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8 13:23
최소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넷플릭스에서 이런 걸 만들어 주네요. SF, 호러, 스릴러, LGBTQ, 마약에 이어 넷플릭스의 효자상품이니까요. 컨디션 안좋을 때는 제목만 봐도 피곤해 지는데 이런 게 또 한 번 보면 빠져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학습된 사회적 인간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 같은 걸 이런 드라마로 풀게 되는 면이 있어서일까요?
넷플릭스의 이번 연쇄살인범 드라마는 1화는 좀 재미가 없습니다. 살인범이 체포 되기 전 마지막 살인 시도를 보여주는 회차인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전형적인 면이 있어요. 그래서 좀 심드렁하게 봤습니다. 아마 1회 마지막 장면에서 던지는 떡밥 때문에 2화를 도전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다머'는 연쇄살인범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를 모두 건드리고 있어요. 살벌하고 선정적인 살해 장면은 물론이고, 연쇄살인범에 대한 양육 대 천성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피해자 입장에서의 비극성, 그 주변인물들에 가해지는 2차 가해, 인종차별적 무관심으로 인한 범죄였다는 시대상, 살인범을 끈질기게 물고 들어지는 소시민 영웅 등등 각 회차별로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드라마가 진행되어요. 좋게 보면 입체적이고 나쁘게 보면 백화점식 전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스타일이 좀 밍숭맹숭 하기도 하네요. 어떤 부분은 변죽만 울리는 것 같고 또 어떤 부분은 꽤나 진심인 것 같고 그래요.
그 중에 제가 제일 흥미로웠던 건 연쇄살인범의 살해동기에 대한 접근이었어요. 기억하기로 연쇄 살인범의 내면을 이렇게까지 파고든 영화나 드라마가 없거나 드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신비주의를 배제하고 현실적인 이론에 입각한 분석은요. 드라마가 제시하는 건 왜곡되고 파괴적인 애정욕구의 발산이라는, 다머 그 개인 차원에선 비극적인 히스토리에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접근이었어요. 원래도 사회성이 부족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애가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어머니와 방치하는 아버지 밑에서 애정욕구가 채워질 기회를 점점 박탈당하고 그 결과 사회적 의사소통능력이 점점 부족해 지고 일상적 대인관계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결국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결에 대한 욕구를 채워나가게 되는과정이 꽤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 K-스릴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쓰이는 연쇄살인범 클리셰를 꽤나 싫어해서 이런 부분이 더 좋았는지도요. 연쇄 살인범을 인간으로서 이해하려고 하고 연민을 보내기도 하는 시각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온정적으로 비춰져서 불편하겠다 싶기는 했어요. 특히 유사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요. 드라마의 전체 톤은 특히나 마지막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 입장에서의 비극성을 강조하기는 해도요.
전체적인 만듬새는 넷플릭스가 하던 걸 반 쯤은 의무적으로 만들어서 겨우 선방한 정도 느낌이에요. 비슷한 소재를 쓸만큼 써서 고심끝에 겨우 측면승부라는 해결책을 내놓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장르 공식이나 전체 드라마 톤과는 조금 안어울렸던 것 같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조명도 필요한 일이고요. 위키백과 찾아보니깐 영화도 있고 만화책도 있고 그렇더군요.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드라마의 레퍼런스가 되었겠죠.
냄새를 강조하는 건 이 시리즈의 유난한 점인 것 같아요. 하필이면 바로 며칠 전에 냉장고에 오래 묵혔던 조개가 부패해서 나는 냄새에 경악했던 경험이 있어 좀 더 공감각적으로 다가왔네요.
그건 그렇고 과연 마인드 헌터의 새 시즌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과연 나온다하더라도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2022.09.28 21:38
2022.09.28 22:18
말씀하신 영역에 대해서도 드라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ㅎ 여기까지 나오면 실화 바탕의 연쇄살인범 스릴러가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에요. 드라마는 아무튼 장르에 호감을 갖고 계시다면 그럭저럭 보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2022.09.28 22:35
검색을 해보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리즈의 라이언 머피, 에반 피터스 콤비(?)로군요. 요 제작자님 이름을 보면 늘 기대치를 조정하게 됩니다. 심심하거나 확 별로인 작품도 드물지만 아주 맘에 들거나 훌륭하다 싶은 작품도 드물더라구요. ㅋㅋ
마인드 헌터는 이제 마음으로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핀쳐가 '맹크'가 성공해서 새 시즌을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라고 인터뷰했던 게 벌써 2년 전인데 아직도 아무 소식도 없고. 배우들은 성실하게 나이 먹고 있고 뭐... ㅠㅜ
2022.09.28 23:00
2022.09.29 06:34
살해동기를 이 정도로 성의있게 파고드는 경우는 없는데 그 점은 대단히 높이 쳐줄만 하네요.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상물을 안보게 된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살해에 대한 쾌감때문에 끝도없이
살인을 한다는, 싸이코패쓰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공허함"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기분때문이었어요.
가정학대가 범행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뚜렷이 드러나는건 에드워드 캠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 사람은 원래 싸이코패쓰 경향 + 양육자의 가혹한 학대가 합쳐져서 일어난 상황이라 무엇이 더 큰 원인일까
학대당했다고 다 연쇄살인자가 되는건 아니니까요.
2022.09.29 07:12
저도 보려고 쟁여둔 시리즈예요. 쓰신 감상을 읽어보니 만듦새가 괜찮은 모양이라 기대치가 올라가네요. ㅎㅎ
조금 딴 이야기지만...저도 이런 창작물들을 즐겨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테드번디나 다머같은 끔찍한 괴물들을 멋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다보면 어쩌면 미디어가 이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살인범으로 실명이 거론되고 얼굴이 공개되는 것과 이름을 빼앗고 기록을 말살하는 것 중에 어떤것이 진정한 징벌일까 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ㅋ