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4 00:34
-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그냥 배경 사건에 대한 잡담에 가깝겠네요. 어쨌든 영화를 재밌게 보려면 모르고 보는 게 좋을 모든 이야기를 다 하는 글이니 요 아래를 읽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을 좀 해보시구요.
(스포일러 방지용 짤 재활용.)
-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리메이크, 리부트 그렇게 좋아하는 헐리웃 사람들이 왜 '스팅'을 다시 안 만들까. 그거 이야기도 재밌고 마지막 반전도 그 시절 기준 참 대단하지 않았나? 왜 안 만드는 거지? 왜??? ...뭐 이런 생각이요. ㅋㅋㅋ 근데 그걸 영화가 아니라 현실판으로 호주 경찰님들이 시전하셨다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니 사실 '스팅' 정도도 아니죠. 거의 '트루먼쇼' 급의 함정이었던 거잖아요. 근데 또 영화 보고 나서 사건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이런 식의 작업이 따로 명칭이 붙어 있을 정도로 이미 전통이 있는 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네요. 아니 그 동네 경찰님들은 대체... ㅋㅋㅋㅋㅋ
-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괴롭혔던 의문들은 이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마크 쟈가 언더커버 캅인 건 알겠는데. 헨리가 그 조직으로 들어갈 줄 어떻게 알고 저기서 진작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지? 우연히 얻어 걸린 건가? 그리고 저 조직은 왜 이리 복지가 좋고 사람들이 따뜻해? 대체 헨리 쟤가 뭘 잘 해서 저렇게 부둥부둥 싸고 돌지? 수당은 또 왜 저렇게 세고??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잠입 임무 수행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왜 저리 발각 걱정을 안 하지? 등등등.
사실 좀 제 정신을 차리고 매의 눈으로 보고 있었으면 중간중간에 노골적인 힌트들이 주어집니다만. (다 보고 나서 빨리 감으면서 다시 한 번 봤더니 그렇더라구요 ㅋㅋ) 제가 그저 '으악 어두워! 갑갑해!! 느려!!! 설명이 없어!!!' 이러면서 정신줄을 반쯤 놓고 보느라고 캐치를 못했어요. 결국 한 시간 이십분이 흐른 후에야 노골적인 설명 & 정리 장면을 보면서 간신히 알게 되었죠. 으허허 그냥 조직 전체가 함정이었다니... 그게 다 경찰이었다니. ㅠㅜ
- 실제 사건 관련 글을 찾아 읽어보니 정말 더더욱 신비로운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런 조직이 있어서 운영되고 있는 척을 해야 하니 주조연에 엑스트라들까지 필요해서 투입되어야할 경찰들 숫자도 엄청 많고. 얘들이 또 다 그럴싸하게 연기를 해야 하니 디테일한 각본이랑 설정도 있었어야 하고. 또 헨리에게 일거리를 주고 보상도 줘야 하니 가짜 범죄 사건을 끊임 없이 만들어서 던져 주고, 또 그 보수까지 줘야했단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히 소품(?)들이 필요하고 실제 액션도 필요하구요. 이걸 1년 가까이 굴렸다니 대체 그동안 자금이 얼마나 투입됐을까요? ㄷㄷㄷ
애초에 이런 작전을 승인한 경찰 상부 사람들도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작전에 엄청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기나긴 시간을 투자하도록 승인하다뇨. 게다가 이게 무슨 국가 전복 음모도 아니고 소년 한 명에 대한 사건이잖아요. 당연히 소년 한 명의 죽음에 대한 정의 실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으론 뭔가... 너무 대단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호주에 이런 사건이 몇 십년에 한 건 꼴로 일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 제가 모르는 다른 무슨 배경 같은 게 있었던 걸까요.
헨리 체포 이후에 보여지는 대규모 수색 작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필요한 일을 한 건 맞는데, 그래도 그렇게 대규모로, 그렇게 꼼꼼하게 일하는 걸 보니 괜히 막 감동적이더라구요. 마지막에 수색자 한 명이 멈춰서서 한 손을 치켜드는 그 순간엔 특히 더 그랬구요.
- 아무래도 젊었을 때 이미 '무간도'에 절여진 뇌라 그런지 마크가 헨리와 맺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내내 헷갈렸습니다. 게다가 이 헨리란 인간은 참 혐오스런 생명체이면서도 어쨌거나 인간은 인간이라 종종 그런 감정적인 장면을 연출한단 말이죠. 그래서 헨리가 이러고 저러고 할 때마다 보이는 조엘 에저튼의 오묘한 표정이 참 궁금했는데. 결말까지 보고 나면 결국 혐오의 감정이었던 거겠죠. 숨바꼭질 하다가 아들이 집 밖으로 나가 버리는 장면을 보면 이 양반이 이 수사 때문에 얼마나 신경이 곤두서고 피폐해졌는지 잘 보이는데. 그런 상태로 헨리에게 연민 같은 걸 품었을 리가...
