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는 사람들

2022.11.15 17:41

Kaffesaurus 조회 수:597

여름이 시작되기 바로 전 내 친구 카로, 카로의 딸 사라, 울로프, 선물이 나 이렇게 우리는 드디어 함께 오바카라 불리는 야외 카페를 갔습니다. 이렇게 쓰면 뭐 멀리 있는 곳 같이 들리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다리 건너면 있는 곳이에요. 옛날 작은 오두막 그대로, 큰 정원 여러 배나무 그늘아래서 커피랑 와플 그리고 늘 주인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 가끔 생각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함께 커피마시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이제 막 꽃은 지고, 배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하던 그때 그렇게 함께 피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앞에서 저만치 먼저 걸어가던 선물이랑 울로프를 보더니 카로가 '어머 둘이 똑같이 걸어가네.' 시선을 움직여 앞에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서 있는 모습, 5도 정도 기울인 머리, 보폭, 그리고 괴상한 뒷짐까지요. 온 마음에 특별한 만족감이 넘쳐납니다. 


저희 가족이 어디를 가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우리가 한 가족으로 보이겠구나. 그건 뭐 다른 사람들 볼때 스웨덴 아빠, 한국 엄마 사이에서 저렇게 생긴 아이가 태어나다 보다 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랑 울로프의 행동이 그냥 아빠랑 아이 같아 보이거든요. 지난 번 밀라노 출장 울로프랑 아이도 따라갔습니다. 콘퍼란스 참가 였기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출장을 간거 였는데 제 발표가 있던 날, 저는 제 가족이 아닌 동료들과 아침을 먹었고 다른 동료이자 친구가 울로프랑 선물이랑 아침을 먹었는데 나중에 그러더군요. '선물이가 울로프 커피 챙기고 주스 챙기고 너무 예쁘더라. 둘이 정말 사이가 좋더라.'  


워낙 이름을 부르는 문화라 호칭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아이가 울로프를 '새아빠' (여기서는 요즘 보너스아빠 엄마란 표현을 더 많이 쓰더군요) 라고 부를 이유도 안톤이 저를 그렇게 부를 이유도 없거든요.  그런데 아빠를 만나기로 한 어느 날 선물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엄마 이 남은 케익 내 첫번째 아빠한테 줄까? 두번째 아빠랑 우리는 어제 먹었잖아' 아이한테 이 사람이 이제 너의 아빠랑 같은 존재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 저는, 아이의 맘속에 그의 사랑의 행동으로, 그의 존재로 그가 아빠가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세상에 먹을 것은 다섯가지 밖에 없는 것 처럼 살던 선물이가 육회를 먹겠다고 하는 건 울로프와 안톤 덕분이죠. 


며칠 전 제가 무언가 물었더니 울로프가 '그건 참 좋은 질문이군' 이라고 답하더군요. 순간 거리인 것도 까먹고 까르르 웃었습니다. '당신 그건 선물이가 내 질문에 하는 답이잖아!' 그러자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말한 그도 까르르 웃습니다. 사랑으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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