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생, 50이 되다

2022.11.10 04:26

Kaffesaurus 조회 수:790

지난 주에 생일이었습니다. 자다가 잠이 깨어서 전화기 시계를 봤더니 00:01. 비몽 사몽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사실 생일 당일날은 거의 하루 종일을 공항에서 보냈어요. 미루어진 신혼 여행겸 생일 선물겸으로 저희 가족은 리사본에 있었고, 생일날이 돌아오는 날이었거든요. 요즘 암스테르담 공항 문제로 비행기가 추소 되는 바람에 예약했던 때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거든요. 어디에 있던 아이패드와 음료수만 있으면 생생한 아이빼고 저랑 울로프는 도대체 하는 거라고는 앉아 있는 것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리사본은 정말 좋더군요. 리사본으로 정한 이유는 우리 둘이 다 간적이 없는 곳에 함께 처음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는 데 생각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 어딘가를 둘 다 그 전 경험없이 함께 백지 상태에서 경험한다는 게 참 좋더군요. 지중해라 해도 특별했던 더위 (올해 10월 말에 지중해는 이상하게 따듯했습니다), 둘 다 처음 접하는 음식문화, 둘 다 모르는 길. 저희가 여러모로 다 잘 맞지만, 정말 여행할때 너무 잘 맞아서 편해요. 둘다 하루를 꽉 채우기 보다는 그냥 하루에 하나 둘 정도 하고 나면 걸어다니고 쉬고 맛있는 거 먹는 거 정도면 대 만족이거든요. 줄 서는 거 둘다 싫어해서 금방 포기하기도 하고요. 저 성은 다음에도 있어, 혹은 성이 성이지 뭐 이러면서. 


리사본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더군요. 음 관광객한테 뭘 팔려고 친절한 거 보다 그냥 마음이 여유로워서 친절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신호여행, 제 생일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한테 맞춘 여행이었습니다. 유명한 현대 미술 박물관이 아닌 전철 박물관을 보고, 수족관을 가고 (이건 저희가 늘 여행을 가면 하는 거에요)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그런데 4년 전 저희 셋이 처음으로 여행했을 때에 비하면 정말 편한 여행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되었고 영어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무엇보다 사라지지 않고. 호텔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나오면서 아이를 매일 따뜻하게 바라보던 호텔 레스토랑 종업원께 가서 우리 이제 가니까 제대로 Thank you and Good bye라고 인사하라고 했더니, 가르치지 않았는 데 이럴때는 배꼽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분에 어머 하시더니 아이한테 한번 안아볼래 하시고 잘 가라고 하시더니 저보고 자기 아이가 보고 싶다고. 그 전에 자기도 10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아마 이분은 노동이주자 이신가 봐요. 


00:01 살짝 있는 정신으로 감사기도. 사실 생일을 맞이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당연히 더 좋지만 그리고 당연히 생일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아마 대부분 청춘 들에게는 50이 되는 나, 60이 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겁니다. 32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I have this thing where I get older, but just never wiser 라고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피싯 웃게 되지요. 뭐하나 더 쉬워진건 없는 거 같은데, 제 영역이 아닌 건, 제 책임으로 만들지 않는 걸 연습하고 있습니다. 


직장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책 주인공 중 한면 로타의 대사 "Det är konstigt med mig. Jag kan mycket (It's strange with me. I can so much)" 가 새겨진 컵을 받았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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