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5 14:33
1.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를 읽었습니다.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모처럼 접했어요. 러시아 여성 작가의 책을 읽은 게 있었는지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이름이 없습니다.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러시아어로 쓰지만 국적은 벨라루스라고 하네요. 예전에 제가 그나마 부지런히 세계문학을 읽은 시기에는 러시아의 여성 작가 책을 구경한 기억이 없습니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 생이고 비슷한 연령대의 러시아 여성 작가 서너 분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네치카'는 소냐(소네치카)라는 여성의 일생이 전개되는 중편 소설입니다.
소냐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작가를 숭배하며 자라요. 사서로 일하다가 어느 날 불어로 된 책을 찾는 로베르트와 금방 서로 반해서 순식간에 결혼합니다. 소냐 보다 스무 살이 많은 남편은 예술가인데 프랑스에서 귀국 후 유배생활을 하여 경제적으로 궁핍합니다. 어쨌든 예술가! 소냐는 책읽기와 멀어지고 육아와 가사와 부업으로 바쁘면서도 매우 행복합니다. 이하 상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평이 좋아서 읽었는데 저는 그런 평처럼 좋게 읽지 못했어요. 남편과의 17년 결혼 생활을 포함하여 시간 배경이 소련의 40년대부터 70년대 정도인 것 같습니다. 시대 반영도 있을 수 있겠으나 소냐의 자신감 없음과 남편(예술)에 대한 숭배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 생각하고 다른 후기를 봐도 별로 설득이 되진 않았고요. 듀게에서 읽으신 분이 있으실까...다른 의견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오에 겐자부로의 신간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를 읽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와나미 신서 첫째 권으로 1988년에 나온 책입니다. 2015년에 나온 [읽는 인간]을 읽었었는데 [읽는 인간]은 작가에게 영향을 준 책을 중심으로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이라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작가의 소설 방법론으로서 마음먹고 쓴, 전체가 하나의 기획으로 꿰어져 있는 평론서 종류입니다. 당연히 작가의 인생책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평소 지론들이 중복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장수하셨고 소설 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많이 남기셔서 중복은 당연하겠죠. 무게감이 좀 있는 책이라 슬렁슬렁 읽기는 어려운 듯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작가들과 평론가들 인용이 들어가는데 특히 일본인 경우엔 낯선 작가와 작품이 많다는 점. 늘 그렇지만 이런 턱을 잘 넘어가야겠어요.
3. 새로 산 책도 몇 권 올립니다.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다고 하던가, 갑자기 쇼펜하우어 책이 잘 나가서 웃픈 일이 생겼다고요. 저도 자주 눈에 띄어서 한 권 골랐습니다.
이 책은 22년 3월에 나왔으니 유행하기 전에 출간이네요. 프랑스에서는 2017년 출간이라고. 애증의 미셸 우엘벡이 쓴 작고 얇은 책입니다. 짧은 분량이 선택하게 된 최우선 조건이었고 그 다음이 미셸 우엘벡이 썼다는 점.
[페이드 포]
인터넷 서점에서 화제가 된 책입니다. 역시 추천과 호평을 자주 접하다 읽어 보려고 생각하게 되었네요. 스스로 찾아 읽는 책의 길목에선 잘 마주치지 않는 책인데 선택해 봤어요. 성매매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당사자의 글쓰기라고 합니다. 7년 간의 경험을 10년에 걸쳐 썼다고 하네요. 성노동자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이 어디서 오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블로모프]
평소 관심 책이어서 들였습니다. 1, 2권 합계 800페이지가 넘어 분량이 꽤 됩니다. 출판사 소개로 대신할게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소개되지 못했다. 이번이 첫 완역이다. 곤차로프는 몇 편의 작품만 발표한 러시아의 대문호. <오블로모프>가 출간되었을 때 톨스토이는 대작 중의 대작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통조림 공장 골목]
표지만 봐도 재미있겠죠. 길이도 짧네요. 270페이지. 존 스타인벡 고향 마을이 배경이고 1945년 발표했다네요.
