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폴을 보고 와서 계속 여운이 남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델 노래를 듣다가, 가사해석에 손을 대봤어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다른 한국어 번역들은 맘에 안 들고, 가사 자체가 쉬운 영어라서, 중의적 의미들을 살리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즉, 내 멋대로) 번역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건 M의 시점에서 본드에게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이하 제멋대로의 가사 번역+고딩시절 자습서 스타일의 본인첨언입니다.

(대량의 스포가 있사오니 아직 못 보신 분은 스킵하세요!)







이제 끝이야.

네 숨을 잠시 멈추고 10까지 세어 줘.

지구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니? 그러고서

내 심장이 터지는 걸 다시 들어주길 바라.

이것이 끝이니까.                        

 


화자는 마지막 순간의 M이 본드에게 할 만한 말을 하며 노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난 늘 사로잡혀왔고 꿈꿔왔어, 이 순간을.

너무 지체되는 바람에, 나는 그들에게 빚지고 말았지. 

그냥 쓸어버려, 난 (이미) 납치당했으니.


(so~that 구문에서 that 생략)

'당신 죄를 기억하라'라는 문구에 괴로워하던 M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화자가 M이라면 그녀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 죽음을 빚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만합니다. 

함께 하늘을 무너뜨려 버리자, 그건 흔들리고 있으니.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함께 마주하자


'함께 스카이폴하자'라는 제안으로, 

화자는 '나'와 '너'가 몸담고 있던 'SKY'라는 장소,

즉, 이미 흔들리고 있는 장소를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릴 것을 '너'에게 권유하고 있습니다.


 

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함께 마주하자

하늘이 추락한 바로 그 곳에서


스카이폴에서

 

21세기에도 MI6가 존재할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는 

이번 편의 주제와 상통하는 부분으로,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롭게 쇄신하려는 주제의식을 보여줍니다. 

스카이폴, 그게 바로 우리가 시작한 곳이지

(여기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세계는 충돌하고 나날은 어두운 그런 곳이야.

 

 (*1mile=1760yd, 1pole=5.5 yd) 

"당신은 내 번호를 알고

내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내 마음은 절대 가질 수 없어"


과거의 출발지점을 떠올리던 화자가 이어서 말하는 부분으로,

과거 본드와의 첫 재회 때 본드가 M에게 한 말이거나, 

M이 본드에게 한 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늘을 무너뜨려 버려, 그건 흔들리고 있으니.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스카이폴에서 

 


네가 가는 것이 곧 내가 가는 것이나 다름없고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볼 거야 

화자는 첫 부분에서 이미 자신이 죽었음을 선언했으므로,

지금 이 말은 아마도 '내가 죽어도 네 곁에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유언으로 추정됩니다. 


난 알아.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던

너의 사랑스러운 팔 안에서 안전하지 못했다면 

나는 절대 나로 남지 못했으리란 걸.

함께 손잡고 이 일을 계속 견뎌 나가자 

화자가 M일거라고 강하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윗 부분에서 "'너'는 내 마음은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너'를 매우 사랑하고 있으며,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맞는 화자는 이제 함께 있지 못하므로, 

화자는 '너'가 계속 굳건히 견뎌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어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스카이폴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우린 버틸 수 있어

하늘이 무너지던 바로 그 곳

스카이폴에서

 

 예전에 한번 상실을 경험했던 곳에서

또다시 '스카이폴'을 겪으리란 것을 예상할 수 있지만,

'Let'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이는 화자의 결연한 의지가 섞인 선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사를 이렇게 생각해보니 다시 한번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역대 본드에 비해 얼마나 어두운 첩보원인지,

그리고 이번 편은 또 얼마만한 무게인지가 새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번편의 본드걸이 M이라는 건 탁월합니다.

세상에 '어머니'만큼 남자에게 근원적인 여성상이 또 있겠습니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게 있어 스카이폴은

부모의 죽음과, 유사 어머니였던 M의 죽음을 함께 겪은 곳으로,

본드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는 자기 애인이 죽었을 때도 흘리지 못했던 눈물 한 방울을 그곳에서 흘렸겠지요.

너무 삭막해서 감정조차 없어 보이는 그가 말이에요.


저는 이번 편을 통해서 제임스 본드가 진정으로 '리셋'준비가 완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카지노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 <스카이폴>을 더해서 일종의 '프리퀄' 삼부작이 완료되고, 

이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제임스 본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이제 막 <스카이폴>을 통해 완전히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드는 이제 유사 어머니였던 M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비로소 혹독한 성인식을 통과하고 

어머니의 보호 없이 혼자 세상을 마주하게 된 성년의 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는 내면의 적 실바를 마주하면서

이미 내적인 갈등으로부터도 독립했습니다.


저번 편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베스파의 유품이던 목걸이를 버렸으니, 연인에 대한 미련으로부터도 독립했겠지요.


마지막으로,

실바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의 근거지랄 수 있는 유년의 기억들과, 역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물의 잔재들(애스턴 마틴 DB5로 대변되는)을

모조리 털어내 버렸거든요.


이 다음편이 무엇이든,

이제 제임스 본드는 예전의 시리즈물로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표명했습니다.

다음 편이 참 기대되네요.


50주년 결산다운 제임스 본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명불허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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