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5 20:22
얼마 전에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화가 선생님 및 지인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평양 냉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비빔냉면은 맵찔이라서, 물냉면은 비린 게 싫어서 안먹는지라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죠. 한민족에게는 고소한 콩국수(에 설탕 뿌려먹으면 되는 선택지)가 있는데 왜 굳이 냉면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지극히 편협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딱!! 평양냉면이 나오는데 보기만 해도 제가 좋아하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을 빡! 느꼈습니다. 제가 또 김치를 안좋아하고 물김치는 더 안좋아하고, 동치미는 진짜 안좋아하는데 딱 그런 국물 냄새가 나는 겁니다. 아... 한번 먹어보겠다고는 했지만 이건 좀... 아...
제 접시에 덜어서 호로록 먹어봤는데
'으른맛이다잉!!!!!!!!!!'
아니 저도 슴슴한 거 좋아하고, 나름 구수한 것도 좋아하는데 이런 건 도통 안맞더라구요. 일단 면 들어간 국물이 차가우면 좀 그렇고(콩국수 미만 잡), 거기서 막 무맛 나고 김치맛 나고 이러면 또 그렇습니다. 제 혀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지 한입 또 먹어봤는데 쓰읍... 녹두전이랑 만두만 조지다가 돌아왔습니다. 그게 한 한달 전인데 아직까지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군요.처음엔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나중에 생각나고 또 먹고 싶어진다는데 글쎄요... 식성 같은 거야 바뀌는 거니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이게 정말? 저는 영원히 비엔나 소세지에 계란말이나 찾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이런 프로에서 평냉을 주면 양인들에게 주면 절대 방송용 리액션 못하지 않을지...
그 날 자리를 뜨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굳이 통일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존 박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안바뀌는 식성도 있다, 나는 확실히 한식보다는 일식 쪽이다, 면발은 역시 이태리다...
2022.07.25 22:34
2022.07.26 10:36
체인점이었는데 다른 분들은 다 이 집 괜찮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김정은씨가 직접 서빙을 했어도 표정관리가 안됐을 것 같지만...
저도 그 근거없는 편견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ㅋㅋ 쇠젓가락 논쟁이라든가 양념 논쟁 보면 음식이 불필요하게 힙해진 느낌
2022.07.25 23:19
지금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앞에 평양만 붙었을 뿐 사실은 백년 가까이 자리잡아온 서울식 냉면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정작 평양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게 지난 남북교류 때 드러난 적이 있지요). 말하자면 전주에 가면 전주집이라는 식당을 찾기 어렵지만 서울에는 전주집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죠. 그리고 여전히 동치미 육수를 섞는 집도 있지만, 고기 육수의 비중이 늘어난 건 김치냉장고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겨울철에나 담가먹을 수 있었던 동치미 국물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다 감당하기 힘들던 일제강점기 냉면 유행의 결과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아지노모도의 개발과 도입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고요. 당시 냉면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냉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노조가 결성되어서 배달료 인상을 위한 쟁의를 하기까지 했지요. 여하간 요즘은 동치미 국물 맛이 강한 육수는 막국수 문화 쪽에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노포 중에는 동치미 국물만을 쓰는 곳도 아직 있다고 하니까요 평냉이 동치미 없이 육수만 쓰는 집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막국수도 사실 유래를 따지고보면 그 원류에서는 평양냉면과 비슷한 음식이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겨울에 입은 심심하고 수확해둔 메밀은 아직 좀 있겠다, 동치미도 잘 익었겠다, 반죽해서 눌러서 면을 삶고 동치미 국물을 붓고, 혹 여유가 되면 꿩이라도 한마리 삶아서 육수를 섞는 그런 음식에서 시작한 것일테니까요.
아무튼 냉면 호사가까지는 아니지만, 퍽 좋아하는 입장에서 주절주절 함 해봤습니다. 아무튼 평양냉면은 이래저래 오해를 많이 받는 음식인 것 같습니다. 취향에 안 맞으셨다니 안타깝네요(근데 김치 안 좋아하고 김치 익은 맛 안 좋아하면 체감할 수 있는 한식의 바운더리가 확 줄어들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차가운 면을 싫어하신다면 혹시 분짜 같은 것도 안 드시나요? 그건 정말 대부분의 남녀노소 한국인에게 잘 먹힐 맛인데...(좀 향이 강한 향신채류만 뺀다면)
2022.07.26 10:37
오호 그런 역사가... 잘 읽었습니다...
분짜는 아직 안먹어봤어요 먹어봐야될려나요 ㅋ 궁금하긴 합니다
2022.07.25 23:26
이런 글을 쓰시다니. 백석 시인에게 혼나십니다. ㅋㅋㅋ
2022.07.26 10:38
크흐흑 남한 무지랭이
2022.07.26 01:00
제 첫 경험담이랑 너무 비슷해서 많이 웃었습니다. 특히 "녹두전이랑 만두만 조지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부분 ㅋㅋ 그래도 어쩌다 몇번 더 먹어보니 그냥저냥 이렇게 즐기는 맛도 있구나... 하게 됐습니다. 물론 혼자 먹고 싶어서 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2022.07.26 10:39
젓가락이 방황하게 되더라구요 다행히 다른 분들이 냉면에 집중하셔서 남은 녹두전과 만두는 자연스레 제가 겟!!
