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와 강시와 좀비

2023.10.16 15:50

돌도끼 조회 수:228

80년대에 영화 [강시선생]을 통해서 강시가 우리나라에도 알려졌습니다.


홍콩에서 강시 영화가 처음 만들어진건 1936년.
[오야강시]라는 영화인데, 31년에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영화 [강시지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퀴즈: [강시지이]는 무슨 영화일까요?
여기서 '지이'는 '요재지이'할때 그 '지이'고, 앞에 강시가 붙은 겁니다.
(답은 열줄 밑에)










답: 벨라 루고시판 [d라cul라]의 홍콩 개봉제목이라고 합니다.
그니까, 서양의 뱀파이어를 홍콩에선 강시라고 번역했다는 거죠.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강시 영화가 나왔을 때도 강시를 영어로 뱀파이어라고 번역했죠. [강시선생]의 영어 제목도 [미스터 뱀파이어]. 정직한 직역.
뭐 중국에서 흡혈귀라는 말을 안쓰는 건 또 아니어서, 뱀파이어를 번역할 때 그때그때 흡혈귀라고 하기도 하고, 흡혈강시라고 하기도, 걍 강시라고 하기도 했나봐요.

뭐 강시나 흡혈귀나 비슷한 존재니까... 사람 피빨고 물리면 전염되고... 강시가 바로 중국의 흡혈귀...
잠깐만요... 원래 강시는 사람 피를 쪽쪽 빨아먹거나 하지 않았다고 해요. 강시가 생겨나는 것도 복잡한 주술을 걸거나 뭔가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떨어져야지, 걍 간단히 한번 물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흡혈귀가 강시로 번역되어 서양의 흡혈귀 영화가 강시 영화라고 소개되고, 홍콩에서 또 강시 영화가 나오고, 이렇게 강시가 영화상에서 혼동되어 쓰이는 동안에 은근슬쩍 흡혈귀의 속성이 강시한테 묻은 거라나봐요. 일단 흡혈강시라는 말이 따로 있다는 데서 흡혈이 강시의 일반적인 속성은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겠네요.

전 저 [오야강시]라는 영화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어요. 중국 강시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슬쩍 서양 강시, 드라큐라의 흉내를 내본 건지 아님 처음부터 드라큐라를 모방한 흡혈귀 영화였는지... 일단 상서간시와 관련된 영화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지금 저 영화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서....

뭐 어쨌든 [오야강시] 이후 홍콩에서 강시 어쩌구 하는 영화들이 여럿 나오게 되는데 그중에는 중국 강시 영화와 서양 흡혈귀 영화가 섞여있는 것 같아요. 둘 다 강시란 이름을 쓰니 제목만 보고는 구별이 어렵네요.

이렇게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속성이 바뀌어버린 존재가 또 있습니다. 좀비.
원래는 아이티 지역에서 행했다고 하는 주술이 미국에 전해지면서 변형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원래 아이티 좀비에는 없었던 속성이 붙어버렸죠.
사람을 뜯어먹고, 물리면 전염된다는 거.

현재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좀비라는 괴물은 사실은 아이티 전설과는 아무 관계없는, 조지 로메로와 존 루소가 영화용으로 창작한 괴물에서 기원합니다.(정작 로메로 등은 한번도 자기들이 만든 괴물을 좀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데 말입니다.)
원래 로메로의 영화는 [나는 전설이다]를 개작한 것에 가까운 내용이었고(로메로 본인이 인정한 사실) 그 [나는 전설이다]가 흡혈귀를 현대적으로 조명해보자고 나온 작품이었죠. 그러다보니 로메로의 괴물이 흡혈귀의 속성을 가지게된 건데...


지금 보자면, 강시(상서 지방 전승 기준)는 흡혈귀보다는 좀비에 훨씬 가까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둘다 주술로 죽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 살아있는 시체이고, 여럿이 몰려다니고, 본인의 자의식이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하다보니 흡혈귀의 속성이 붙어버렸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을지도...