- 마지막으로 좀 찜찜한 얘기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 헨리씨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무기 징역을 받고 감옥에 간 후에도 그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사팀은 헨리의 자백을(물론 자기가 '보스'이자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한 말이지만) 제외하면 어떤 물적 증거도 결국 찾지 못 했구요. 소년의 시신을 찾아낸 건 사실이지만 그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며. (근방에서 가장 시체 버리기 좋은 곳이었다든가) 또 영화 속에서 헨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 보스가 분명히 그 답을 유도하고 있어요. 내가 다른 데서 얻은 정보가 있다. 라며 헨리의 범행을 확신한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니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다 돌봐주지만 거짓말은 용납 못 한다'라고 이야길 하니 만약 거기에서 헨리가 끝까지 자기는 안 했다고 말을 하면 헨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길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꿈의 직장에서 버림 받게 되는 셈이죠. 거짓말을 할만한 여건은 충분했던 셈입니다.
부디 그 자백이 진실이었으면 좋겠네요. 이러다 한 10년 뒤에 진범이 따로 잡힌다거나 하면 그건 정말...;
2022.10.24 01:10
2022.10.24 08:59
상황이 이러니 잠복 근무라기 보단 함정 근무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뻘생각도 들구요. '잠복'하곤 개념이 좀 다르지 않나요. ㅋㅋ
역시 여론에 밀려 그렇게 된 거였나 보네요. 국민 여론 파워는 나라를 가리지 않는 듯. 호주도 우리 민족이었어!! ㅋㅋㅋㅋ
사실 주인공(?) 둘을 제외하면 다른 분들은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은데, 그 와중에도 그 양반들의 간절함과 스트레스는 절실하게 느껴져서 신기했습니다.
뭐 유일한 용의자였다니 나중에 결과 뒤집히고 이럴 걱정은 거의 없겠네요. 근데 극중 설명에 따르면 고작 한 시간 동안 그 일을 다 했다니 뭐 이런 부지런하게 나쁜 놈이 다 있나 싶구요.
2022.10.24 10:48
이 영화는 솔직히 호주정부 경찰국?청?에서 제작비를 보탰지 않나 합니다. 흥행을 노린 영화도 아니고 강력한 의심이 듭니다.ㅎ 호주 경찰 홍보 영화로 손색이 없어요. 흥행 안 되면 홍보도 어렵지만요.
혐오스런 범죄자와 인간 관계를 맺는 척을 잘 해내야 하는 마크 같은 사람이 느낄 압박감이 보는 사람에게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아들과 시간 보내는 장면들은 아마도 그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되었고요.
관객의 답답, 갑갑함이 끝부분 숲에서 현장 자백 이후 화면이 확 넓어지면서 다른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풀리는 식이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부담이 커서 보는 걸 중단하는 것도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저는 어찌어찌 추천에 힘입어 마무리했지만요.
결론은 호주 경찰에 놀랐다는 것과 배우들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2022.10.24 11:09
뭐 크게 보면 그냥 그렇게 헌신적으로 노력한 사람들... 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그게 경찰이니까요. ㅋㅋ 말씀대로 아들 부분은 그런 의도였던 것 같구요. 동시에 관객들을 이입 시키는 장치 같은 것도 된 것 같아요. 사건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ㅠㅜ
암튼 참 신기합니다. 아무리 여론에 몰렸어도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의 작전이라니.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근래 본 영화들 중 가장 큰 반전이었어요. ㅋㅋㅋ
2022.10.24 11:30
아들 관련해서 악몽을 꾸는 시퀀스 같은 건 호러영화 못지않게 무서웠어요.
2022.10.24 11:51
전혀 안 그런 영화에서 갑자기 그런 전개가 나오니 무섭더라구요. ㅋㅋ 그 괴이한 점프컷 편집들도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뭐 평소에 화면 잡는 폼을 보면 그냥 호러로 만들어 버렸어도 별 위화감 없었을 듯. 헨리 비주얼도 그렇구요. 모델이 된 놈은 그냥 멀쩡하게 생겼던데 감독님... ㅋㅋㅋㅋ
저도 잠복경찰이었다는 자체는 당연히 그런 설정이 나와줘야지 했는데 조직 전체가 다 함정이었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처음에 나오는 실화 바탕이라는 문구를 영화에 하도 집중하다가 깜빡했었는데 후반부에 다시 생각나니 또 놀라웠구요.
실제사건을 영문위키로 적당히 훑어봐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호주내에서 그 사건이 엄청난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헨리 캐릭터 실제인물이 사실상 유일한 유력 용의자인데 물증은 없고 정말 잡아넣고는 싶고해서 결단이 내려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신 진짜 확실한 근거를 잡아내야하는데 체포결정하는 브리핑에서 상관 한명이 태클을 거는 것도 그래서겠죠. 이름 바꾼 것 빼고는 실제 수사과정을 제법 충실히 반영했다고 하던데 정말 부족한 증거 때문에 쥐어짜내려고 고생하는 것이 느껴지더라구요. 특히 그 여형사가 알리바이 깨려고 하는 플롯도 그렇죠.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속으로는 혐오하지만 친구처럼 지내야했던 마크도 그렇고 자백 받아내기 전에 엄청나게 긴장하던 그 조직 보스역을 한 경찰분도 기억에 남아요.
다 보고나서 자연스럽게 살인의 추억이 생각나더라구요. 대신 이 작품에는 유머가 1도 없죠 ㅋ 말씀대로 그런 찜찜한 부분이 있는 것과는 달리 살인의 추억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기적적으로 진범이 잡히기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