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8 01:31
마음이 허해서 뻥 뚫인 거 같아요.
잠도 안오고요.
전 마음이 심란하면 음식을 만들게되더라구요.
냉장고를 뒤져서 나온 재료라고는 순 풀떼기밖에 없네요.
그래서 만들게 새우젓을 넣은 무국하고 역시 새우젓을 넣은 호박볶음, 그리고 꽈리고추찜을 만들었어요.
새우젓 넣은 무국 맛있네요.
처음 시도해본 요리인데 나름 연포탕(?)비슷한 맛이 나는 거 같아요.
꽈리고추찜도 해보니 간단하고 자주 해먹을만한 반찬이네요.
냉장고에는 고기비슷한 것도 없군요.
가난하니 저절로 배지테리안이 되갑니다.
심지어 호박과 꽈리고추같은 것도 누군가가 줘서 채워넣은 것;
혼자라면 쫄쫄 굶겠는데 할머니가 계셔서 제가 쉬는 동안에는 끼니를 봐드려야하거든요.
평상시엔 할머니 밥 차리는 거 정말 스트레스였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차라리 시간대마다 챙기게 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뭔가 꼭 해야할 일이라 그런가봐요.
그리고 제가 챙겨드림 얼마나 더 챙겨드릴 수 있겠어요.
하루하루 기력이 쇄한 할머니를 보면 예전에 그렇게 꼿꼿했던 노인네가 저리 약해진 거 보면 맘이 심란해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밉기도했던 할머니였는데말이죠.
다음 주면 새회사에 출근인데 아마도 한 일년간은 주구장장 바쁠 거 같기에
내일도 할머니 식사를 꼭 챙겨드려야겠어요.
전 일 같은 거 열심히 하는 회사형 인간도 아닌데 말이죠, 집에 있는게 너무 힘들더군요.
가뜩이나 덥고 잠도 안오고, 낮에는 도우미아줌마까지 오시니 거실에서 맘놓고 티비도 못보겠더라구요.
아줌마 걸레질 하시는데 가만히 티비보기도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한달 내내 아줌마 계신 시간동안 의도하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렸네요.
그 아줌마는 다 큰 처녀가 백수로 노나 싶었을거예요. 더운데 문도 꽉 닫고;
내일 고추찜이나 더 만들어여겠어요.
슬프고 힘든 일이 기억되지만 저란 사람은 그 과정에서도 배가 고프고 유머를 잃지않는 인간이란 걸 깨닳은 시기였죠.
2010.08.1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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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으면 일주일에 한두번 아니면 한주걸러 한주 이렇게 배달해서 잡수시게 했는데 나중에는 사실 좀 귀찮았어요.
회사에서 교통편이 애매해서 30분정도 걸어야 했거든요. 거기서 집에 오는 길도 좀 불편했고요.
근데 저희 할머니께서 아무리 손주라도 그런 부탁(뭐가 갖고 싶다거나 드시고 싶다거나) 절대로 안 하시는 쿨한 분이셨는데
정말정말 드시고 싶으셨나봐요. 그래서 저도 군소리 한번 않고 사다드렸었죠. 그렇게 일년정도 누워계시다 돌아가셨어요.
이제는 돌아가신지도 꽤 되었지만 그래도 냉면집 지나갈 때마다 꼭 할머니 생각이 나요.
지금 살아계시기만 하면 정말로 매일매일 사다드릴 수도 있는데...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