2008년에 나와서 절판될까봐 이번에 샀어요.
2024.02.15 15:21
2024.02.15 15:57
소냐는 우리로 치면 영희 쯤 되는 거 같아요.ㅎ
소설 자체는 한 여자의 일생을 쓱쓱 축약적으로 잘 표현했는데 마음으로 좋아할 수는 없는 그런 점이 있었습니다. 매우 좋다는 글을 먼저 봐서 기대치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고요. 19세기 귀족들 주인공이 아니면 러시아의 궁핍은 피하기 어렵겠죠.
[페이드포] 정희진 작가도 적극 추천하네요. 저는 조금 꺼리는 마음도 있었는데 읽은 사람들은 다 읽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고요. Sonny님도 시간 되실 때 시도해 보시길.
2024.02.15 15:55
[소네치카]! 반갑군요. 저도 최근 읽었답니다. 저는 그 이후 절반 정도 읽었을 뿐이지만 동 작가의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이 훨씬 좋았습니다. [소네치카]의 남편은 전형적인 보헤미안 예술가 상으로 나와서 영 마음에 안 들었죠.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다면 삶은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지. 저도 이 소설이 아주 유명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문장 힘은 분명 느껴지더군요. (같이 읽은 사람들은, 유독 상처 받고 허물어진 소네치카가 풀린 스웨터처럼 접혀저 책을 읽는 장면을 좋아하더군요.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쇼펜하우어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책 이후에 유독 많이 보이는 느낌이더군요 ㅋㅋ. 가끔 이렇게 돌잡이처럼 어떤 철학자가 유행할 때마다 흥미롭습니다. (저랑 잘 안 맞는 편이라 느껴서 아직 한 권도 안 읽어봤군요.) [페이드 포]는 머릿 속에 넣어놨습니다.
2024.02.15 16:04
저는 남편과 그리 되지 않았다면 소냐가 다시 독서 생활인이 되었을까 영영 독서와 담쌓고 일상사에 파묻혔을까가 궁금했습니다. 소냐에게 독서란 무엇이었을까..
미셸 우엘벡은 쇼펜하우어에 무척 빠졌었다고 합니다. 눈을 다시 뜨게 되는 수준으로요. 얼만큼 이해할지 몰라도 궁금해서 시도해 보려고요.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도 기억하겠습니다.
2024.02.15 16:15
저는 소냐가 어떤 일이 일어났든 언젠가 독서 생활인으로 회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삶 속에서 독서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지만 좋은 대화를 할 상대를 결국 못 만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슬퍼할 정도까지는 아닌. 사실 어떤 면에서는 독서의 세계 외의 것들은 약간 삶이라 설명하긴 하지만 군더더기 같은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 그 나름대로 좋은 부분들도 있지만. ) 결론적으로는 탄탄한 독서인의 삶을 언제든지 다시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24.02.15 16:27
저는 소냐에게 남편은 책 속의 세계를 대체하는 존재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남편을 예술가로, 자신이 사랑하던 소설을 쓰던 작가들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현실을 책의 실사화처럼 생각하지 않았는가 했어요. 자존감이 너무 없으니 그런 혼동 상태로 느껴졌습니다. 결혼 생활이 끝나자 다시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024.02.15 17:20
그러셨군요. 여성 저자가 썼다고 약간 기대하며 읽으면 실망이 클 수 있죠. (같이 읽은 지인이 '세대가 다른 사람이잖아'라고 했던게 떠오릅니다.) thoma 님은 읽기 전에 어떤 좋은 평을 들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정말 생판 모르고 읽었어요. [스페이드의 여왕]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의 이야기였고.
2024.02.15 18:21
인터네 서점에서 관심 책이 겹치는 리뷰어들이 쓴 호평을 봤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기대치가 크면 감상에 영향을 주네요.
어떤 소설이 지닌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개별 독자가 가진 민감한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면 나머지가 좀 부실해도 넘어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반대로 잘 쓴 소설이라고 하지만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약한 작품도 있고요.