2022.07.26 02:44
2022.07.26 10:41
오호 그러시군요. 별 맛을 못느꼈던 제 기준으로 좀 설명을 해보자면 국물맛의 가장 일반적인 쇠고기 육수나 멸치 육수의 맛이 아니라 좀 심심하면서 뭐가 빠진듯한 맛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자극 센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건 좀 너무 으르신 맛이랄까...
2022.07.26 09:57
2022.07.26 10:41
제 몫까지 많이 드셔주시길...
2022.07.26 10:30
요샌 맛난 음식이 너어무 많아서 입에 안 맞는 걸 굳이 먹을 필요는 없겠죠
근데 으르신 중에는 평냉 극호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저도 타의에 의해 회식 비슷하게 간 적이 몇번 있긴 하네요
전 나이 먹으면서 자극이 덜한 음식 취향이 되어서 평냉이나 콩국수나 워낙에 아무것도 안 넣고 밍밍한 채로 먹는 걸 좋아하긴 한데 (콩국수에 설탕 vs 소금 논쟁에서 자유로운!)
그런 맛이 별로이면 평냉도 식초 + 겨자로 초딩입맛을 만들어 먹을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ㅎ 일부 강경파(?)를 제외하면 으르신분들이나 진짜 평양 분들도 뭣좀 넣고들 드시는 듯 해서요..
물론 그렇게도 먹기 싫으시면 녹두전 만두만 조지는 것도 정답ㅎㅎㅎ 대개의 평냉집은 녹두전도 맛나게 잘하죠!
2022.07.26 10:42
결정적인 문제는, 제가 신 걸 그렇게 안좋아합니다... 세상에 맛있는 면요리 많은데 굳이 평냉을 수술하면서까지 즐기고 싶진 않던 ㅋㅋ
2022.07.26 10:38
저도 원래는 "뭐 이런 걸 그리 비싸게 주고먹어?" 였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한 세 번만 먹어보면 그 뒤로 찾게될거"라는 말을 그린 듯이 체험하게 되어서
정말 귀신처럼 한 세 번 정도 "남이 사주는 평냉"을 먹고는 그 뒤론 여름이면 내 돈 내고 사먹게 되더라구요.
근데 뭐 사람마다 입맛따라 맞는게 있고 아닌게 있어서 굳이 안맞는 걸 챙겨 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편식으로 가는 수준만 아니면 그냥 좋아하는 게 있고 아닌게 있는거죠.
2022.07.26 10:43
두번의 함정이 남아있군요 무섭습니다... 제 편견을 고수하고 싶습니다(?)
2022.07.26 11:19
2022.07.26 12:27
2022.07.26 12:26
2022.07.26 12:28
2022.07.26 13:35
미역오이냉국은 좋아하십니까?
기냥 궁금해서요 저는 좋아하고 냉면도 좋아해요
2022.07.26 14:03
2022.07.26 17:26
아하 그러시군요 ^^
2022.07.26 13:58
평양냉면은 맛없으면 안되는 음식입니다. 그랬다가는 수많은 맛잘알들의 수십년 식도락 인생이 부정이 되는걸요. ㅋㅋ 저도 맛 자체에는 큰 불만은 없는데 가격에는 큰 불만이 있어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냉면은 그냥 집에서나 종종 해먹는 음식이 되어버렸습니다ㅎㅎ
2022.07.26 14:10
2022.07.26 14:27
전 실력이 안 돼서 사먹어야 하는데 마침 동네에 8천원짜리 가성비 쩌는 평양냉면집이 있어 몹시 사랑했지요.
근데 사장님이 야심차게 커다란 분점을 내시고는 가격을 만원으로... ㅠㅜ 여전히 상대적 가성비는 좋습니다만 한 큐에 25% 인상이라니!!
라고 화내며 엊그제도 먹고 왔습니다. ㅋㅋㅋ
2022.07.27 20:41
전 어렸을 적부터 논현동 평양면옥의 평양냉면에 길들여져서... 늘 언제나 맛있더라고요. 다만 밀면은 도저히 먹을 수 없습니다. 이거 대체 뭔 맛으로 먹는 것인지......
2022.07.27 21:20
식당마다 좀 대중적인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고 해서 어디서 드셨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동치미를 싫어하시면 좋아하시기 힘들 것 같긴 합니다. 딱히 좋지 않은데 굳이 이걸 배워서 먹기에는 세상에 맛있는 건 너무 많죠!
저도 평냉이 대단한 음식인진 모르겠어요. 소위 평냉 마니아들은 사실 이렇게 슴슴한 국물에서 미묘한 국물 본연의 맛을 찾아 즐기는 본인의 놀라운 미각을 더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근거없는 편견이 있어요 ㅋㅋ 물론 저도 메밀면 좋아하고 슴슴한 국물도 가끔 생각나서 종종 맛있게 먹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