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책 잡담

2024.02.27 12:41

thoma 조회 수:310

1. 존 스타인벡 [통조림공장 골목] 

시간은 1940년대 중반, 통조림공장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캘리포니아 연안 바닷가 동네가 배경입니다. 부랑자들인 맥 패거리, 성매매업소, 중국인 이민자의 잡화상, 그리고 생물학자 닥의 연구소 겸 집 등등이 이 동네를 이루고 있어요. 생물학자 제외하고 앞에 열거한 저 하층민들의 경우에 우리가 아는 실제의, 밑바닥 인생의 비참함을 리얼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존 스타인벡이라는 작가의 의도로 그려진 그의 필터를 거친 이들의 모습입니다.


낙천적이고 건강한 시야로 가치전복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높이 인정받는 미덕을 소유한 때문이라는, 뒤집어 보기를 해 봅니다. 동네의 유일한 지성인 닥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거든요. 

'나한테는 늘 이상해 보였어. 우리가 존경하는 미덕들, 즉 친절이나 관용, 개방성, 정직성, 이해와 공감 같은 것들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실패에 따르는 것들이야. 우리가 혐오하는 특징들, 날카로움, 탐욕, 집착, 비열,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성공의 특징이들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앞의 자질을 존중하면서도 뒤의 결과물을 사랑한단 말이야.'  

작가는 성공한 상류 계층이 가진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우리가 존경하는 미덕들을 사실은 하층민들이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을 모두 함께 확인하기 위해 '통조림공장 골목'이라는 공간을 만든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 공간에는 맥 패거리가 공상적 사회주의 집단처럼 살고 있고요, 성매매업소도 비슷하여 여기 운영주가 현명하고 너그럽게 종업원들을 끌고 가고 있는 걸로 그려져 있네요. 또한 생물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무슨 이야기든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닥이 나머지 주민들의,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내는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어요. 이 바닷가 마을은 자본주의의 욕망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제각각의 욕망이 없을 수는 없고, 그들만의 교환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거창한 명분 없이도 사바사바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맥 패거리가 우연히 얻은 개를 돌아가며 돌보고 '오후에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고, 소화를 시키고, 생각을 하고, 이따금 입맛을 다시며 주전자의 술을 마셨다.' 이런 대목을 읽으면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만듭니다. 존 스타인벡은 우리가 존경하는 미덕들을 짓밟거나, 인생을 망쳐서 돈을 버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굴러가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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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즈무라 미나에 [어머니의 유산] 

[본격소설]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는 작가의 소설입니다. [본격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뼈대를 가져와서 일본 현대를 배경으로 다시 쓰기한 소설이었고 재미있게 읽었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신문소설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하여 쓴 작품으로 소설 속에 나오는 표현을 옮겨 말하면  주인공은 자신을 '신문소설의 사생아'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긴 사건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어머니의 죽음, 남편의 외도라는 두 가지 사건이 1부에서 다 펼쳐지고 그 후처리의 과정, 정신적 수습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 2부에 정리됩니다. 소제목이 붙여진 짧은 글로 계속 연결 된다거나 앞서 한 이야기가 보충되며 반복된다거나 무엇보다 중심 사건의 통속성이라는 점이 신문 연재소설의 느낌을 주고 있었어요. 과거에 신문 연재소설을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어릴 때 최인호, 한수산 같은 소설가의 연재 소설을 몰래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왜 몰래냐면 그게 성애 장면도 있고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형식만이 아니라 중심 사건 비롯하여 이야기의 면에서 신문소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삼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이 일본에서 1897년 연재되기 시작했던 신문소설 [금색야차](우리 나라에선 '이수일과 심순애'로 널리 알려진)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주인공이 믿고 있어요. 외할머니가 이 신문소설에 너무나 이입하여 인생의 결정들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자신들이 현재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경우 사생아였고 주인공과 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첫 결혼 상대들을 버리고 떠나 결합한 다음 태어난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신문소설의 사생아'라고 결론짓기도 하는 겁니다. 

여성들에게 끼친 소설의 영향이라 하니, 읽으면서 저는 [보바리 부인]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불어 공부를 한 주인공 미쓰키가 본문에도 틈틈이 [보바리 부인]을 소지하고 다니며 읽고 보바리즘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신문소설과 더불어 서양 영화와 문학작품의 영향이 이 집의 여성 삼대의 정신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며 속을 파헤쳐 보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신문소설의 외양이라 표현을 비롯해서 좀 통속적인 일본식의 느낌을 주는 면이 자주 있었어요. 


주인공의 어머니 경우 그 영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강하게 표출되었던 반성없는 저돌적 인생이라고 본다면 주인공 미쓰키의 경우엔 이런 것들을 밟고 취할 거 버릴 거 의식하며 인생을 꾸려가고자 하는 이야기. 뭐 이렇게 좀 간단하나마 정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뒤틀린 모녀의 이야기이며 노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여 500페이지 넘게 이런 내용들이 되새김질되는 과정에 정신적인 피곤이 없진 않았으나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야기를 엮고 풀어나가는 작가의 장기가 여기서도 발견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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