이 소설도 인물들에 거리를 두고 삽화그리듯이 전개시키는 점 같은 장점 부분도 있었지만 다 읽고 나자 좋다고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저는 이 소설에서 세 명이 어울려 다니는 건 일부일처주의자라 용납 안 된다, 이런 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지내게 되는 소냐의 근거랄지 마음풍경이 납득되진 않았습니다. 진작 이렇게 될 거란 걸 알았지 않는가, 비범한 남편에게 뮤즈가 생겨 다행이다,와 비슷한 심경 표현만 있어서...이제 텅 비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존중이 없는 점은 걸렸습니다. 소냐는 왜 책에서 그런 건 배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말이죠. 결국 소냐의 곁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고 오직 책읽기만이 반려가 됨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일까? 혼자가 된 소냐가 책을 읽으며 고상함에 싸인다고 했을 때, 그 고상함의 정체가 의아했습니다.
위에 본문에 쓰려다가 좋게 읽은 작품에 대한 칭찬도 아닌 걸 길게 쓰기 뭣해서 줄였는데 댓글로 길어졌네요. 이만 총총.ㅎㅎ
2024.02.16 01:24
요즘 러시아 작품들을 많이 보시는군요!
늘 하는 얘기지만 책을 거의 안 읽는 요즘과 다르게 어린이/청소년기엔 나름 꽤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요. 어려서부터 어른용으로 별 책을 다 읽었지만 참으로 꾸준히 난이도가 있었던 게 러시아 문학이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등장 인물들 이름 때문에... ㅋㅋㅋ 왜 그리도 길고 또 헷갈리는지요. 정말로 러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외우기 힘들고 헷갈리는 이름이 많은 걸까... 라는 게 아직도 궁금합니다. 하핫(...)
2024.02.16 14:44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ㅎ
러시아 사람 이름은 길어서 자주 철자를 뒤바꿔 기억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라스콜리니코프를 라스콜니리코프 로 기억한다거나. 문제는 점입가경으로(맞나?) 이 사람들은 애칭이 있다는 것이죠. 이 책 제목이자 주인공 소네치카도 소냐의 애칭이고요. 장편 소설, 등장 인물 많은 소설에서 상황에 따라 이름을 막 바꿔 부르면 정말 골머리 아파요.ㅎㅎ
2024.02.16 23:39
태국 문학이 러시아 문학만큼 인정 받고 인기도 많았다면 정말 어쩔 뻔 했냐... 라는 생각을 근래에 했습니다.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같은 이름이 작품 내내 반복되면 정말 읽다가 포기해버릴 것 같아요. ㅋㅋㅋ 물론 태국 이름들에도 애칭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런 문제가 생기겠군요. 어쩔 땐 애칭, 어쩔 땐 풀네임... 우하하.
2024.02.17 10:32
ㅎㅎㅎ 문화 편향으로 책으로든 영화로든 익숙하지 않은 나라는 이런 부분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예전에 비해 아프리카 쪽 소설이 소개되고 있지만 작가 이름이 안 외워집니다. 예를 들면 케냐 출신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저는 아직 안 읽어 봐서) 웅구기 와 시응오. 이분은 책이 여럿 나왔지만 이름이 안 외워져서 지금도 찾아 보고 썼어요...
소냐란 이름은 러시아에서는 비교적 보편적인 여성의 이름 아닌가요? ㅋ 예전에 누가 쿠팡 노가다 후기를 러시아 소설처럼 써놓은 게 생각나네요 거기서 계속 쏘냐 쏘냐 이랬던 것 같아요 ㅋㅋㅋ
내용 소개를 해주신 것만 봐도 으음? 무엇이 행복? 하는 현대인의 오만한 편견부터 떠오르는군요. 러시아 소설답게 또 궁핍하구요.
[페이드포]가 추천하신 책 중에서 제일 눈길을 끕니다. 이 역시도 참 격렬한 담론인데 어느 쪽의 이야기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