 현장 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야권 인사의 비판론 등에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이런 검찰식 태도가 피로합니다. 너무나 명확하게 슬퍼는 하겠으나 책임은 지지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 아무리 억지스러운 비난이라도 이렇게 "엄정대응"같은 단어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 안됩니다. 이럴 때일 수록 야당과 여당이 협치해서 후속조치에 힘쓰겠다는 그런 정치적 능력을 발휘할 생각은 없나요?

https://www.yna.co.kr/view/AKR20221101001851111?input=tw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31일(현지시간)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정례 기자회견에서 "불행히도 이번 사고로 이란인 5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핼러윈)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841869

오하이오가 지역구인 브래드 웬스트럽 공화당 하원의원은 3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 가족 모두는 조카딸인 앤 마리 기스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며 "그는 신이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이었다. 우리는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밝혔다. 

이제 이 사건은 세계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나라망신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각 국가의 국민들은 책임감있게 보호하지 못한 정부로서 입장을 표명하고 외교적인 대응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취임 5개월 째에 윤석열 정부는 벌써 몇번째나 이런 파국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내와 국외 모두에게 그 어떤 인정도 수긍도 받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지탄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사람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급진적인 개선이 필요할 거라고 절감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제대로 슬퍼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절차를 밟아나가는 정치인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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