강시한테서 흡혈전염 속성을 뺀다면 흡혈귀와의 공통점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뱀파이어를 하필 강시로 번역했을까...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뱀파이어가 처음 홍콩에 알려질 즈음에 그걸 번역한 사람이 중국 문화속에서 떠올린 뱀파이어와 그나마 비슷한 존재가 아마 강시가 아니었을까요? 둘이 언데드 계열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니까... 구미호 보다는 강시가 흡혈귀에 더 가깝잖아요ㅎㅎ
홍콩은 영국령이었으니까 드라큐라는 바로 알려졌을 거 같고, 좀비가 아이티 바깥에 알려진 건 드라큐라보다 한참 뒤니까... 만약에 좀비가 먼저 알려졌더라면, 좀비의 번역어가 강시가 될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뭐 어쨌든... 적어도 80년대까지는 홍콩에서 흡혈귀와 강시를 동격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해머와 쇼부라다스가 합작해서 만들었던 해머의 마지막 드라큐라 영화는 중국에 밀입국한 '강시의 왕' 드라큐라를 피터 쿠싱이 중국까지 가서 때려잡는다는 이야기였고요. 임정영이 [강시선생]의 구숙 캐릭터를 재활용해서 만들었던 영화 [일미도인]은 서양 강시와 중국 강시가 싸운다는 내용이었죠. 영어 제목이 [뱀파이어 vs 뱀파이어]. 둘다 이름이 강시(뱀파이어)란 걸 이용한 장난질...ㅎㅎ

2000년대 들어서 좀비영화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편입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되고 이제는 거의 일상물처럼 만들어지게 되었죠. 이쯤 되면 중국쪽 영화쟁이들도 강시를 뱀파이어와 동격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않나 싶어요. 요즘은 뱀파이어를 강시라고 번역하지는 않는 것 같고요. 강시를 좀비라고 번역하는 강시 영화들도 가끔씩 나오고있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뭐 뱀파이어 보다는 좀비에 더 가깝다는 거지 강시가 좀비와 동격인 것도 아니니까요. 뭐 나중엔 뱀파이어나 좀비같은 다른 언데드들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영어에서도 강시(에 해당하는 중국발음) 그대로 독자적으로 쓰이게될지도... 그러려면 강시 영화가 좀 더 많이 나와야할텐데...ㅎㅎ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13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83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015
124568 김종학 PD 사망했다는 속보가 뜨고 있습니다 [9] nixon 2013.07.23 6785
124567 너무 충격적인 지방의 광경.. [36] 바스터블 2015.08.29 6785
124566 말 장난 같은 재밌는 얘기 알려주세요 [24] 베이글 2010.06.09 6785
124565 (바낭) 좋아한 사람과의 기억 [105] 침흘리는글루건 2012.10.05 6783
124564 [자랑]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신 치마 [20] 침엽수 2012.05.11 6783
124563 서양 여자는 힘세고 강한가요? [21] 닌스토롬 2013.01.22 6781
124562 소녀시대 디올 광고를 보았습니다. [39] 로이배티 2011.03.04 6781
124561 거식증 다큐 'Thin'(영혼의 병, 거식증): 여기 나왔던 여성들 중 폴리가 자살했었군요. [4] 한여름밤의 동화 2013.07.26 6779
124560 이번 대한 항공 기내식 난동 사건에서 FBI 출동 등의 대응 [31] espiritu 2013.04.22 6777
124559 La-Z-Boy 레이지보이..... 게으른 이를 위한 의자.... [3] 걍태공 2010.08.09 6777
124558 어제 경기 눈에거슬리는거.. [88] 2010.06.23 6776
124557 현자님이 불편합니다. [20] catgotmy 2013.01.26 6775
124556 시간약속(..........) [64] august 2012.05.27 6773
124555 수영(발차기)을 잘하는 방법 있을까요 [25] 오명가명 2015.08.05 6773
124554 여친의 군대간 전 남친이 휴가 나왔을때.. [23] 잠시익명임니다 2010.07.16 6773
124553 박명수씨 욕 너무 많이 드시네요 [12] 외팔이 2010.08.28 6772
124552 남자들이 절대 듣지말아야 할 말들, 상식이라는 군요. ㅠ [25] 무비스타 2010.11.05 6771
124551 덴마크 마을.JPG [21] magnolia 2010.06.24 6770
124550 땡땡이 (polka dot) 공포증 - Trypophobia (사진 無) [21] roarring 2010.06.10 6770
124549 김정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입국해있다는 소문 [8] 닥터슬럼프 2013.04.09 676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